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且說張角一軍,前犯幽州界分。幽州太守劉焉,乃江夏竟陵人氏,漢魯恭王之後也;當時聞得賊兵將至,召校尉鄒靖計議。靖曰:「賊兵眾,我兵寡,明公宜作速招軍應敵。」劉焉然其說,隨即出榜招募義兵。榜文行到涿縣,乃引出涿縣中一個英雄。那人不甚好讀書;性寬和,寡言語,喜怒不形於色;素有大志,專好結交天下豪傑;生得身長七尺五寸,兩耳垂肩,雙手過膝,目能自顧其耳,面如冠玉,脣若塗脂;中山靖王劉勝之後,漢景帝閣下玄孫;姓劉,名備,字玄德。昔劉勝之子劉貞,漢武時封涿鹿亭侯,後坐酬金失侯,因此遺這一枝在涿縣。玄德祖劉雄,父劉弘。弘曾舉孝廉,亦嘗作吏,早喪。玄德幼孤,事母至孝;家貧,販屨織蓆為業。家住本縣樓桑村。其家之東南,有一大桑樹,高五丈餘,遙望之,童童如車蓋。相者云:「此家必出貴人。」玄德幼時,與鄉中小兒戲於樹下,曰:「我為天子,當乘此車蓋。」叔父劉元起奇其言,曰:「此兒非常人也!」因見玄德家貧,常資給之。年十五歲,母使游學,嘗師事鄭玄、盧植;與公孫瓚等為友。及劉焉發榜招軍時,玄德年己二十八歲矣。當日見了榜文,慨然長歎。隨後一人厲聲言曰:「大丈夫不與國家出力,何故長歎?」玄德回視其人:身長八尺,豹頭環眼,燕頷虎鬚,聲若巨雷,勢如奔馬。玄德見他形貌異常,問其姓名。其人曰:「某姓張,名飛,字翼德。世居涿郡,頗有莊田,賣酒屠豬,專好結交天下豪傑。適纔見公看榜而歎,故此相問。」玄德曰:「我本漢室宗親,姓劉,名備。今聞黃巾倡亂,有志欲破賊安民;恨力不能,故長歎耳。」飛曰:「吾頗有資財,當招募鄉勇,與公同舉大事,如何?」玄德甚喜,遂與同入村店中飲酒。正飲間,見一大漢,推著一輛車子,到店門首歇了;入店坐下,便喚酒保:「快斟酒來吃,我待趕入城去投軍。」玄德看其人:身長九尺,髯長二尺:面如重棗,脣若塗脂;丹鳳眼,臥蠶眉:相貌堂堂,威風凜凜。玄德就邀他同坐,叩其姓名。其人曰:「吾姓關,名羽,字壽長,後改雲長,河東解良人也。因本處勢豪,倚勢凌人,被吾殺了;逃難江湖,五六年矣。今聞此處招軍破賊,特來應募。」玄德遂以己志告之。雲長大喜。同到張飛莊上,共議大事。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玄德、雲長、齊聲應曰:「如此甚好。」次日,於桃園中,備下烏牛白馬祭禮等項,三人焚香,再拜而說誓曰:「念劉備、關羽、張飛,雖然異姓,既結為兄弟,則同心協力,救困扶危;上報國家,下安黎庶;不求同年同月同日生,但願同年同月同日死。皇天后土,實鑒此心。背義忘恩,天人共戮。」誓畢,拜玄德為兄,關羽次之,張飛為弟。祭罷天地,復宰牛設酒,聚鄉中勇士,得三百餘人,就桃園中痛飲一醉。
한편 장각의 한 군대는 유주(幽州)의 경계를 침범하였다. 유주태수 유언(劉焉)은 강하(江夏) 경릉(竟陵) 사람으로 한나라 노공왕의 후예이다. 당시 적의 군대가 장차 이른다는 걸 얻어 듣고 교위(校尉)[1] 추정(鄒靖)을 불러 논의를 꾀하였다. 추정이 말했다. “적의 군대는 많고, 우리 군대는 적으므로 공(公)[2]께서는 군대를 소집하여 적에 대한 대응을 빠르게 해야 합니다.” 유언은 그 말에 동의하여 즉시 의병을 불러 모으는 방(榜)을 붙였다. 방문이 탁현에 이르니, 탁현 중의 한 영웅이 이끌려 나왔다.
그 사람은 책 읽기를 매우 좋아하지는 않으나, 성품이 너그럽고 온화하고, 말이 적으며, 기쁨과 노함이 낯빛에 드러나지 않았다. 평소에 큰 뜻이 있어 오직 천하의 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했다. 타고나기를 키는 7척 5촌이요, 두 귀는 어깨로 늘어졌고, 두 손은 무릎에 이르렀으며, 눈은 스스로 그 귀를 돌아볼 수 있었고, 얼굴은 옥을 씌운 것 같으며, 입술은 연지를 바른 것 같았다. 중산정왕 유승(劉勝)의 후손으로 한나라 경제 각하의 현손(손자의 손자)이니 성은 유(劉)요, 이름은 비(備)이고, 자는 현덕(玄德)이다. 옛날 유승의 아들 유정(劉貞)은 한나라 무제 때 탁록정후(涿鹿亭侯)에 봉해졌는데, 후에 주금[3]의 죄로 제후의 직위를 잃어버렸던 까닭에 이 한 갈래가 탁현에 남아 있었다. 현덕의 할아버지는 유웅(劉雄)이고, 아버지는 유홍(劉弘)이다. 유홍은 일찍이 효렴[4]으로 뽑혀 역시 관리가 되었으나 일찍 죽었다. 현덕은 어려서 아버지 없이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짚신을 팔고 돗자리를 짜는 일을 직업으로 삼았다. 사는 집은 본디 탁현 누상촌으로, 그 집 동남쪽에 큰 뽕나무 한그루가 있어, 높이가 5장이 넘었고 멀리서 바라보면 잎이 휑하기가 수레 덮개 같았다. 관상가가 말했다. "이 집은 반드시 귀인이 나옵니다." 현덕이 어릴 때 마을의 작은 아이들과 나무 아래에서 놀면서 “나는 천자가 되어 마땅히 이런 수레 덮개를 탈 것이다.”고 말했는데, 숙부 유원기가 그 말을 기이하게 여겨 “이 아이는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하고는, 현덕의 집이 가난한 것을 보았으므로 항상 도움을 주었다. 나이 15세에 어머니가 공부를 시켜 일찍이 정현, 노식을 스승으로 섬기고, 공손찬 등과 벗이 되었다. 유언이 군대를 소집하는 방을 낼 때에 현덕의 나이는 이미 28세였을 것이다. 그날 방문을 다 보고는 분개하면서 길게 탄식하니, 뒤따라 한 사람이 성난 목소리로 말하길, “대장부가 국가를 위하여 힘을 내지 않고 무슨 까닭으로 길게 탄식하는가?” 라고 했다.
현덕이 그 사람을 돌아보니, 키는 8척으로, 범의 머리에 동그란 눈, 제비 턱에 호랑이 수염이 있고, 목소리는 거친 우레와 같으며, 기세는 달리는 말과 같았다. 현덕은 그 생김새가 보통과 다름을 보고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 사람이 말하길, “나의 성은 장(張)씨요, 이름은 비(飛)이고, 자는 익덕(翼德)이오. 대대로 탁군에 살면서 장원과 밭이 꽤 있고, 술을 팔고 돼지를 잡으며, 오로지 천하의 호걸과 사귀기를 좋아하오. 방금 공께서 방을 보고 탄식하는 것을 보았으므로 이에 물었던 것이오.”라고 했다. 현덕이 말했다. “나는 본래 한나라 황실의 종친으로 성은 유이고, 이름은 비입니다. 지금 황건이 반란을 일으킨다고 들었으니, 적을 깨뜨리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하는 뜻은 있으나, 한스럽게도 힘은 없기 때문에 길게 탄식한 것 뿐입니다.” 장비가 말하길, “내가 재산이 꽤 있습니다. 마을의 용사들을 불러 모으는 일을 맡아 공과 함께 큰 일을 일으키고자 하는데 어떻겠습니까?” 라고 하니, 현덕이 매우 기뻐하면서 이에 같이 마을의 가게 안으로 들어가 술을 마셨다.
술을 막 마시려고 할 때, 큰 사나이 한 명이 수레를 밀며 나타나 가게 문을 향하고는 멈추었다. 가게에 들어와 앉았는데, 곧 주인을 불러 “빨리 마시게 술을 퍼 주시오. 나는 서둘러 성에 들어가 군대에 투신하려고 기다리오.” 라고 했다. 현덕이 그 사람을 보니, 키는 9척이요, 수염길이가 2척이고, 얼굴은 짙은 대추와 같으며,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하고, 붉은 봉황의 눈이면서, 누운 누에의 눈썹이니, 모습이 당당하고 위풍이 늠름하였다. 현덕이 바로 같은 자리에 그를 맞이하여 그 이름을 물어 보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내 성은 관(關)씨요, 이름은 우(羽)이고 자는 수장(壽長)이었는데 후에 운장(雲長)으로 고쳤소. 하동(河東) 해량(解良) 사람이오. 본래 있던 곳에서 권세가가 세력을 믿고 사람을 업신여기므로 나에게 죽임을 당했고, 강호로 도망친 지 5, 6년이 되었을 것이오. 지금 이곳에서 군대를 소집해 적을 깨뜨리려 한다는 것을 듣고, 특별히 모집에 응하려고 왔소.” 현덕이 이에 자신의 뜻을 알리니 운장이 크게 기뻐하였다. (그리고) 같이 장비의 장원으로 가서 함께 큰 일을 의논하였다.
장비가 말했다. "내 장원 뒤에 복숭아 밭이 있는데, 꽃이 한창 무성하게 필 때요. 내일 밭 가운데서 천지에 제사로 알리고, 우리 셋이 의형제를 맺읍시다. 힘을 합치고 마음을 함께 한 후에야 큰 일을 도모할 수 있겠소." 현덕과 운장이 일제히 대답했다. "그러면 매우 좋겠네." 다음날, 복숭아 밭 가운데서 검은 소와 흰 말, 제례용품 등등을 준비해 놓고는, 세 명이 향불을 피우고 두 번 절하며 맹세하였다. "삼가 유비, 관우, 장비는 비록 성씨는 다르더라도 이윽고 의형제를 맺은 즉, 같은 마음으로 힘을 합쳐서 어려운 이를 구하고 위급한 이를 도우며, 위로는 국가에 갚고 아래로는 백성들을 평안케 하겠습니다. 한날한시에 태어나길 빌 수 없사오나 다만 한날한시에 죽길 원하오니, 하늘의 신과 땅의 신께서는 이 마음을 진실로 살피시어, 의로움을 버리고 은혜를 잊는다면 하늘과 사람이 함께 죽여주시옵소서." 맹세를 마치고 절하기를, 현덕을 맏형으로, 관우를 둘째로, 장비를 막내로 삼았다. 천지에 제사를 다 지내고 다시 소를 잡고 술을 베풀어서, 마을의 용사들을 모아 300여 명을 얻으니, 이에 복숭아 밭 가운데서 술을 취할 때까지 실컷 마셨다.《삼국연의 三國演義》』〈1. 복숭아 밭에서 잔치를 하고 호걸 셋이서 의형제를 맺다 宴桃園豪傑三結義〉
도원결의는 삼국지연의의 제1장에 등장하는 내용으로, 대략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황건적에 맞설 관군을 모집하는 방을 보고 난세를 탄식하던 돗자리 장수 유비에게 장비가 다가와 "사나이가 되어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일해야지 어찌 탄식하기만 하고 있는가?"라고 물으면서 술집에 들어가서 술자리를 가진다. 여기에 의용군에 지원하려던 관우가 합세, 함께 천하를 평정하자면서 그 다음날 바로 복숭아 밭에 가서 의형제를 맺고 황건적과 싸울 의병을 일으킨다.[5] 이 때 유비가 만 28세, 관우가 만 27세, 장비가 만 22세로 나이 순으로 형과 아우를 정한다.[6][7]
삼국지 관련 매체를 읽다가 이 설명문을 읽으면 뭔가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는 이렇게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유비가 부모님께 차를 가져다주려다 도적에 빼앗기고 장비가 찾아주는 에피소드라든지, 후에 장비와 유비가 재회하여 관우까지 함께 유비의 어머님을 뵙고 유비 어머니가 준비한 술로 도원결의를 한다든지,[8] 옛 악연 때문에 서로 치고받던 관우와 장비를 유비가 뜯어 말리며 서로 얼굴도장을 찍었다든지[9] 장비가 바위 밑에 넣어둔 고기를 관우가 바위를 치우고 가져간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등의 훗날 작품들에서 첨가된 것이다. 삼국지연의 원본과 원문에 충실한 정역본으로 읽으면 딱 저 내용만 나온다.
삼국지 관련 매체를 읽다가 이 설명문을 읽으면 뭔가 많이 빠진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그런데 원래 삼국지연의의 도원결의는 이렇게 아주 단순한 내용이다. 유비가 부모님께 차를 가져다주려다 도적에 빼앗기고 장비가 찾아주는 에피소드라든지, 후에 장비와 유비가 재회하여 관우까지 함께 유비의 어머님을 뵙고 유비 어머니가 준비한 술로 도원결의를 한다든지,[8] 옛 악연 때문에 서로 치고받던 관우와 장비를 유비가 뜯어 말리며 서로 얼굴도장을 찍었다든지[9] 장비가 바위 밑에 넣어둔 고기를 관우가 바위를 치우고 가져간다든지 하는 에피소드들은 모두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등의 훗날 작품들에서 첨가된 것이다. 삼국지연의 원본과 원문에 충실한 정역본으로 읽으면 딱 저 내용만 나온다.
도원결의는 정사 삼국지에는 직접적으로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특히 이야기의 핵심에 해당되는 '복숭아 밭에서 의형제를 맺는 일화'는 픽션이다. 다만 실제로 유비, 관우, 장비 세 명이 서로 형제처럼 지냈다는 기록은 정사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선주(유비)가 평원상이 되자 관우와 장비를 별부사마로 삼고 부곡을 나누어 통솔하게 했다. 선주는 두 사람과 함께 잠자며 같은 침상을 썼고 은혜가 형제와 같았다.촉서 관우전
나(관우)는 조공(조조)께서 후히 대우해주시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유장군(좌장군 유비)의 두터운 은혜를 입었고 함께 죽기로 맹세했으니 이를 저버릴 수는 없소.촉서 관우전
장비는 자가 익덕이고 탁군 사람이다. 젊어서부터 관우와 함께 선주를 섬겼는데, 관우가 몇 년 연장이어서 장비는 그를 형으로 섬겼다.촉서 장비전
지금 한왕(한중왕 유비)은 일시적인 공로에 근거하여 한승을 높은 신분이 되게 했지만, 마음속의 평가가 어찌 군후(관우)와 동등하겠습니까! 게다가 한중왕과 당신은 비유컨대 한 몸처럼 기쁨과 슬픔을 함께하고 화와 복도 같이 합니다.촉서 비시전
관우와 유비는 도의상으로는 군신 관계지만, 은혜는 마치 부자의 관계입니다.위서 유엽전
당대에도 널리 퍼진 사실이었는지 타국의 인물들도 이 셋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런 기록들을 보고 "저 3명이 실제로 의형제이지 않았을까?"라고 상상해서 만들어진 것.[10] 게다가 실제로도 이들이 의형제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 당대의 역사서에서 숱하게 나온다. 그 증거가 바로 위의 기록들.[11]
흔히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의 창작으로 알려져 있으나, 원래는 삼국지평화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그 유명한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날 수는 없었지만,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에 죽기를 원합니다!'도 이미 삼국지평화에 있었던 대사이다. 물론 나관중이 연의를 쓸 때 삼국지평화에서 그대로 가져온 것은 아니고 일부 대사를 살짝 각색하기는 했다. 즉, 이름을 알 수 없는 삼국지평화의 저자가 지어냈거나 또는 삼국지평화가 만들어지기 전 민간 설화로 전해지고 있던 것을 수록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다른 인물들의 기록으로 보아 당시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의형제를 맺는 풍습이 흔했던 것으로 보인다. 마등과 한수라던지. 사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꽌시 문화가 있어 사이가 깊어지면 거의 친형제같이 지내는 경우가 꽤 있다.
동향 출신인 유비와 장비는 몰라도 불분명한 일로 탁군으로 망명한 타향인인 데다 자존심이 강한 관우가 두 사람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세 사람은 출신과 성격에 상관없이 서로 금방 뜻이 통할 만큼 잘 맞는 면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그래서 반평생을 함께 하며 셋이서 죽을 때까지 의리를 지켰던 듯하다.
이 세 명 가운데 관우와 장비는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졌는데, 삼국지의 저자인 진수는 두 사람에 대해 관우는 사대부에게는 오만하고 병졸에게는 관대했다고 서술하였으며, 장비는 군자는 공경하고 소인을 박대하였다고 서술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반대되는 두 사람은 최후만은 어느 정도 비슷했고 이 때문에 진수는 두 사람도 결국 단점을 극복 못해서 망한 것이라고 직접적으로 비판하였다.
치밀한 복선, 소설의 장치, 적합한 개연성 등을 따지는 현대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도원결의는 굉장히 갑작스러운 전개다.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오로지 어지러운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의기투합"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유비, 관우, 장비가 그 전에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에 대해선, 그나마 잘 알려져 있었던 게 유비가 유일하다. 연의에서는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으며 돗자리 장수를 했다는 것, 공손찬과 함께 학문을 익혔다는 것, 유가촌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는 것 등이 도원결의 이전에 있었다고 알려진 사실들이다. 그에 비해 관우나 장비는 정말로 알려진 내용이 거의 없으며 대부분 후대에 창작되었거나 덧붙여진 내용들이다. 복잡해져 따질 것이 많아진 현대 시대 감성 기준으로는 이 장면에 대해 납득하지 못할 이유를 따지자면 끝도 없고, 트집을 걸려고 하면 역시나 끝이 없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도원결의는 고전소설로서 삼국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떠나 직선적이고 간결하기 때문에 도원결의에서 보여주는 의리와 우정이 더욱 빛난다. '아무 관련 없던 세 남자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의 아래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라는 대목이 주는 간단하고도 강렬한 충격, 비루한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품고 살던 유비가 그의 뜻을 함께하는 두 아우를 만나는 '우연성' 때문에 삼형제의 '운명적인 관계' 역시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어차피 맺어질 사람들은 맺어지기 마련'인 것이다.[12]
게다가 지식인들보다는 주로 평범한 농민 상대의 길거리 강담극으로 시작한 삼국지연의의 전체 흐름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과거를 길게 서술하면 과거 기준으로는 관객들이 지루해할 우려가 있다. 훗날 난세를 헤쳐나가 천하를 다투는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나관중이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간주했을 수도 있다.[13] 삼국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한 삼형제가 대륙을 누비며 그 우정과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장면이지, 이들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당초 난세에는 그 인물의 과거가 어땠느냐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을 것이다.[14]
이는 고전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고전소설인 만큼 현대소설과는 문체와 서술법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담가에 가까운 강사[15]들이 관중을 모아놓고 판을 벌여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이는 과거사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강렬하고 멋진 묘사, 그리고 그들의 주요 행적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고전소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대의를 위해 셋이 함께 떨치고 일어났다'라며 도입부를 정리하고 바로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몰입감 넘치고 내용도 깔끔한 것이다. 이런 전개가 현대인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16]
어찌보자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원결의 대목을 읽는 현대인들의 반응이 '뭐 이렇게 뜬금없어'인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이 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는 도원결의 장면 이전에 짧게라도 삼형제가 엮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부 삼국지 판본에서도 이 셋이 어떤 일로 우연히 엮인 후 다시 재회하여 그때부터 의기투합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며, 평역자나 편집자의 취향에 따라서 그 내막이 상세하게 달라진다. 독자들 또한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판본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도원결의의 구성을 꼭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지만, 소설의 분량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기승전결을 부여할 수가 없다.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세 사람이 만나 의형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관장 삼형제가 한말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삼형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발단이며, 분량이 정해진 소설이다보니 "셋이 출발하기 전에 원래부터 이랬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한 배경이야기처럼 서술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의 극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라면 현대 소설에서도 굳이 시시콜콜하게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같이 만나 형제가 되었냐가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된 그들이 어떻게 난세를 헤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맹세를 지켰는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까지 소설의 작법은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및 소재의 배경에 대하여 제한된 분량을 사용하면서도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최대한 제공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독자의 요구가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에 쓰여진 삼국지연의에서는 유관장 삼형제의 과거 이야기를 추가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쓰고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도원결의 장면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그 앞부분에 서술이 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이 의형제가 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한나라 말기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며, 일개 민간 의료사 겸 종교 교주가 휘하 무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존망을 위협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17] 또한 한나라 조정이 어떻게 썩어갔으며, 당대 제후들이 어떻게 해서 군벌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다 보면, 한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써놓은 후 삼형제가 걸어온 과거를 슬쩍 양념으로 곁들이면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될 것이며, 도원결의 장면만 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역사 교양서적의 수준에 달해 있다.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저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 도원결의의 개연성이 부족하니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반론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는 옳은 말이다. 예를 들어 위의 예시에서 '오행도참설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은 거의 드립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장 역시 어떤 작품이든 그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완벽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어떠한 지점에서 그런 설명을 중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예시로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요소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려 하면 그 설명에서 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되기에 그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완벽한 설명을 위해서는 사실상 무한한 분량이 필요하다. 결국 고전소설이든 현대소설이든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라고 짐작되는 지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고전 독자에 비해 현대 독자들의 경우 그 '지점'의 위치가 좀 더 멀어지고 그 사이의 영역에 대해서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최근의 삼국지연의 매체에서 도원결의 장면 전에 유관장 3인이 미리 만나 얽힌 이야기 이외에도 배경인 한나라 말기의 혼란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함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아진 것 역시 결국은 이 때문이었다.
또한 이는 독자의 관점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다. 중국 고전 전통에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협객'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상 중 하나였고, 이런 협객들이 사소한 계기로 뜻이 맞아 서로 생사를 함께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클리셰였다. 그러니 그저 술집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대뜸 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하는 것이 (최소한 창작물 속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며, 그들의 영웅호걸다움을 보여주는 면모로 여겨질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방식이 변화한 현대인 독자들의 눈에 그것은 이상한 일로 비치기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줄 복선을 만들어줄 필요가 생긴 것이다.
문학적인 상징으로 도원결의를 해석하자면, 도원향, 즉 복숭아꽃이 만발한 세계는 고대 중국인들의 신화였던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부터 유래되어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통해 중국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이상향의 세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후로 도원향은 성당 시절의 왕유와 이백의 시를 통해 이상향의 상징으로 다시금 각인되었고, 북송의 소동파는 도연명을 중국 제일의 시인으로 숭상하면서 도원향은 중국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같은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도 이상향의 대명사로 불후의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에게도 이상향으로서의 도원이라는 문학적 상징이 매우 익숙하였을 것이다. 나관중이 쓴 도원결의 장면은 삼국지연의 초반부의 절정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세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도원향이라는 이상향에서 신성하고 순수한 약속을 맺었다. 도원에서의 결의는 이상의 상징이고, 질서의 상징이고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낙원으로서의 도원향은 유비 삼형제가 결의 후에 뛰어들게 된 파천황의 세계인 한말 위진남북조의 대혼란이 벌어지는 현실세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후한 말부터 불어닥친 소빙하기로의 기후변화는 온갖 자연재해를 불러왔고, 그 결과 황건적의 난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현세지옥의 절정을 이루었다. 후한 6천만 명의 인구가 백년도 못가서 2천3백만 명으로 무려 60%의 인구가 사라지는 종말론의 세계였다.[18] 도원향의 평화롭고 풍족한 이상향과는 달리 후한 말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현실은 식인행위까지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본능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초래한 황건적의 난 역시 공교롭게도 유비 삼형제와 대비되는 또다른 삼형제인 장각, 장보, 장량에 의해서 일어났다.
나관중은 도원향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간에 삼국지연의 초반부 절정장면에 배치함으로써 후한 말이나 위진남북조 시대 못지않게 참혹한 원말명초의 혼란기에서 중국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인 도원향에 대한 희망을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에게 투영했었을 것이다.
도원결의는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을 연상시키는 천상의 이상적인 공간에 사는 삼국지 연의의 세 주인공들을 마치 환웅 신화같은 천손 신화의 영웅들처럼 참혹한 현세지옥의 세계로 하강시킴으로써 천상의 이상적인 질서와 유토피아를 지상에 재현하려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또한, 조셉 캠벨의 신화비평에 기초해서 분석하자면 결의가 이루어지는 도원은 '모험에의 소명'이 부여되는 평화로운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도원결의를 이후의 유비 삼형제가 걸어갈 혼란스러운 중국 대륙과 도식적으로 비교하자면, 아래와 같다.
도원 ↔ 세속
천상 ↔ 지상
이상 ↔ 현실
질서 ↔ 혼란
평화 ↔ 전쟁
신의 ↔ 배신
유비 삼형제 ↔ 장각 삼형제
위와 같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나관중이 신화적인 공간[19]인 도원을 교묘하게 배치한 이러한 대비효과는 유비 삼형제에게 신화적인 아우라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영웅적인 행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유비 삼형제의 비극적인 결말에 상심할 독자들에게 주인공 삼형제가 죽더라도 다시 돌아갈 이상향으로서의 발할라 혹은 발리노르 같은 공간인 도원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위안과 희망을 주는 효과 또한 있었을 것이다.[20]
그러나 잘 생각해보면 도원결의는 고전소설로서 삼국지의 도입부를 장식하는 가장 강렬한 장면이다. 유비, 관우, 장비의 만남이 합리성이나 개연성을 떠나 직선적이고 간결하기 때문에 도원결의에서 보여주는 의리와 우정이 더욱 빛난다. '아무 관련 없던 세 남자가 세상을 구하기 위한 대의 아래 우정으로 똘똘 뭉쳤다.'라는 대목이 주는 간단하고도 강렬한 충격, 비루한 신세였음에도 불구하고 큰 뜻을 품고 살던 유비가 그의 뜻을 함께하는 두 아우를 만나는 '우연성' 때문에 삼형제의 '운명적인 관계' 역시 더욱 돋보인다. 말하자면, '어차피 맺어질 사람들은 맺어지기 마련'인 것이다.[12]
게다가 지식인들보다는 주로 평범한 농민 상대의 길거리 강담극으로 시작한 삼국지연의의 전체 흐름을 보면 유비, 관우, 장비의 과거를 길게 서술하면 과거 기준으로는 관객들이 지루해할 우려가 있다. 훗날 난세를 헤쳐나가 천하를 다투는 스토리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기에 나관중이 쓸 필요가 없는 내용이라고 간주했을 수도 있다.[13] 삼국지에서 중요한 것은 생사를 같이하기로 결의한 삼형제가 대륙을 누비며 그 우정과 결의를 끝까지 지켜나가는 장면이지, 이들의 과거가 어떠했는가는 비교적 그 중요도가 떨어진다. 당초 난세에는 그 인물의 과거가 어땠느냐보다는 지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가가 중요했을 것이다.[14]
이는 고전소설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는 고전소설인 만큼 현대소설과는 문체와 서술법이 다르다. 당시에는 만담가에 가까운 강사[15]들이 관중을 모아놓고 판을 벌여서 실시간으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재미를 주려면 그리 의미가 없어 보이는 과거사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는 것보다는 강렬하고 멋진 묘사, 그리고 그들의 주요 행적 위주로 스토리를 풀어나가는 것이 중요했다. 고전소설도 이와 마찬가지로, '영웅은 영웅을 알아보고, 대의를 위해 셋이 함께 떨치고 일어났다'라며 도입부를 정리하고 바로 중요한 내용으로 들어가는 것이 몰입감 넘치고 내용도 깔끔한 것이다. 이런 전개가 현대인에게는 먹히지 않을 뿐.[16]
어찌보자면 정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도원결의 대목을 읽는 현대인들의 반응이 '뭐 이렇게 뜬금없어'인 것도 시대가 지나면서 독자들의 정서와 취향이 변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현대 삼국지 관련 매체에서는 도원결의 장면 이전에 짧게라도 삼형제가 엮이는 과정을 묘사한다. 일부 삼국지 판본에서도 이 셋이 어떤 일로 우연히 엮인 후 다시 재회하여 그때부터 의기투합했다는 식의 묘사가 나오며, 평역자나 편집자의 취향에 따라서 그 내막이 상세하게 달라진다. 독자들 또한 자신들의 취향에 따라 선호하는 판본이 달라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한편으로는 현대소설의 관점에서 본다고 해도, 도원결의의 구성을 꼭 부적절하다고 평가할 수만은 없다.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 독자에게 그럴싸하게 납득시키는 것이 작가의 책임이지만, 소설의 분량에는 언제나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작가는 작중의 모든 사건에 대해서 일일이 기승전결을 부여할 수가 없다.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세 사람이 만나 의형제가 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관장 삼형제가 한말의 난세를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세 사람이 의기투합하여 삼형제가 되는 것은 이야기의 발단이며, 분량이 정해진 소설이다보니 "셋이 출발하기 전에 원래부터 이랬었다" 하는 식으로 간단한 배경이야기처럼 서술하는 것이 꼭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이후의 극 전개에 영향을 끼치지 않는 부분이라면 현대 소설에서도 굳이 시시콜콜하게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이들이 왜 같이 만나 형제가 되었냐가 아니라, 서로 형제가 된 그들이 어떻게 난세를 헤치며 끝까지 배신하지 않고 맹세를 지켰는지이기 때문이다. 다만 현대까지 소설의 작법은 등장하는 인물, 사건 및 소재의 배경에 대하여 제한된 분량을 사용하면서도 독자가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을 최대한 제공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왔는데, 이는 독자의 요구가 그러한 방향으로 변화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대에 쓰여진 삼국지연의에서는 유관장 삼형제의 과거 이야기를 추가하는데 조금 더 신경을 쓰고 공을 들이게 된 것이다.
관점을 달리하면, 도원결의 장면의 개연성을 위해서는 그 앞부분에 서술이 필요한 내용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도 생각해볼 수 있다. 셋이 의형제가 되는 과정에 대해 충분한 개연성을 확보하려면 한나라 말기의 사회상에 대한 묘사가 필수적이며, 일개 민간 의료사 겸 종교 교주가 휘하 무리들을 이끌고 반란을 일으켜 나라의 존망을 위협한 과정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17] 또한 한나라 조정이 어떻게 썩어갔으며, 당대 제후들이 어떻게 해서 군벌로 성장했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다 보면, 한나라의 정치와 군사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언급하게 될 것이다. 이 정도 설명을 써놓은 후 삼형제가 걸어온 과거를 슬쩍 양념으로 곁들이면 충분한 개연성이 확보될 것이며, 도원결의 장면만 가지고 하나의 완결된 시나리오를 만들 수가 있다. 그리고 이쯤 되면 이것은 이미 소설이 아니라 역사 교양서적의 수준에 달해 있다.
물론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저것은 지나친 과장이 아니냐, 도원결의의 개연성이 부족하니 보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저렇게까지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반론하고 싶어지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물론 이는 옳은 말이다. 예를 들어 위의 예시에서 '오행도참설부터 설명할 필요가 있다'는 부분은 거의 드립의 영역에 속한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장 역시 어떤 작품이든 그에 등장하는 모든 요소에 대해 완벽한 인과관계와 기승전결을 제시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며, 어떠한 지점에서 그런 설명을 중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설명하는 예시로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즉 어떤 요소의 인과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하려 하면 그 설명에서 또 새로운 요소가 등장하게 되기에 그에 대한 새로운 설명이 필요해진다. 따라서 완벽한 설명을 위해서는 사실상 무한한 분량이 필요하다. 결국 고전소설이든 현대소설이든 <여기까지만 설명하면 독자들이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라고 짐작되는 지점에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버리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고전 독자에 비해 현대 독자들의 경우 그 '지점'의 위치가 좀 더 멀어지고 그 사이의 영역에 대해서도 디테일한 부분까지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하는 경향이 강해진 것이다. 최근의 삼국지연의 매체에서 도원결의 장면 전에 유관장 3인이 미리 만나 얽힌 이야기 이외에도 배경인 한나라 말기의 혼란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함께 설명해주는 경우가 많아진 것 역시 결국은 이 때문이었다.
또한 이는 독자의 관점 변화로도 설명할 수 있는 문제이다. 중국 고전 전통에서 '의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협객'은 아주 전형적인 영웅상 중 하나였고, 이런 협객들이 사소한 계기로 뜻이 맞아 서로 생사를 함께하는 것 역시 전형적인 클리셰였다. 그러니 그저 술집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만나 대뜸 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함께하기로 맹세하는 것이 (최소한 창작물 속에서는)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며, 그들의 영웅호걸다움을 보여주는 면모로 여겨질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고방식이 변화한 현대인 독자들의 눈에 그것은 이상한 일로 비치기에 '왜 그렇게 되었는가'를 설명해줄 복선을 만들어줄 필요가 생긴 것이다.
문학적인 상징으로 도원결의를 해석하자면, 도원향, 즉 복숭아꽃이 만발한 세계는 고대 중국인들의 신화였던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부터 유래되어서 도연명의 도화원기를 통해 중국인들이 꿈꾸는 완벽한 이상향의 세계의 상징으로 인식되었다.
도연명의 도화원기 이후로 도원향은 성당 시절의 왕유와 이백의 시를 통해 이상향의 상징으로 다시금 각인되었고, 북송의 소동파는 도연명을 중국 제일의 시인으로 숭상하면서 도원향은 중국을 넘어서 한국과 일본같은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도 이상향의 대명사로 불후의 명성을 가지게 되었다.
삼국지연의를 쓴 나관중에게도 이상향으로서의 도원이라는 문학적 상징이 매우 익숙하였을 것이다. 나관중이 쓴 도원결의 장면은 삼국지연의 초반부의 절정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연의의 세 주인공, 유비, 관우, 장비 삼형제는 도원향이라는 이상향에서 신성하고 순수한 약속을 맺었다. 도원에서의 결의는 이상의 상징이고, 질서의 상징이고 신뢰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낙원으로서의 도원향은 유비 삼형제가 결의 후에 뛰어들게 된 파천황의 세계인 한말 위진남북조의 대혼란이 벌어지는 현실세계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후한 말부터 불어닥친 소빙하기로의 기후변화는 온갖 자연재해를 불러왔고, 그 결과 황건적의 난이라는 거대한 폭발로 현세지옥의 절정을 이루었다. 후한 6천만 명의 인구가 백년도 못가서 2천3백만 명으로 무려 60%의 인구가 사라지는 종말론의 세계였다.[18] 도원향의 평화롭고 풍족한 이상향과는 달리 후한 말과 위진남북조 시대의 현실은 식인행위까지 벌어지는 약육강식의 냉혹한 본능이 횡행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아포칼립스적인 세계를 초래한 황건적의 난 역시 공교롭게도 유비 삼형제와 대비되는 또다른 삼형제인 장각, 장보, 장량에 의해서 일어났다.
나관중은 도원향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간에 삼국지연의 초반부 절정장면에 배치함으로써 후한 말이나 위진남북조 시대 못지않게 참혹한 원말명초의 혼란기에서 중국 민중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이상향인 도원향에 대한 희망을 삼국지연의의 주인공들에게 투영했었을 것이다.
도원결의는 서왕모의 복숭아 과수원을 연상시키는 천상의 이상적인 공간에 사는 삼국지 연의의 세 주인공들을 마치 환웅 신화같은 천손 신화의 영웅들처럼 참혹한 현세지옥의 세계로 하강시킴으로써 천상의 이상적인 질서와 유토피아를 지상에 재현하려는 상징이었을 것이다. 또한, 조셉 캠벨의 신화비평에 기초해서 분석하자면 결의가 이루어지는 도원은 '모험에의 소명'이 부여되는 평화로운 일상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도원결의를 이후의 유비 삼형제가 걸어갈 혼란스러운 중국 대륙과 도식적으로 비교하자면, 아래와 같다.
도원 ↔ 세속
천상 ↔ 지상
이상 ↔ 현실
질서 ↔ 혼란
평화 ↔ 전쟁
신의 ↔ 배신
유비 삼형제 ↔ 장각 삼형제
위와 같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나관중이 신화적인 공간[19]인 도원을 교묘하게 배치한 이러한 대비효과는 유비 삼형제에게 신화적인 아우라를 부여함으로써 그들의 영웅적인 행보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효과를 준다. 또한 유비 삼형제의 비극적인 결말에 상심할 독자들에게 주인공 삼형제가 죽더라도 다시 돌아갈 이상향으로서의 발할라 혹은 발리노르 같은 공간인 도원을 미리 제시함으로써 위안과 희망을 주는 효과 또한 있었을 것이다.[20]
중요한 것은 도원결의 이전이 아니라 도원결의 이후 유관장 삼형제의 행보다. 평생토록 겪었던 험난한 시련은 물론이요, 조조와 손권을 비롯한 여러 적들의 수많은 공격과 유혹에 삼형제는 굴하지 않고 죽을 때까지 서로 저버리지 않으며 오히려 의기투합하여 난세를 헤쳐나간 덕에 도원결의는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이들의 영원한 우정을 일컫는 대명사가 될 수 있었다. 군신과 형제와 친구와 부부 사이에 배반과 통수가 밥먹듯이 일어났던 후한 말의 난세였기에 이들의 의(義)는 그런 진흙탕 속에서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굳이 후한 말 난세가 아니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 다툼은 혈연이고 뭐고 상관 없이 수많은 피가 흘렀다. 그런데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사람들끼리 난세에 뭉쳐 숱한 위기를 맞닥뜨려도 죽을 때까지 배신하지 않았다는 건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난세이던 당시엔 상관과 양아버지를 죽인 여포, 의심이 든다고 자신을 친절히 맞이해주던 옛 친구와 그 일가족을 죽인 조조[21], 사세삼공 명문가요 형제이지만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났던 원소와 원술, 황족이지만 망해가는 황실을 외면한 채 황제놀이를 하던 유표와 유언 등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 눈을 신경써야 할 군웅들조차 이랬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이런 험난한 시대에 유관장 삼형제는 난세에 몸을 던진 작은 세력으로 수많은 고비를 겪고 아예 적에게 풍비박산이 나 부득이하게 서로 떨어지게 된 일도 여러번 있었고, 더 크고 강한 세력들의 유혹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날 한시 함께 살았던 생전은 물론, 비록 한날 한시 같이 죽지는 못했을지언정, 유비, 관우, 장비는 자신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서로 배반하지 않았다. 정사에서든 연의에서든. 관우만 하더라도 조조에게 항복한 뒤 두터운 호의를 받았지만 모두 저버린 채 결국 빈털터리에 객장 신세인 유비에게 돌아갔고 최후에는 손권에게 사로잡혀 죽는 순간에도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죽인 오를 치는 것이 무리인 줄 모를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관우에 대한 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결전을 준비했다. 비록 이릉대전이 촉한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한, 대실패로 끝났으나 유비는 아우들을 위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유비가 냉정히 판단하여 이릉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유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을 것이며 오늘날 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비록 이들의 꿈인 한나라 부흥은 실패했지만 유관장 삼형제는 2천년 가까이 동아시아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천하평정보다도 더 뿌리깊은, 영원한 의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애당초 관우의 일화를 필두로 유비 세력 자체가 의리남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유비가 여포의 배반으로 서주에서 탈출해 조조의 객장으로 머물 당시 조조는 관우는 물론 장비, 미축, 손건, 간옹 등 유비의 핵심 인재들에게 관직을 주며 은근슬쩍 유비의 세력과 인재를 와해시켜 자기 휘하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특히 장비에게는 중랑장 벼슬까지 내렸고, 장비의 아내 하후씨는 위략에서는 납치당했다고 언급하나 포섭하고자 정략결혼으로 장비를 하후씨 집안 사위로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것을 납치로 언플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나라의 주유는 적벽에서 관우와 장비를 직접 다루어본 사람인데, '관우와 장비는 천하의 용장이지만 오직 유비에게만 충성하니, 일단 유비를 잡아놓고 온갖 부귀영화를 줘서 무능한 인간으로 만든 뒤에 내가 저 둘을 다루면 천하통일도 꿈은 아니다'라며 손권에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안했다. 손권이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완충지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유비를 놓아주는 바람에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때도 주유는 유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무력화하고 관우와 장비를 수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비를 죽인다면 저 둘을 따르게 할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유관장 삼형제를 제외하더라도 삼국지에서 손책과 주유,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처럼 의형제를 맺은 다른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는 연의 기준으로 마등이 죽을 때까지 한수와 친했지만 아들인 마초 대에서는 조조의 농간으로 한수와 갈라지면서 빛이 바랬고, 정사에선 아예 한수와 마등이 서로 대립했다 뭉쳤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의형제는 말뿐이지 사실상 서로를 이용하는 쪽에 가까웠다. 손책과 주유의 경우는 사이가 좋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시험받을 정도로 큰 위기가 없었다. 주유의 신의와 충성심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적벽대전이 있긴 하지만, 이건 손책 사후 손권과의 일이라서 유비 삼형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옅다.
결국 도원결의는 그 자체보다도 맹세를 한 유관장 삼형제가 이후 온갖 유혹과 위기를 맞닥뜨려도 흔들리거나 굴하지 않고, 숱한 역경들을 겪었어도 끝끝내 서로 배신하지 않으며 그 결의를 끝까지 지켜냈기에 특히 돋보이는 것이다. 삼형제는 서로 20대에 만나 관우가 패사할 때까지 수십 년을 함께 했다.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고 혼란했던 천 몇백 년 전 시대에서 수십 년을 굳건한 결속력으로 이어진다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현대인들 역시 수십 년은 고사하고 단 몇 년이나 몇 개월이라도 굳건한 신뢰가 이어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런 점이 당대인들은 물론 후세까지도 사대부, 백성, 삼국지연의를 형성한 이야기꾼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줬던 것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삼국지가 널리 퍼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도원결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의리의 상징으로 굳어진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원결의에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으로 나이 문제가 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일단 유관장 3인의 생년월일은 명시되지 않았는데, 다른 자료들까지 참고하면 유비는 161년생이고 관우는 160년생 혹은 162년생, 장비는 165년생으로 장비가 확실히 막내인 것은 맞다. 문제는 관우인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민간설화의 162년 관우 출생설을 채택하여 나이순으로도 유비>관우>장비가 되도록 설정하고 있다. 다만 장비가 167년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우가 1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채택한 것이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다. 여기에서는 실제 나이로 따지면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많지만 관우가 스스로 맏이가 되는 것을 사양하고, 인덕의 그릇이 큰 유비에게 큰형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나온다. 항우와 유방도 반진전쟁 당시 유방이 나이가 많았지만 세력이 큰 항우가 형을 맡은 바 있다.[22]
난세이던 당시엔 상관과 양아버지를 죽인 여포, 의심이 든다고 자신을 친절히 맞이해주던 옛 친구와 그 일가족을 죽인 조조[21], 사세삼공 명문가요 형제이지만 싸우지 못해 안달이 났던 원소와 원술, 황족이지만 망해가는 황실을 외면한 채 황제놀이를 하던 유표와 유언 등도 있었다. 누구보다 사람들 눈을 신경써야 할 군웅들조차 이랬는데 일반 사람들이야 오죽했겠는가.
이런 험난한 시대에 유관장 삼형제는 난세에 몸을 던진 작은 세력으로 수많은 고비를 겪고 아예 적에게 풍비박산이 나 부득이하게 서로 떨어지게 된 일도 여러번 있었고, 더 크고 강한 세력들의 유혹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한날 한시 함께 살았던 생전은 물론, 비록 한날 한시 같이 죽지는 못했을지언정, 유비, 관우, 장비는 자신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단 한 번도 서로 배반하지 않았다. 정사에서든 연의에서든. 관우만 하더라도 조조에게 항복한 뒤 두터운 호의를 받았지만 모두 저버린 채 결국 빈털터리에 객장 신세인 유비에게 돌아갔고 최후에는 손권에게 사로잡혀 죽는 순간에도 그 의리를 저버리지 않았다. 유비와 장비는 관우를 죽인 오를 치는 것이 무리인 줄 모를 바보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두 사람은 관우에 대한 의를 저버리지 않았고 결전을 준비했다. 비록 이릉대전이 촉한의 운명을 사실상 결정한, 대실패로 끝났으나 유비는 아우들을 위해 이를 실행에 옮겼다. 유비가 냉정히 판단하여 이릉대전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유비는 자신의 정체성을 잃었을 것이며 오늘날 그의 위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비록 이들의 꿈인 한나라 부흥은 실패했지만 유관장 삼형제는 2천년 가까이 동아시아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천하평정보다도 더 뿌리깊은, 영원한 의리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애당초 관우의 일화를 필두로 유비 세력 자체가 의리남들의 모임이기도 했다. 유비가 여포의 배반으로 서주에서 탈출해 조조의 객장으로 머물 당시 조조는 관우는 물론 장비, 미축, 손건, 간옹 등 유비의 핵심 인재들에게 관직을 주며 은근슬쩍 유비의 세력과 인재를 와해시켜 자기 휘하로 흡수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특히 장비에게는 중랑장 벼슬까지 내렸고, 장비의 아내 하후씨는 위략에서는 납치당했다고 언급하나 포섭하고자 정략결혼으로 장비를 하후씨 집안 사위로 끌어들이려다 실패한 것을 납치로 언플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한 오나라의 주유는 적벽에서 관우와 장비를 직접 다루어본 사람인데, '관우와 장비는 천하의 용장이지만 오직 유비에게만 충성하니, 일단 유비를 잡아놓고 온갖 부귀영화를 줘서 무능한 인간으로 만든 뒤에 내가 저 둘을 다루면 천하통일도 꿈은 아니다'라며 손권에게 구체적인 계획까지 제안했다. 손권이 위나라와 오나라 사이에 완충지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유비를 놓아주는 바람에 이 계획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이 때도 주유는 유비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를 무력화하고 관우와 장비를 수하에 두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유비를 죽인다면 저 둘을 따르게 할 가능성 자체가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을 암시한다.
유관장 삼형제를 제외하더라도 삼국지에서 손책과 주유,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처럼 의형제를 맺은 다른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한수와 마등 같은 경우는 연의 기준으로 마등이 죽을 때까지 한수와 친했지만 아들인 마초 대에서는 조조의 농간으로 한수와 갈라지면서 빛이 바랬고, 정사에선 아예 한수와 마등이 서로 대립했다 뭉쳤다를 반복했기 때문에 의형제는 말뿐이지 사실상 서로를 이용하는 쪽에 가까웠다. 손책과 주유의 경우는 사이가 좋았지만 그들의 관계가 시험받을 정도로 큰 위기가 없었다. 주유의 신의와 충성심을 증명하는 사건으로 적벽대전이 있긴 하지만, 이건 손책 사후 손권과의 일이라서 유비 삼형제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옅다.
결국 도원결의는 그 자체보다도 맹세를 한 유관장 삼형제가 이후 온갖 유혹과 위기를 맞닥뜨려도 흔들리거나 굴하지 않고, 숱한 역경들을 겪었어도 끝끝내 서로 배신하지 않으며 그 결의를 끝까지 지켜냈기에 특히 돋보이는 것이다. 삼형제는 서로 20대에 만나 관우가 패사할 때까지 수십 년을 함께 했다. 지금보다 평균 수명이 짧고 혼란했던 천 몇백 년 전 시대에서 수십 년을 굳건한 결속력으로 이어진다는 건 좀처럼 볼 수 없는 일이다. 고대까지 갈 것도 없이 현대인들 역시 수십 년은 고사하고 단 몇 년이나 몇 개월이라도 굳건한 신뢰가 이어지는 경우는 보기 드물다. 이런 점이 당대인들은 물론 후세까지도 사대부, 백성, 삼국지연의를 형성한 이야기꾼을 막론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큰 울림과 감동을 줬던 것이다. 중국 뿐만 아니라 삼국지가 널리 퍼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도원결의가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도 의리의 상징으로 굳어진데는 다 이유가 있다.
도원결의에서 사소하지만 재미있는 부분으로 나이 문제가 있다. 정사 삼국지에서는 일단 유관장 3인의 생년월일은 명시되지 않았는데, 다른 자료들까지 참고하면 유비는 161년생이고 관우는 160년생 혹은 162년생, 장비는 165년생으로 장비가 확실히 막내인 것은 맞다. 문제는 관우인데, 나관중의 삼국지연의에서는 민간설화의 162년 관우 출생설을 채택하여 나이순으로도 유비>관우>장비가 되도록 설정하고 있다. 다만 장비가 167년생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관우가 160년에 태어났다는 설도 있는데, 이를 채택한 것이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다. 여기에서는 실제 나이로 따지면 관우가 유비보다 한 살 많지만 관우가 스스로 맏이가 되는 것을 사양하고, 인덕의 그릇이 큰 유비에게 큰형 자리를 양보한 것으로 나온다. 항우와 유방도 반진전쟁 당시 유방이 나이가 많았지만 세력이 큰 항우가 형을 맡은 바 있다.[22]
- 도원결의가 행해졌다고 전해지는 장소에는 현대에 들어와선 호텔이 세워졌는데, 언제나 전세계의 삼국지 팬들 덕분에 즐거운 아우성을 지르고 있다고 한다. 원래 여기에는 나름 오랜 시간동안 사당이 조성되어 유관장 당사자들과 여러 신하들을 모시고 있었고 여러 사람들이 글이나 비석 등을 만들어 놓았는데, 문화대혁명 시기에 홍위병이 파괴하였다.
- 본인들 뿐만 아니라 자식들에게도 비슷하게 이어졌다. 유비의 아들 유선이 장비의 사위가 되고, 관우의 손자 관통이 유비의 손녀사위(유선의 사위)가 된 것. 그 덕분에 세 사람은 사후에도 서로가 사돈이 됨을 통하여 도원결의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 이걸 소재로 매직 더 개더링에서는 Peach Garden Oath라는 카드가 나왔다.
- 이들이 도원에서 결의를 맺었기에 이들이 죽는 부분은 도원종언이라 불리기도 한다.
- 탁군 누상촌은 지금의 베이징 근처 하북성 탁주시인데 베이징 근방은 대대로 풍부한 일조량과 적은 강수량 때문에 좋은 복숭아가 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도원결의가 묘사되던 시기 전후로 이 일대 복숭아가 유명했다는 의미도 담겨있다는 주장이 있다. 다만 역사서도 아니고 그저 민담 형식의 소설에서 그런 세세한 것까지 고려했을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무릉도원이라는 말처럼 옛부터 중국인들은 신비롭고 영험한 장소를 복숭아 나무가 잔뜩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고 후세 사람들 또한 이 세명의 맹세를 소설적으로 신비롭게 꾸미기 위해서 도원이란 명칭을 사용한 것 뿐이라는 주장도 있다.
- 고시학원 강사 박도원의 도원결의는 도원결의 스파르타의 줄임말이다.
- 청두 유비혜릉 사당 안에는 유비만 아니라 관우와 장비, 제갈량의 상까지 모셔져있다. 장비와 제갈량이야 그렇다쳐도 한번도 익주에 오지 않은 관우의 상까지 모셔졌다는 걸 보아 이 셋이 생전에 누구보다도 굳건한 사이였음을 알리는 목적으로 셋의 상을 유비의 무덤에 놓은 모양이다.
- 토탈 워: 삼국에선 삼형제가 한 군단으로 활동하는 경우, 전투 전 도입 대화로 도원결의를 맺는 회화가 나온다. 그 외에도 적군의 경우엔 형제들에게 '가서 복숭아나 먹어라!'란 말로 형제들의 결의를 모욕하는 전투 대사도 있다.
- 연의 내에서는 도원결의가 상당히 유명하다는 설정인지 하비성에서 장료가 관우를 항복시키려고 설득할 때 도원결의를 어길 거냐고 들먹인다.

반중이라는 공통의 키워드를 가진 대만, 홍콩, 태국의 젊은 네티즌층 사이에서 중국의 횡포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세 나라가 단결할 수 있는 온라인 연합체를 신설하기로 했다. 이에 세 나라 국민들이 자주 마시는 밀크티에 착안해 연합체의 이름을 밀크티 동맹으로 짓기로 결정했고, 연합체의 결성을 삼국지에 나오는 도원결의에 빗대어 복숭아 밭에 태국, 대만, 홍콩인이 밀크티를 서로 위로 올리며 의리를 다지는 듯한 그림을 올리며 활동하기 시작했다.
2016년 6월 14일 엘롯기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나란히 역전패를 당하자 도원결의 짤방에 엘롯기 세 팀을 합성한 짤이 만들어기도 했다.
- 복숭아나무 아래서 형제의 연을 맺었기 때문에 국내에선 유관장 3인방을 피치브라더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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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벼슬 이름.[2] 명공(明公): 듣는 이가 높은 벼슬아치일 때, 그 사람을 높여 이르던 이인칭 대명사. 여기서는 많이 쓰이고 알려져 있는 표현인 '공(公)'으로 번역함.[3] 주금(酬金): 매년 8월 장안에서는 한나라의 시조인 유방에게 제사를 올렸는데, 각 영지의 인구에 따라 황금을 바쳐 제사를 도와야 한다는 규정이 한문제 때 생겼다. 이를 '주금(酬金)'이라고 하며, 이를 어긴 제후들은 직위를 잃어버렸다.[4] 효렴(孝廉): 중국 전한 때 관리를 임용하는 방식 중 하나로, 각 지역의 효자와 청렴한 자를 추천하여 관리로 임명하는 방식을 말함.[5] 덤으로 탁군의 청년 수백 명도 함께 도원에서 술을 마시고 의병이 되었다.[6] 연의에서 도원결의 당시 유비의 나이가 만 28세로 나온다. 관우나 장비는 당시의 나이가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사망할 때 관우는 건안 24년(서기 219년)에 58세로 죽었다 나오고 장비는 장무 원년(서기 221년)에 55세로 죽었다고 나온다. 그리고 유비가 장무 3년(서기 223년)에 63세로 사망했다 나오기 때문에 생일이나 월을 따지지 않고 연도로만 가감했을 때 유비는 관우보다 1세 연상, 장비보다 6세 연상이라는 계산 결과가 나온다.[7] 정사에서는 유비의 나이만 언급되어 있다. 관우와 장비 모두 몰년은 기록되어 있으나 생년이 기록되지 않아 자세한 나이는 알 방법이 없다. 다만 촉서 장비전에 장비가 관우보다 나이가 어려 그를 형으로 섬겼다는 기록은 남아있다.[8]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에 나오는 에피소드에 따르면 도원결의 직전, 유비의 집에 세 사람이 모이고 유비 어머니가 좋은 날이니 좋은 술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아껴뒀던 술을 꺼내 도원결의를 맺는데, 이 때문에 도원결의의 장소가 유비네 복숭아밭으로 오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삼국지연의 원문에 따르면 도원결의를 맺은 장소는 장비 소유의 복숭아밭이다. 상식적으로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가난한 유비네 집에 복숭아밭이 있었다면 돗자리를 짜면서 생계 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밭을 일구면서 살았을 것이다. 물론 삼국지연의도 소설이긴 하지만 말이다.[9] 이것도 판본에 따라 묘사가 달라져서, 단순한 주먹다짐으로 그리는 버전도 있고 집에서 무기까지 들고 와 제대로 맞붙는 골때리는 상황으로 연출되는 버전도 있다. 싸움이 붙은 원인도 예전에 두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갈등이 있었다든지, 지인 문제로 어그로가 끌렸다든지 하는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실제로 중국 탁주 지역에 가면 유비가 관우와 장비를 뜯어말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10] 이런 장면이 만들어지게 된 이유는 아무래도 중국의 민중적 영웅상인 호협(豪俠)의 모습이 대강 이런 식이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중국의 민담에서는 평범하게 지내던 영웅이 뜻밖의 일을 만나서 오로지 대의를 위해서 떨치고 일어난다는 구조가 많다.[11] 주유의 경우 유관장의 신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유비의 능력을 경계하면서도 유비를 죽이려는 시도보다 유비를 볼모로 삼아 관우와 장비가 오나라를 따르게 만들어 주유 자신이 그들을 부리면 대업을 이룰 수 있다고 손권에게 진언한다. 이는 주유 역시 유비를 죽이면 관우와 장비가 절대 따를 리 없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12] 이 우연성에 따른 필연성, 어찌 보면 운명론적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특징은 고전 소설의 특징이다. 우리나라 고전 소설에서도 흔히 보이며 당시에는 이러한 우연이 곧 운명에 따른 필연으로 여겨졌다. 해당 장면은, 대의를 품고 살고 그 대의를 향해 나아갈 유비가 지닌 운명이 우연한 만남을 통해 시작되는 필연성을 보여주며, 훗날 유비가 사망하는 장면에서 비극을 선사한다.[13] 삼국지연의는 유관장 삼형제가 주인공이라곤 하지만 실제로는 계속 시점이 바뀌면서 여러 인물들을 묘사하는 군상극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14] 실제로 이 시대는 기존부터 이어져 오던 사회상이 그 권위의 추락과 득세의 열망으로 인해 무너지면서 금수저부터 흙수저까지 온갖 사회 계층에서 별의별 인물들이 다 판치고 다니던 격변의 시대였다. 삼국의 세 군주들만 봐도 유비는 말이 좋아 황실 후손이지 정사에 대놓고 짚신을 팔면서 생계를 이었다는 말이 적혀있는 평민이나 다름없었고, 조조는 명문가 출신이긴 하지만 은근히 괄시당하는 환관의 손자(조조의 아버지가 환관 조등의 양자였다)였으며, 손권은 지방 호족 출신으로 속된 말로 자기 나와바리에선 한따가리 해도 중앙에는 진출해보지도 못한, 3명 전부 그 시대에는 하자가 하나씩 있는 출신이었다. 이 3명 말고도 후한말 시기에 활동했던 인물들의 대부분도 그때 기준으로 나사가 더 많이 빠진 사람들도 많았다. 대표적으로 이민족 킬러로 불리는 공손찬은 첩의 자식인 서자인데다가 조조랑 맞장을 깠던 원소는 서자인 그 공손찬한테 얼자(노비의 자식)라고 면전에서 까였던 사람이다.[15] 우리나라로 치면 판소리꾼. 특히 양반들의 향유물로 바뀌기 이전에 시장바닥에서 돈을 받으며 공연했던 초창기 쪽이다.[16] 현대 매체에서는 사건의 개연성을 중시하므로 이런 전개가 거의 쓰이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맨스 소설을 쓰더라도 주인공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서로를 사랑하게 됐는지 그 과정을 재미있고 설득력 있게 그려 내야지, 갑자기 눈이 마주치고 운명의 이끌림을 느껴 평생 사랑한다고 하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이런 전개를 높게 평가하지 않는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토르: 천둥의 신에서 고전적인 느낌을 줘 보겠다고 토르와 제인 포스터의 관계를 그런 식으로 묘사해 서구권 평론가들이 모인 로튼토마토에서 호불호가 다소 갈렸다.[17] 여기서 더 나아가면 왜 하필 노란색을 상징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오행도참설을 가져와서 해설해야 하는데, 그러면 오행 이론은 물론 도교 사상의 발달 과정 및 변천사까지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에 대해 빅토르 위고를 비롯한 근대 유럽, 특히 프랑스 소설가들이라면 이렇게 쓰고도 남지 않았겠느냐고 농담하는 이들도 있는데, 사실 그들이 그렇게 쓸 수 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단어당 지불받는 원고료였다. 길게 쓸수록 많은 원고료를 받을 수 있으니 온갖 장광썰을 다 풀어서 길게 쓸 동력이 생겼던 것. 물론 그렇다고 아무 소리나 하면서 무조건 분량만 늘이면 독자들이 화를 내서 그의 소설을 보지 않게 될테니,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이는 그 시대의 소설 독자들이 나무위키스러운 지식자랑을 읽는 것 또한 즐거워하던 시대였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사실 한국에서도 이문열처럼 관련 지식을 잔뜩 늘어놓는 스타일의 소설가가 큰 인기를 끌었던 시기가 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냥 핵심 줄거리를 스피디하게 진행하는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가 있으면 관련 정보나 지식, 주변부 에피소드 등을 잔뜩 엮어 읽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스타일이 유행하는 시대도 있는 법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18] 물론 정말 3천7백만 명이 죽었다는 의미는 아니고, 혼란과 무정부 상태로 인해 호적에 등록된 인구의 비율이 그만큼 격감했다는 의미이다. 근대 이전 동아시아의 역사에서 혼란기를 지날때마다 인구가 절반 이하로 격감하는 것은 십중팔구 정말 절반 이상의 사람이 죽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등록된 인구가 그만큼 격감했다(=인구집단에 대한 정부의 통제력을 상실했다)는 뜻이다.[19] 삼국지연의의 중반부에 도원처럼 평화롭고 신화적인 공간이 또 나온다. 바로 삼국지연의의 네 번째 주인공인 제갈량이 은거했던 고향 융중(隆中)이다. 이후에도 여러 도사들(서촉의 멸망을 예고한 자허상인, 이릉대전의 패배를 예고한 이의기 등)을 등장시켜서 사람이 노력해도 하늘의 뜻을 이길 순 없음을 계속 시사한다.[20] 이러한 것을 반영했는지, 삼국지 IP 게임의 대표작인 진삼국무쌍 3에서는 적장인 유비의 사망대사가 "저 도원으로 돌아가는가"이다.[21] 정사에도 위서 무제기에 배송지 주로 등장한다. 다만 연의에선 아버지 친구로 나온다.[22] 항우는 사망 당시 나이가 고작 30세였다. 반면 유방은 항우와 만났을 당시 이미 40대였다.[23] 유비, 관우, 제갈량이 식탁 앞에 모여 칭다오 병을 들고 건배를 하고 있다. 장비는 술 버릇이 좋지 않아서 이날 나오지 못했다는 후문이 있다.[24] 혹은 제갈량이 산둥성 출신이라서 썼다라는 썰도 있다. 제갈량은 칭다오에서 가까운 린이시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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