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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독립운동가. 2017년 건국포장을 추서받았다.
나병렬은 1887년생이며 평안남도 덕천군 태극면 풍전리 출신이다. 그는 나병삼의 형으로, 1920년경 동생과 함께 대한독립청년단연합회(大韓獨立靑年團聯合會)에 가입했다. 1921년 3월 20일 동생이 덕천군 풍덕면 신흥리 대현에서 동지들과 함께 우편차를 급습해 영원경찰서 박의창(朴義昌)을 사살하고 공금 5,000원과 권총 1정을 확보하자, 그는 동생으로부터 권총 등 무기를 받아 은닉했다. 그러나 얼마 후 일제 경찰의 추적으로 이 사실이 드러나고 말았고, 6월 20일에서 21일 사이에 나병렬을 포함한 83명의 동지들이 맹산경찰서 형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동생과 함께 공판에 회부되었다. 동생은 사형이 그대로 확정되어 교수형에 처해졌지만, 나병렬은 1920년 11월 21일 징역 10개월 및 벌금 50원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나병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7년 나병렬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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