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상징 후지산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보이는 야마나시현(山梨県) 후지요시다시(富士吉田市). 이곳의 랜드마크인 '후지큐 하이랜드'가 거대한 'K분식점'으로 변신했다.
짜릿한 놀이기구 사이로 매콤한 신라면의 향이 감돌고 일본의 젊은 세대들이 신라면을 맛보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과거 '매운맛'이라는 생소한 카테고리에 머물렀던 한국 라면이 이젠 일본 젊은이들의 일상을 파고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이었다.
후지산 아래 펼쳐진 빨간 맛
지난 16일 도쿄 중심부에서 약 100㎞를 달려 후지큐 하이랜드에 도착했다. 이곳은 연간 200만명 이상이 찾는 일본의 대표적인 테마파크다. 10~30대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이 주를 이루는 이곳은 현재 농심의 거대한 홍보관을 방불케 했다.
지난 3월부터 시작된 농심과 후지큐 하이랜드의 협업 프로모션은 현지인들에게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 10일 '신라면의 날'을 기념해 등장한 캐릭터 'SHIN'과 '너구리'는 원내 곳곳을 누비며 방문객들과 교감했다.
대학생 사이토 씨는 "한국 드라마에서 보던 라면을 테마파크에서 특별한 메뉴로 즐길 수 있어 신선하고 재밌다"며 "캐릭터가 귀여워 사진을 찍어 SNS에 올렸다. 점심에는 라면을 먹어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프로모션의 핵심은 원내 최대 레스토랑인 '푸드 스타디움'이다. 이곳에서는 '신라면'과 '신라면 툼바', '너구리 순한맛'을 활용한 협업 메뉴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가장 인기 있는 메뉴는 단연 최근 일본 젊은 층 사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신라면 툼바'다. 꾸덕한 크림소스 위에 이탈리아산 치즈가 소복이 얹어져 풍미를 더했다. 한입 베어 물자 진한 치즈 향과 함께 신라면 특유의 매콤함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쫄깃한 면발에 단단히 엉겨 붙은 소스는 마치 전문 레스토랑의 파스타를 연상케 할 만큼 고급스러운 완성도를 보여줬다.
정영일 농심재팬 성장전략본부장은 "과거의 신라면 캐릭터가 다소 강렬하고 뾰족한 이미지였다면, 이번에 리뉴얼된 캐릭터는 일본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동글동글하고 친근한 이미지에 초점을 맞췄다"며 "단순한 시식을 넘어 캐릭터를 활용해 젊은 세대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스며드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너구리를 '제2의 신라면'으로
K라면의 열기는 같은 날 도쿄 시내에서 열린 '코리아 엑스포 2026 도쿄' 현장으로 이어졌다. 한국무역협회 등이 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120개 기업이 참여했다. 개막 첫날부터 45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농심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코리아 엑스포'에 참여했다. 특히 올해는 100평에 가까운 대규모 부스를 마련하며 메인 스폰서로 이름을 알렸다.
올해의 농심 부스의 주인공은 '너구리'였다. 너구리 캐릭터를 활용한 포토존과 참여형 게임 이벤트는 방문객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시식 코너에는 너구리를 맛보기 위한 긴 줄이 늘어섰다. 신라면이 일본 시장에서 '한국 라면'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면, 이제는 너구리를 통해 제품군을 다변화하고 시장 점유율을 더욱 공고히 하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농심은 너구리의 중장기 브랜드 육성을 위해 작년 연말부터 IMC 마케팅을 가동했다. 농심은 이번 엑스포를 그 첫 기점으로 삼았다. 박람회장을 찾은 30대 토모씨는 "평소에도 신라면을 즐겨 먹어서 그런지 맵지 않게 느껴지고 너구리 매운맛이 순한맛보다 더 입맛에 잘 맞았다"면서 "식감도 재밌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앞으로도 찾을 것 같은 맛"이라고 말했다.
특히 눈에 띄는 점은 B2C와 B2B를 동시에 겨냥했다는 점이다.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브랜드 경험을 제공하는 동시에, 유통·수출 상담을 통해 실질적인 판로 확대를 모색했다. 현장에는 B2B 대상 바이어 10여 명이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는 등 비즈니스 측면에서도 큰 성과를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농심은 일본 특유의 '마무리 면' 문화도 정교하게 파고들고 있다. 일본인들이 나베(전골) 요리 후 우동이나 소바를 넣어 마무리하듯, 한국식 부대찌개나 샤브샤브 후에 신라면이나 사리면을 넣어 먹는 문화를 제안하고 있다. 실제로 농심은 지난해 일본 대형 외식 기업인 '스카이락' 그룹의 샤브샤브 체인 '샤브엽'과 협업해 식사 마무리용 라면을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정 본부장은 "일본은 매운맛과 순한맛의 소비 비중이 7대 3 정도로 한국보다 순한맛에 대한 선호도가 높지만, 한국 콘텐츠를 즐기는 1020 세대는 매운 라면에 대한 허들이 낮고 너구리에 대한 인지도와 호기심이 매우 높다"며 "일본에서 너구리는 복을 가져다주는 친근한 이미지인 만큼 이를 브랜딩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확인한 'K' 존재감
'코리아 엑스포 2026 도쿄' 현장에는 한류 열기를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뷰티·식품 기업들이 대거 참여했다. 한라산, 삼다수 등 익숙한 브랜드는 물론 지자체 기반 중소업체들도 부스를 꾸려 일본 소비자와 직접 만났다. 특히 한라산은 해외 전용 과일 소주 라인업을 공개했다. 아직 출시 전인 '한라산 리치맛'을 처음 선보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행사장 한편에는 낯익은 얼굴이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었다. 미국 출신 방송인 타일러 라쉬와 인도 출신 사업가 니디 아그르왈이 공동 창업한 '칼파벳' 부스다. 이들은 '한글과자'를 직접 들고 방문객과 소통하며 제품을 소개했다.
부스 앞에는 체험을 기다리는 줄이 끊이지 않았다. 관람객들은 한글 모양 과자를 골라 글자를 조합해보고 이를 시식하면서 자연스럽게 한글을 익히는 체험을 즐겼다. 어린 방문객부터 젊은 층까지 "재밌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타일러 라쉬는 "일본에서는 비스킷류 과자가 잘 안 팔린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하루 300명 이상이 찾을 정도로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좋다"면서 "최근 큐텐샵을 열었고, 5월에는 케이콘에도 참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을 시작으로 다양한 방식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K뷰티존 역시 인기였다. 가야금 연주와 함께 진행된 뷰티 이벤트에는 방송인 현영이 직접 참여해 자신의 브랜드 '뽀나미슈'를 소개했다. 론칭 5년차를 맞은 뽀나미슈는 현장에서 현지인들에게 높은 관심을 받았다. 대표 제품 '콜라겐90 버블토너'는 행사 초반부터 전량 소진됐다.
EGF를 주원료로 한 K뷰티 브랜드 '리블로셀'은 해외 시장에서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일본을 비롯해 미국, 홍콩, 스위스, 중동 등에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선정윤 리블로셀 대표는 "최근 일본에서 K뷰티에 대한 관심이 눈에 띄게 높아졌다"며 "현지 기후와 피부 특성에 맞춘 제품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톤업 효과가 자연스러운 선크림이나 끈적임 없이 피부결을 살리는 제품이 특히 인기"라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