
[ Discograph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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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큐어의 주요 수상 | |||||||||||||||||||||||||||||||||||||||||||||||||||||||||||||||||||||||||||||||||||||||||||||||||||||||||||||||||||||||||||||||||||||||||||||||||||||||||||||||||||||||||||||||||||||||||||||||||||||||||||||||||||||||||||||||||||||||||||||||||||||||||||||||||||||||||||||||||||||||||||||||||||||||||||||||||||||||||||||||||||||||||||||||||||||||||||||||||||||||||||||||||||||||||||||||||||||||||||||||||||||||||||||||||||||||||||||||||||||||||||||||||||||||||||||||||||||||||||||||||||||||||||||||||||||||||||||||||||||||||||||||||||||||||||||||||||||||||||||||||||||||||||||||||||||||||||||||||||||||||||||||||||||||||||||||||||||||||||||||||||||||||||||||||||||||||||||||||||||||||||||||||||||||||||||||||||||||||||||||||||||||||||||||||||||||||||||||||||||||||||||||||||||||||||||||||||||||||||||||||||||||||
[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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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순서대로 리브스 가브렐스, 제이슨 쿠퍼, 로저 오도넬, 로버트 스미스, 사이먼 갤럽 | |||
국적 | |||
결성 | |||
데뷔 | |||
멤버 | |||
장르 | |||
레이블 | |||
링크 | |||
1976년, 로버트 스미스(보컬, 기타)가 학교 친구 마이클 뎀시(베이스), 롤 톨허스트(드럼), 동네 친구 포를 톰슨(기타)과 함께 이지 큐어라는 이름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그들은 즉시 곡을 쓰고 데모를 만들었으며, 1977년 내내 잉글랜드 남부에서 공연을 다녔고, 팬들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1978년 밴드 이름을 큐어로 명칭을 바꾸었고, 포를은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남은 세 명은 신생 레이블인 픽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싱글 "Killing an Arab"과 앨범 <Three Imaginary Boys>를 통해 데뷔하였다.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국 전역에 투어를 돌았다.
이후 큐어는 연달아 "Boys Don't Cry"와 "Jumping Someone Else's Train"을 발매하면서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초기 음악은 전성기때의 음악과는 다르게 매우 밝다. 큐어 초기의 대표곡 "Boys Don't Cry"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1979년 말, 마이클은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사이몬 갤럽(베이스)과 마티유 하틀리(키보드)가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다.
1978년 밴드 이름을 큐어로 명칭을 바꾸었고, 포를은 밴드를 탈퇴했다. 이후 남은 세 명은 신생 레이블인 픽션 레코드와 계약을 맺었고. 싱글 "Killing an Arab"과 앨범 <Three Imaginary Boys>를 통해 데뷔하였다. 앨범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영국 전역에 투어를 돌았다.
이후 큐어는 연달아 "Boys Don't Cry"와 "Jumping Someone Else's Train"을 발매하면서 포스트 펑크, 뉴웨이브 밴드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그래서 그들의 초기 음악은 전성기때의 음악과는 다르게 매우 밝다. 큐어 초기의 대표곡 "Boys Don't Cry"를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1979년 말, 마이클은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사이몬 갤럽(베이스)과 마티유 하틀리(키보드)가 밴드에 들어오게 되었다.
1980년 초부터 로버트 스미스는 어두운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첫 히트 싱글 "A Forest"와 함께 정규 2집 <Seventeen Seconds>를 발매하면서 부터 고딕 록에 들어서게 되었다.
월드 투어 이후 마티유 하틀리는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1981년 초 남은 밴드 멤버들은 "Primary"를 발매하고 곧이어 음울한 분위기의 정규 3집 <Faith>를 발매했다. 발매후 두 번째 월드 투어 'The Picture Tour' 중 싱글 "Charlotte Sometimes"를 발매하기도 했다. 투어 이후 스튜디오로 돌아간 큐어 멤버들은 앨범 제작에 힘썼고 4집 <Pornography>에서 포텐이 터진다. 하지만 밴드의 내부 사정은 좋지 못했다. 투어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고, 결국 사이먼이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사이먼이 탈퇴한 직후 로버트는 싱글 "The Hanging Garden"을 발매했다.
월드 투어 이후 마티유 하틀리는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고, 1981년 초 남은 밴드 멤버들은 "Primary"를 발매하고 곧이어 음울한 분위기의 정규 3집 <Faith>를 발매했다. 발매후 두 번째 월드 투어 'The Picture Tour' 중 싱글 "Charlotte Sometimes"를 발매하기도 했다. 투어 이후 스튜디오로 돌아간 큐어 멤버들은 앨범 제작에 힘썼고 4집 <Pornography>에서 포텐이 터진다. 하지만 밴드의 내부 사정은 좋지 못했다. 투어 당시 밴드의 분위기는 좋지 못했고, 결국 사이먼이 밴드를 탈퇴하게 되었다. 사이먼이 탈퇴한 직후 로버트는 싱글 "The Hanging Garden"을 발매했다.
밴드의 상황이 극한까지 치밀게 되자 로버트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팝적인 사운드의 음악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댄스풍의 싱글인 "Let's Go To Bed"을 발매했고 5집인 <The Top>부터는 상업적인 성공도 거두게 되었다. 7집 <Kiss Me, Kiss Me, Kiss Me>의 싱글 'Just Like Heaven'이 엄청난 인기를 끌며 밴드는 미국에서도 꽤 인기를 누리게 된다. 1989년 8집 <Disintegration>을 통해 밴드는 음악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정점을 찍게 된다.
1990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큐어의 리더 로버트 스미스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영화 가위손을 만들었다.
1992년에는 싱글 <Friday I'm in Love>[1]가 성공했다.
1990년에는 팀 버튼 감독이 큐어의 리더 로버트 스미스의 이미지를 참고하여 영화 가위손을 만들었다.
1992년에는 싱글 <Friday I'm in Love>[1]가 성공했다.
리더인 로버트 스미스는 사우스 파크에도 얼굴도장 찍은적이 있는데 하필이면 메카스트라이샌드에 대항하기 위해서 모스라(...)로 거대화 변신해서 스트라이샌드와 싸운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내한하였다.
2013년 안산 밸리 록 페스티벌 헤드라이너로 내한하였다.
2019 Rock & Roll Hall of Fame Induction Ceremony |
2019년에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연사는 나인 인치 네일스의 트렌트 레즈너.
로버트 스미스는 14집이 큐어의 마지막 앨범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래선지 2008년 13집 이후 2023년 현재 15년째 앨범이 안 나오고 있다(...)
2021년, 큐어에서 로버트 스미스 다음으로 오래 활동한 멤버, 사이먼 갤럽이 탈퇴했다.
하지만 후에 페이스북 게시물에 질문을 한 팬에게 다시 큐어에 속하게 되었다고 언급했다.
2024년 16년 만의 새 앨범이자 마지막 앨범으로 예고한 14집 Songs of a lost world 발매를 발표하며 싱글 Alone을 공개했다.
14집 이후 15집도 연달아 공개한다고 한다.
2025년 앨범과 동명의 투어 진행, 2028년 큐어 일대기 다큐멘터리 방영 후 2029년 1집 발표 50주년 때 공식적으로 은퇴한다고 한다.
더 스미스와 함께 80년대 영국 인디/얼터너티브 록을 대표하는 밴드이자 80~90년대 얼터너티브 음악 씬은 물론 현대의 록 음악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전설적인 밴드로 평가받는다. 초기 포스트 펑크에서 출발했지만 앨범 Pornography, Disintegration 등을 통해 우울하고 몽환적인 사운드, 잔향이 긴 기타톤, 내면적이고 우울한 가사를 확립하면서 고딕 록의 정체성 형성과 대중화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후 수많은 고딕 및 얼터너티브 밴드가 이들의 사운드를 참고하게 된다.
80년대는 팝의 황금기였고 밝고 화려한 음악이 주류였지만 더 큐어는 "Just Like Heaven", "Lovesong", "Friday I'm in Love" 등 자신들만의 서늘하고 다크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인 팝 넘버들을 통해 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정서적으로 깊은 음악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3천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싱글과 앨범 모두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어두운 음악으로도 상업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더 큐어의 음악은 깊은 우울함과 낭만적이고 밝은 팝 멜로디라는 상반된 두 요소가 공존한다는 점에 있으며, 앨범마다 이 두 가지 감성이 교차하거나 융합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초기의 날카로운 포스트펑크에서 중기의 다크하고 웅장한 고딕 록, 후기에는 특유의 우울함을 유지하면서도 밝고 팝적인 뉴웨이브 사운드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이러한 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폭넓은 스페트럼은 후대 밴드들에게 장르적 실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음악 뿐 아니라 프론트맨 로버트 스미스의 번진 아이라인과 붉은 립스틱, 헝크러진 머리, 창백한 화장 등은 그 자체로 고딕 문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패션과 서브컬쳐 전반에도 영향을 주었다.
더 큐어의 음악적 DNA는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현대 대중음악 전반으로 확장되었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우울하면서 몽환적인 사운드와 상처받은 내면을 숨기지 않는 태도는 수많은 서브 컬처와 메인스트림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Disintegration 등에서 보여준 공간감을 극대화한 기타 이펙터와 몽환적인 텍스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슬로우다이브 등 90년대 슈게이징과 드림팝 밴드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내면의 상처와 소외감 등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하는 로버트 스미스의 감성과 창백한 얼굴, 짙은 아이라인, 검은 옷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미학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 AFI 등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이모와 팝 펑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왜곡된 기타, 멜랑콜리한 멜로디, 내면적 가사 스타일은 라디오헤드, 스매싱 펌킨스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기본 문법이 되었으며, 어두운 감수성과 감정 표현 방식은 나인 인치 네일스, 데프톤즈 같은 다양한 하위 장르의 밴드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더 큐어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기보다 이를 다 대중음악이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있다. 포스트 펑크나 고딕 록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개척한 선구자를 꼽자면 조이 디비전이나 바우하우스 같은 밴드들이 먼저 언급되지만, 그들의 음악은 너무 극단적이거나 접근하기 어려워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더 큐어는 이러한 기괴하고 스산한 사운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팝적인 멜로디를 결합해 전 세계적인 주류 문화로 끌어올렸다. 또한 주류 팝 음악에서 슬픔이란 대게 연인과의 이별 같은 단편적인 감정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로버트 스미스는 실존주의적 불안, 세상과의 단절감, 상실과 죽음 등 내면 깊은 곳의 복잡한 감정들을 전면에 드러냈다. 이들은 우울과 불안이라는 어두운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수천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음악적 기법을 넘어 우울함의 미학이라는 정서를 대중화하고, 이를 통해 소위 주류 문화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너드나 고스 등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과 정체성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밴드라고 평가받는다.
80년대는 팝의 황금기였고 밝고 화려한 음악이 주류였지만 더 큐어는 "Just Like Heaven", "Lovesong", "Friday I'm in Love" 등 자신들만의 서늘하고 다크한 감성을 바탕으로 한 감성적인 팝 넘버들을 통해 대형 히트를 기록하며 정서적으로 깊은 음악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전 세계적으로 3천만장 이상의 음반 판매량을 기록했고, 싱글과 앨범 모두 빌보드 차트 상위권에 오르며 어두운 음악으로도 상업성과 영향력을 동시에 확보한 드문 사례에 해당한다.
더 큐어의 음악은 깊은 우울함과 낭만적이고 밝은 팝 멜로디라는 상반된 두 요소가 공존한다는 점에 있으며, 앨범마다 이 두 가지 감성이 교차하거나 융합되어 나타난다. 이들은 한 가지 장르에 안주하지 않고 초기의 날카로운 포스트펑크에서 중기의 다크하고 웅장한 고딕 록, 후기에는 특유의 우울함을 유지하면서도 밝고 팝적인 뉴웨이브 사운드까지 성공적으로 소화해냈다. 이러한 감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은 폭넓은 스페트럼은 후대 밴드들에게 장르적 실험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음악 뿐 아니라 프론트맨 로버트 스미스의 번진 아이라인과 붉은 립스틱, 헝크러진 머리, 창백한 화장 등은 그 자체로 고딕 문화의 상징이 되었으며 패션과 서브컬쳐 전반에도 영향을 주었다.
더 큐어의 음악적 DNA는 하나의 장르에 머물지 않고 현대 대중음악 전반으로 확장되었는데, 이들이 만들어낸 우울하면서 몽환적인 사운드와 상처받은 내면을 숨기지 않는 태도는 수많은 서브 컬처와 메인스트림 장르에 영향을 미쳤다. Disintegration 등에서 보여준 공간감을 극대화한 기타 이펙터와 몽환적인 텍스처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슬로우다이브 등 90년대 슈게이징과 드림팝 밴드들의 교과서가 되었다. 내면의 상처와 소외감 등을 시적인 가사로 표현하는 로버트 스미스의 감성과 창백한 얼굴, 짙은 아이라인, 검은 옷으로 대표되는 시각적 미학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 AFI 등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이모와 팝 펑크에 큰 영향을 주었다. 왜곡된 기타, 멜랑콜리한 멜로디, 내면적 가사 스타일은 라디오헤드, 스매싱 펌킨스 등으로 대표되는 90년대 얼터너티브 록의 기본 문법이 되었으며, 어두운 감수성과 감정 표현 방식은 나인 인치 네일스, 데프톤즈 같은 다양한 하위 장르의 밴드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쳤다.
더 큐어가 음악사에서 중요한 이유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기보다 이를 다 대중음악이 '우울함'이라는 감정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있다. 포스트 펑크나 고딕 록이라는 장르를 최초로 개척한 선구자를 꼽자면 조이 디비전이나 바우하우스 같은 밴드들이 먼저 언급되지만, 그들의 음악은 너무 극단적이거나 접근하기 어려워 언더그라운드에 머무는 경향이 있었다. 반면 더 큐어는 이러한 기괴하고 스산한 사운드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팝적인 멜로디를 결합해 전 세계적인 주류 문화로 끌어올렸다. 또한 주류 팝 음악에서 슬픔이란 대게 연인과의 이별 같은 단편적인 감정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강했으나, 로버트 스미스는 실존주의적 불안, 세상과의 단절감, 상실과 죽음 등 내면 깊은 곳의 복잡한 감정들을 전면에 드러냈다. 이들은 우울과 불안이라는 어두운 정서를 예술로 승화시키면서 수천만장의 음반 판매를 기록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음악적 기법을 넘어 우울함의 미학이라는 정서를 대중화하고, 이를 통해 소위 주류 문화에 섞이지 못하고 겉돌던 너드나 고스 등 소외된 이들에게 공감과 정체성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대중음악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밴드라고 평가받는다.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더 스미스와 자주 비교되곤 하며, 특히 프론트맨 로버트 스미스와 모리세이의 사이의 실제 불화가 큰 몫을 했다. 문제의 발단 으로 꼽히는 것은 1984년 음악 잡지 The Face 인터뷰다. 인터뷰어가 모리세이에게 "로버트 스미스, 마크 E. 스미스, 그리고 장전된 스미스 앤 웨슨 권총을 한 방에 넣는다면, 누가 먼저 총알을 맞게 될까?"라고 묻자, 모리세이는 "셋을 일렬로 세워서 한 발로 동시에 관통하게 할 거야... 로버트 스미스는 찡찡대는 인간이야. 우리가 등장할 즈음에 갑자기 구슬 목걸이를 하고, 꽃 들고 사진 찍던 것도 좀 웃기지 않아? 아마 우리 스타일 은근 좋아할 것 같은데. 근데 난 더 큐어는 한 번도 좋아한 적 없어..."The Caterpillar"[2]조차도."라고 답변했다. 이에 대해 로버트 스미스는 "모리세이는 너무 우울한 인간이라서, 그가 빨리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면 내가 대신 그럴 것 같아."라고 맞받아치며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이후로도 둘은 종종 언론을 통해 서로를 디스하며 공개적 불화를 이어갔고 음악 팬들 사이에서 더 큐어 파와 더 스미스 파로 지지층이 나뉘는 양상이 이어졌다. 언론 역시 이를 반복적으로 소비하면서 두 밴드는 80년대 인디 록을 이야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라이벌이자 비교 대상이 되었다.
모리세이를 디스하는 로버트 스미스, 더 스미스 콘서트 무대에서 로버트 스미스 분장을 한 관객이 난입하는 영상
다만 두 밴드가 자주 비교되는 이유는 단순히 같은 시대에 활동했거나 공개적인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두 밴드는 1980년대 영국 얼터너티브/인디 음악의 가장 거대한 양대 산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80년대 음악계는 화려한 신스팝과 뉴웨이브, 거친 헤비메탈과 글램메탈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이 두 밴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소외되고 우울한 청춘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마초적인 남성성을 과시하던 당대 록 프론트맨들과 달리 로버트 스미스와 모리세이는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유약한 남성성을 가감없이 드러냈고, 이는 록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하지만 같은 우울함을 노래하면서도 두 밴드의 음악적 접근은 확연히 갈렸다. 더 큐어가 몽환적이고 어두운 공간감을 강조한 사운드와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세웠다면, 더 스미스는 조니 마의 맑고 반짝이는 기타 리프와 모리세이의 문학적이고 냉소적인 가사를 중심으로 한 지적이고 현실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더 큐어가 내면의 심연과, 실존주의적 불안,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했다면 더 스미스는 영국 노동 계급의 우울한 일상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 블랙 코미디를 담아냈다. 정리하면 더 큐어는 감정의 깊이와 사운드의 공간을 확장한 밴드라면, 더 스미스는 인디 기타 록의 문법을 정립한 밴드로 평가된다. 후대에 더 큐어의 계보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슬로우다이브 등으로 대표되는 슈게이즈와 드림팝, 라디오헤드로 대표되는 내면적 얼터너티브, 마이 케미컬 로맨스 등으로 대표되는 이모/고딕 록으로 이어졌으며 더 스미스의 계보는 오아시스, 블러로 대표되는 브릿팝과 스트록스, 악틱 몽키즈 등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인디 록으로 이어졌다.
현재 모리세이와 로버트 스미스 사이의 감정은 사실상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로버트 스미스는 더 가디언 인터뷰에서 해당 갈등을 제대로 이해한 적조차 없다고 밝혔으며, 1년 후 모리세이 역시 과거 로버트 스미스에게 했던 끔찍한 말들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스미스는 지난 20~30년 동안 그 일을 거의 떠올린 적도 없고,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모리세이를 디스하는 로버트 스미스, 더 스미스 콘서트 무대에서 로버트 스미스 분장을 한 관객이 난입하는 영상
다만 두 밴드가 자주 비교되는 이유는 단순히 같은 시대에 활동했거나 공개적인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두 밴드는 1980년대 영국 얼터너티브/인디 음악의 가장 거대한 양대 산맥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80년대 음악계는 화려한 신스팝과 뉴웨이브, 거친 헤비메탈과 글램메탈로 양분되어 있었으나, 이 두 밴드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고 소외되고 우울한 청춘들의 정서를 대변하며 거대한 팬덤을 구축했다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었다. 마초적인 남성성을 과시하던 당대 록 프론트맨들과 달리 로버트 스미스와 모리세이는 상처받기 쉽고 예민한 유약한 남성성을 가감없이 드러냈고, 이는 록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 자체를 뒤바꿔 놓았다.
하지만 같은 우울함을 노래하면서도 두 밴드의 음악적 접근은 확연히 갈렸다. 더 큐어가 몽환적이고 어두운 공간감을 강조한 사운드와 추상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내세웠다면, 더 스미스는 조니 마의 맑고 반짝이는 기타 리프와 모리세이의 문학적이고 냉소적인 가사를 중심으로 한 지적이고 현실적인 음악을 선보였다. 더 큐어가 내면의 심연과, 실존주의적 불안, 낭만적인 사랑을 노래했다면 더 스미스는 영국 노동 계급의 우울한 일상과 날카로운 사회 비판, 블랙 코미디를 담아냈다. 정리하면 더 큐어는 감정의 깊이와 사운드의 공간을 확장한 밴드라면, 더 스미스는 인디 기타 록의 문법을 정립한 밴드로 평가된다. 후대에 더 큐어의 계보는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과 슬로우다이브 등으로 대표되는 슈게이즈와 드림팝, 라디오헤드로 대표되는 내면적 얼터너티브, 마이 케미컬 로맨스 등으로 대표되는 이모/고딕 록으로 이어졌으며 더 스미스의 계보는 오아시스, 블러로 대표되는 브릿팝과 스트록스, 악틱 몽키즈 등으로 대표되는 2000년대 인디 록으로 이어졌다.
현재 모리세이와 로버트 스미스 사이의 감정은 사실상 누그러진 것으로 보인다. 2018년 로버트 스미스는 더 가디언 인터뷰에서 해당 갈등을 제대로 이해한 적조차 없다고 밝혔으며, 1년 후 모리세이 역시 과거 로버트 스미스에게 했던 끔찍한 말들을 후회한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스미스는 지난 20~30년 동안 그 일을 거의 떠올린 적도 없고, 지금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Just Like Heaven Kiss Me, Kiss Me, Kiss Me |
- 명실상부 더 큐어를 대표하는 곡중 하나. 로버트 스미스가 아내와 함께한 해변 여행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곡으로, 뮤직 비디오에도 그의 아내 메리 풀이 등장한다. 1988년 빌보드 차트에서 40위를 기록하며 큐밴드의 미국 진출을 이끌었다. 도입부의 경쾌한 기타 리프와 신시사이저 멜로디는 많은 후대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로버트 스미스는 이 곡을 밴드의 가장 뛰어난 곡 중 하나로 꼽았다.
Friday I'm In Love Wish |
- 더 큐어의 대중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곡 중 하나. 영국 차트 6위, 미국 차트 18위에 오르며 전 세계적인 히트를 기록했다. "월요일은 우울하고 화요일엔 절망적이지만 금요일엔 사랑에 빠진다"란 가사를 중심으로 단순하고 행복한 팝송을 목표로 만들어졌다. 밴드 특유의 우울하고 어두운 이미지와는 대비되는 매우 밝고 경쾌한 분위기의 곡.
Lovesong Disintegration |
Boys Don't Cry Three Imaginary Boys |
- 밴드의 초기 시절을 대표하는 곡으로 펑크의 거친 감성과 팝적인 멜로디가 결합된 포기 포스트 펑크 스타일을 잘 보여준다. "남자는 울지 않아"라며 애써 강한 척 하지만 이별에 상처받은 유약한 소년의 심리를 담아냈다. 틱톡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스포티파이에서 10억 스트리밍을 돌파하며 밴드의 가장 많이 스트리밍 된 곡이 되었다.
A Forest The Seventeen Seconds |
- 더 큐어의 초기 미니멀한 포스트펑크를 대표하는 곡이자, 이후 고딕 록 사운드의 기반을 형성한 밴드의 중요한 역할을 한 곡. 차갑고 반복적인 베이스 라인과 신경질적인 기타 리프가 안개 낀 숲을 헤메는 듯한 서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1000회 이상 라이브에서 연주되며 밴드가 가장 많이 연주한 곡이 되었다.
Close To Me The Head on the Door |
- 미니멀한 편곡과 톡톡 튀는 독특한 리듬, 로버트 스미스의 속삭이는 보컬이 기발하게 어우러진 80년대 뉴웨이브 대표곡.
Pictures of You The Disintegration |
- 더 큐어 최고의 명반 Disintegration의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는 7분이 넘는 대곡. 로버트 스미스의 집에 화재가 발생한 후히 잔해를 정리하던 중, 아내 메리의 사진이 들어있는 지갑을 발견한 경험에서 영감을 얻었다. 웅장하게 쌓아올린 기타 레이어와 상실과 그리움의 정서가 극대화된 사운드로 더 큐어 스타일의 정점이자 드림 팝의 정수를 보여주는 곡으로 평가받는다.
음반 | ||
커버 | 제목 | 발매 |
![]() | 1979 | |
![]() | 1980 | |
![]() | Faith | 1981 |
![]() | 1982 | |
![]() | The Top | 1984 |
![]() | 1985 | |
![]() | 1987 | |
![]() | 1989 | |
![]() | Wish | 1992 |
![]() | Wild Mood Swings | 1996 |
![]() | Bloodflowers | 2000 |
![]() | The Cure | 2004 |
![]() | 4:13 Dream |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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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버트 스미스가 회고하길 밴드 결성 당시엔 펑크 록 열풍하고는 한발짝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웨스트 서섹스 주 크롤리라는 런던에서 떨어진 한적한 영국 남부 소도시 출신이였고, 당시 펑크 록 열풍에서는 꽤 어정쩡한 위치였다. 그나마 상경해서 수지 앤 더 밴시스랑 어울리긴 했으나 [5] 고딕 록 딱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때문에 성공하기 전까지는 꽤나 노선 정립이 안 되고, 본인들도 스트레스 받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 Pornography, Disintegration, Bloodflowers 이 셋을 묶어서 흔히 고딕 삼부작이라 부르는데, 사실 로버트 스미스는 밴드가 특정 장르로 분류되는 것을 싫어한다. 본인들은 조이 디비전이나 에코 앤 더 버니멘과 같은 부류로 보길 원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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