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 펼치기 · 접기 ]
| ||||||||||||||||||||||||
현대 유니콘스 | |||
Hyundai Unicorns | |||
창단 | |||
해체 | |||
법인 설립 | |||
법인명 | ㈜현대유니콘스 | ||
모기업 | |||
상장 유무 | |||
기업 규모 | |||
구단명 변천 | |||
주요 라이벌 | 삼성 - 재계 라이벌 시리즈 | ||
연고지 변천 | |||
홈구장 변천 | |||
2군 구장 변천 | 원당 야구장[9] | ||
2군 | |||
해체 당시 구단 경영진 (2007년) | |||
KBO 한국시리즈 우승 (4회) | |||
프랜차이즈 구단 기록 | |||
KBO 리그에 소속이었다가 2007년에 해체된 원년 프로야구단. 삼청태현의 역사를 마무리한 구단으로 넷 중 가장 긴 역사를 기록했던 구단이자[18]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긴[19] 구단이었다. 연고지는 인천광역시 → 서울특별시·무연고[20] / (비공식)경기도 수원시.[21] 1996년 취임해 팀 최후의 순간까지 함께 한 김용휘 단장[22] 이하 구단 프런트가 개념이 넘친 현장 지원으로 명성을 떨쳤고, 역대 감독은 김재박-김시진이었다. 팀의 상징동물은 유니콘, 상징색은 녹색과 노란색.[23]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야심차게 시작한 구단이었기에 초창기에는 그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재정적으로 풍족했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의 대분열로 인해 모그룹이 상당히 빈약해졌고 운영 주체가 모호해져 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그룹 내에서 유일한 야빠로서 야구단에 큰 지원을 해주던 정몽헌 회장마저 2003년 사망하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남편의 뒤를 이어 새롭게 취임한 현정은 회장은 야구단 운영에 손을 떼 버렸고, 부채가 극심한 수준으로 누적되어 결국 2007년 시즌 종료 후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KBO의 관리 아래 이장석 대표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적 자원과 지명권을 인수해 법인을 해산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하였다.
별명은 투수 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 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24]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25]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쌍방울 레이더스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해본 두 팀 중 한 팀이다.[26]
재계 서열 1위를 다투는 대기업이 야심차게 시작한 구단이었기에 초창기에는 그룹의 강력한 지원을 받아 재정적으로 풍족했지만, 2001년 정주영 회장의 사망 이후 현대그룹의 대분열로 인해 모그룹이 상당히 빈약해졌고 운영 주체가 모호해져 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는 팀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급기야 그룹 내에서 유일한 야빠로서 야구단에 큰 지원을 해주던 정몽헌 회장마저 2003년 사망하면서 상황이 더욱 심각해졌다. 남편의 뒤를 이어 새롭게 취임한 현정은 회장은 야구단 운영에 손을 떼 버렸고, 부채가 극심한 수준으로 누적되어 결국 2007년 시즌 종료 후 더 이상 운영을 지속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었다. 결국 KBO의 관리 아래 이장석 대표의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가 인적 자원과 지명권을 인수해 법인을 해산하고 히어로즈로 재창단하였다.
별명은 투수 왕국. 태평양 돌핀스 후기 시절부터 좋은 투수진을 여럿 배출하던[24] 이 팀의 팀컬러는 현대 유니콘스로 팀명이 변경된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져 내로라하는 투수들이 정말 많았다. 정민태, 정명원, 위재영, 김수경, 임선동, 조용준, 장원삼 등이 현대 유니콘스에서 활약한 투수들이며 무려 4명의 투수신인왕을 배출했다. 1998년 김수경, 2002년 조용준, 2003년 이동학, 2004년 오재영.[25]
삼성 라이온즈와 더불어 쌍방울 레이더스와 포스트시즌에서 대결해본 두 팀 중 한 팀이다.[26]
다만 보조 엠블럼에서는 삼청태와 동일하게 유니콘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디자인을 사용했다. 또한, 삼청태현과는 연관이 없지만 2000년 인천광역시를 연고로 창단된 SK 와이번스 역시 인천 야구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의미로 구단 마스코트 비룡이 타격 자세를 취하고 있는 디자인을 2005년까지 서브 엠블럼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 |
![]() |
![]() |
팀의 상징 동물인 유니콘을 마스코트로 했는데 창단 당시에는 별도의 이름이 없었다가 2002년에 와서 수컷 유니콘을 '유니'로 암컷 유니콘을 '코니'로 명명했다. 전체적인 몸통은 똑같은데 얼굴 부분이 살짝 다르며 코니는 뿔 앞에 붉은색 리본을 작용하고 있다.
![]() |
구단 역사상 마지막 경기 후 단체 사진 |
![]() |
현대 유니콘스가 해체된 이후 프로야구 40주년 기념으로 열린 2022년 올스타전 때 오랜만에 등장했다. 함께 포즈를 취한 마스코트들은 현대의 전신인 청보 핀토스의 조랑말, 태평양 돌핀스의 돌고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스코트였던 슈퍼맨이 없는 것은 저작권 문제 때문이다.
팀의 연고지가 불분명해진 2000년대 이후부터는 인기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팀으로 전락했지만 1999년까지는 이 팀의 원래 연고지였던 인천광역시를 중심으로 현대를 응원하는 팬들이 꽤 있었고 유명인 중에서도 현대 팬을 자처하던 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인천 연고팀 시절을 포함해 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에도 줄곧 이 팀을 응원했던 유명인으로는 가수 겸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던 김광진이 대표적이다. 인천 송림동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숭의야구장을 많이 다녔다고 밝혔던 김광진은 현대의 해체 후 선수단을 이어받아 재창단한 키움 히어로즈를 현재도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출신의 배우 윤철형도 이 팀의 열성팬이었고 인천 출신인 류현진 또한 과거 이 팀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친형 류현수씨와 함께 유니콘스 어린이회원 모자 착용 및 유니폼을 입고 있다. 류현진과 동기생인 이재원도 이 팀의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인천 연고팀 소속의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현대 구단이 해체되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쓰기도 했다.
반면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이 팀의 열혈 팬을 자처했던 인천 출신 개그맨 지상렬, 염경환, 이혁재 등은 현대의 뒤를 이어서 새롭게 인천으로 둥지를 튼 SK 와이번스로 응원팀을 옮기게 된다. 특히 자신의 고향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유달리 강했던 이혁재는 현대의 연고지 이전을 강하게 성토하며 "현대 이 개XX들"이라고 거친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돌아섰다.
스트리머 케인은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었다가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고 이쪽으로 넘어왔는데, 이후 현대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야구를 끊었다가, 김인식 감독 부임 이후 한화 이글스로 응원팀을 옮겼다.
현재 kt wiz의 팬인 이재명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과거 이 구단을 응원했다고 한다.
인천 연고팀 시절을 포함해 2000년 연고지 이전 이후에도 줄곧 이 팀을 응원했던 유명인으로는 가수 겸 펀드매니저로 활동했던 김광진이 대표적이다. 인천 송림동 출신으로 어린 시절부터 숭의야구장을 많이 다녔다고 밝혔던 김광진은 현대의 해체 후 선수단을 이어받아 재창단한 키움 히어로즈를 현재도 열성적으로 응원하고 있다.
과거에는 인천광역시 출신의 배우 윤철형도 이 팀의 열성팬이었고 인천 출신인 류현진 또한 과거 이 팀의 어린이 회원이었다. 기사에 나오는 두 번째 사진을 보면 친형 류현수씨와 함께 유니콘스 어린이회원 모자 착용 및 유니폼을 입고 있다. 류현진과 동기생인 이재원도 이 팀의 어린이 회원이었는데 인천 연고팀 소속의 프로 선수가 되고 나서 현대 구단이 해체되니 만감이 교차했다고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쓰기도 했다.
반면 전신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이 팀의 열혈 팬을 자처했던 인천 출신 개그맨 지상렬, 염경환, 이혁재 등은 현대의 뒤를 이어서 새롭게 인천으로 둥지를 튼 SK 와이번스로 응원팀을 옮기게 된다. 특히 자신의 고향 인천에 대한 애향심이 유달리 강했던 이혁재는 현대의 연고지 이전을 강하게 성토하며 "현대 이 개XX들"이라고 거친 욕설을 내뱉을 정도로 돌아섰다.
스트리머 케인은 빙그레 이글스의 팬이었다가 태평양이 현대로 바뀌고 이쪽으로 넘어왔는데, 이후 현대가 수원으로 연고지를 이전하며 야구를 끊었다가, 김인식 감독 부임 이후 한화 이글스로 응원팀을 옮겼다.
현재 kt wiz의 팬인 이재명 제21대 대한민국 대통령이 과거 이 구단을 응원했다고 한다.
![]() |
2004년 한국시리즈 3차전 당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 모인 현대 유니콘스 팬들과 치어리더들 |
12년(1996~2007)이라는 결코 길지 않은 구단 역사에서 무려 8번(1996, 1998, 2000, 2001, 2002, 2003, 2004, 2006)이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그 중 5번의 한국시리즈 진출(1996, 1998, 2000, 2003, 2004), 4번의 한국시리즈 우승(1998, 2000, 2003, 2004)을 이뤄낸 명문 구단이 됐지만 인기 측면에서는 타 팀에 밀렸던 비인기 구단이었다. 현대의 2000년대 정규시즌 순위가 1-2-3-1-1-7-2-6 이였는데, 이 기간동안 관중 동원 순위는 6-8-8-6-7-8-8-8 을 찍었다. 심지어 2001년에는 창단된지 2년차였던, 본인들이 떠난 숭의야구장을 사용하던 SK에게조차 관중수를 밀리면서 꼴등을 했다.(SK 평관 2666명 VS 현대 2211명) [29]
사실 현대도 1995년 말 태평양을 인수해서 인천에 터를 잡고 있던 1999년까지는 최소한 인천에서만큼은 인기가 꽤 높았던 팀이었다.[30] 유니콘스 시대의 첫 해이자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에는 47만5910명의 관중을 인천과 수원에서 동원하며 1994년에 태평양이 세웠던 프랜차이즈 단일 시즌 최다 관중 기록(47만6277명)을 깰 뻔 했다. 인천이나 수원에서 열리는 주말 홈경기는 표를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관중이 많았고 어린이회원 모집 열기도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이듬해부터 관중의 숫자가 30만대로 급감하기 시작했고 인천 연고 야구단의 최초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록했던 1998년에도 홈구장인 인천과 수원에서 31만 766명의 관중을 동원하는데 그쳤다. 1999년에는 우승 다음해임에도 불구하고 23만 명대로 더 떨어져 창단 첫 해의 절반 이하로 홈 관중 수가 줄어들게 된다. 1999년은 현대 유니콘스와 구단 운영이 막장으로 치닫던 해체 전 마지막 해였던 쌍방울 레이더스를 제외한 모든 구단이 관중수 증가에 성공한 해였는데, 당시 현대 유니콘스의 홈구장 평균 좌석 점유율은 40%대에 불과했으며, 포수 뒤쪽 지정석과 현대 쪽 내야 응원석에만 관중이 들어오고 나머지 블럭은 사실상 텅텅 빈 수준이였다.[31] 이 당시 중계 화면을 봐도 숭의 야구장과 수원 야구장의 외야 관중석은 대부분 비어있었다.
현대의 관중 동원이 인천에서도 하락세를 탔던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로 숭의야구장이 지나치게 낡고 협소했다는 점이다. 당시 숭의야구장은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를 앞두고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친 후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보수 공사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 현대가 구단을 인수한 후 그라운드를 뒤엎고 배수 시설을 고친 뒤 인조잔디를 새로 깐 것이 유일한 보수 내역이었다. 더구나 관중석에 대한 시설 투자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는데 과거 청보 핀토스 시절부터 쓰던 관중석 의자를 계속 쓰다보니 어떤 좌석에서는 의자 지지대가 삭아서 부러진 곳도 있었다고 한다. 화장실 역시 군부대 훈련장이나 낙후된 시골 터미널에서나 볼 법한 수준으로 낙후됐다.
이렇게 더럽고 낡은 시설에 관중이 스스로 찾아올 리가 만무했기에 현대 구단에서도 경기장 관리권을 지닌 인천시청 측에 경기장에 대한 증축 및 전면 리모델링을 건의했으나 인천시 측에서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일설에는 숭의야구장이 당국의 건축 허가를 받지 않고 지어진 불법 건축물이어서 인천시와 현대 구단 모두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어쨌든 심각하게 낡고 좁은 야구장을 시민들이 싫어했기에 열혈 팬들이 아니고서는 관중들이 찾지 않는 경기장이 됐다. 다만 2002년에 문학 야구장이 개장한 점을 고려한다면 낡은 야구장 타령은 사실 변명에 불과하다. 야구장 짓는데 2년 가까이 걸리고 계획이 있었다면 수년 전부터 이야기가 흘러나왔을 것인데 현대가 이걸 모를 리는 없었을 것이다.
둘째로는 1997년 말 찾아온 외환 위기의 여파다. 외환 위기로 인해 수많은 기업이 문을 닫고 근로자들이 대거 실직한 상황에서 여유롭게 야구장에서 경기 관람을 즐길 만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구단의 모기업인 현대그룹은 자금력이 탄탄했지만 구단을 응원하는 팬들의 지갑은 얇아지다 못해 없어질 지경이었다. 하찮은 지출 내역도 모두 줄여야 하는 초긴축 경제 상황에서 가장 먼저 축소되는 지출은 여가생활에 대한 지출이었다. 이 때문에 야구장으로 들어오는 관중의 숫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사실 IMF 여파는 현대라는 특정 구단만이 아닌 한국야구 전체의 큰 위기 였다. 1995년 KBO리그 창설 최초의 500만명 이상 및 평관 1만명 돌파 이후로 점차 줄어들다가 1998년을 기점으로 폭삭 주저 앉았다.
특히 인천의 대표 기업인 대우그룹이 폭삭 무너지면서 인천지역 경제의 붕괴가 생각보다 심각했다. 대우자동차, 대우전자, 대우중공업 등 대우그룹의 대표적인 제조업장이 인천에 위치한 탓에 대우그룹의 협력사들까지 줄도산했던 상황으로 지역경제가 완전히 박살난 상황이라 볼 수 있다.[32]
결국 현대의 연고지 이전은 구단과 모기업 고위층의 2차원적 사고에 의해 감행된 대참사로 볼 수 있다. 이미 서울은 1980년대부터 기존 연고팀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가 탄탄하게 팬덤을 다져놓은 상황이었고 홈구장으로 쓰려 했던 목동 야구장도 프로야구 경기장으로서는 함량 미달의 경기장이었지만 현대그룹 측은 LG와 두산의 팬덤 현황이나 목동 야구장의 시설 수준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단순하게 기존 연고지였던 인천의 시장 규모(당시 250만명)보다 4배나 인구가 더 많은 서울로 가는 것이 관중몰이에 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여기에는 '불도저 정신'으로 대표되던 현대그룹 특유의 기업 문화도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천지역에서 흥행 지속이 어렵겠다고 판단한 현대 구단은 2000년 1월 연고지를 서울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현금 54억원을 받는 조건으로 인천 연고권을 신생 창단팀인 SK 와이번스에게 넘기기로 했는데 이 결정이 결국 얼마 없던 유니콘스의 팬덤을 대거 박살내는 계기가 된다. 현대의 연고지 이전 계획이 언론에 공개되자 분노한 다수의 인천지역 야구 팬들은 현대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새 인천팀인 SK를 응원하거나 아예 야구를 끊어버리는 일까지 벌어졌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인데 구단 모기업인 현대전자의 살림이 어려워지고 당장의 구단 운영비에 여유가 없어진 현대가 SK로부터 받아서 기존 서울 2구단인 LG, 두산에게 줘야 하는 연고지 침해 보상금 54억원을 이미 구단 운영비로 다 써버렸다. 결국 기존 서울 연고팀들의 강력한 반대로 인해 현대는 서울 입성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인천은 물론 서울에서도 홈경기를 할 수 없게 되자 현대는 제2 홈구장으로 쓰던 수원야구장을 임시 홈구장으로 삼았다. 당시 현대는 야구장 안팎에 "수원 현대 유니콘스! 수원시민과 함께 뛰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을 걸며 수원시민들에게 다가서려 했지만 수원시민들은 현대의 이같은 행보를 오히려 냉대했다. 당시 수원시민들은 현대 유니콘스를 그저 "수원에 잠깐 있다가 언젠가 서울로 갈 팀"으로 생각 할 수밖에 없었기에 당시 수원구장 관중석은 늘 비어 있었다. 더구나 당시 수원은 1996년부터 K리그에 참여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 축구단의 인기가 막강했던 축구 도시였기에 수원시 입장에서도 뜨내기에 불과했던 현대에 마음을 줄 수 없었다.
결국 한때 막강한 자금력과 여러 스타 플레이어들을 보유한 명문 팀이었음에도 홈구장 시설의 낙후, 수원시 연고 정착 실패, IMF 경제 위기, 구단 운영진의 실책 등이 겹치면서 팬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팀이 되고 말았다. 반대로 현대의 인천 연고권을 이어 받은 SK 와이번스는 꾸준히 좋은 성적을 올리고 관중 친화적인 지역 밀착 마케팅을 지속한 덕에 창단 초기의 흥행 참패를 벗어나 매년 관중수 상위권을 기록하고 있고, 2022년엔 처음으로 관중수 1위를 기록할정도로 흥참동의 맏형, 인기 구단의 막내정도의 포지션으로 발돋움했다.
또한 인천 야구팬들에게 현대 유니콘스는 현재도 금지어이기도 한데 현대에서 오랫동안 주장을 맡았던 이숭용이 SSG 감독으로 부임하고 송신영, 강병식 등 이숭용과 현역 시절 한솥밥을 먹었던 후배들이 코치로 팀에 자리를 차지하자 곧바로 '현대 카르텔'이라는 멸칭이 붙었다.
예로부터 인천지역은 명투수들이 샘솟듯 나오던 투수의 요람이었다.[33] 그 덕분에 팀의 투수력은 항상 리그 정상권에[34] 있었다. 한 보기로 팀 최초의 포스트시즌 진출이었던 1989년 리그 평균자책점 2, 3, 4위를 당시 신인이었던 박정현, 최창호, 정명원[35]의 '짠물 트리오'가 차지했을 정도.[36]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은 유명한 투수들을 연이어 배출했던 인천+경기+강원 연고에 힘입은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투수왕국 하면 해태를 떠올리지만[37], 선발에 비해 그럭 저럭이었던 불펜진을 가진 해태에 비해, 태평양은 선발부터 마무리까지 역사에 남을 수준급의 투수들을 거느렸다. 오히려 선발이 수준급이지만 불펜이 별로 였던 구단은 빙그레였다. 평균적인 선발레벨은 한희민, 이상군 등을 포함한 빙그레가 해태보다 나았지만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38] 때문이다.
투수진은 남부럽지 않았지만 공격력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부진해[39] 번번이 팀의 상위권 진출에 걸림돌이 되었다. 위에 언급된 신인 짠물 트리오가 40승을 거뒀지만 1989년 팀의 승리는 62승에 그쳤으며,[40] 결국 그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준플레이오프는 박정현의 투혼으로 이겨냈으나[41], 어렵사리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1승도 못 건지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런 공격력과 투수진 사이의 극심한 격차로 인해 붙은 팀 별명은 짠물야구. 더불어 인천 출신인 사람을 '인천 짠물' 또는 짠돌이로 부르던 당시의 지역드립도 영향을 미쳤다. 1루수 김경기[42]와 청보 핀토스에서의 활약을 이어나가 4번타자를 맡았던 포수 김동기[43], LG에 박준태를 내주며 데려온 좌익수 윤덕규 외에는 정말 공격을 맡아줄 타자가 없었다. 그나마 테이블세터진에서 1988~1990시즌까지 해태왕조 초기 핵심 인물인 김일권이 해태시절 해보지도 못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3할의 타율이나(1988시즌), 40개 이상의 도루(1989시즌 62도루, 1990시즌 48도루)로 활약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활약했던 김일권의 후임 1번타자 이희성을 제외하면 6번타자 밑의 하위타선은 문자 그대로 암울했다. 1번타자를 보조할 확실한 2번타자가 없었던 것은 덤. 그나마 이희성도 1992, 1994시즌에 부상으로 빠졌었고, 이희성과 더불어 테이블세터 역할을 했던 여태구도 1992년에만 반짝한 정도였다. 여태구는 준주전 정도의 선수로 기억남을 뿐. 이 짠물 타선이 극에 달한 1993년에는 팀 출루율 .290, 팀 장타율 .299, 팀 OPS .589로 타격 지표에서만 KBO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세 개나 세우게 되며, 팀은 당연히 꼴찌를 하고 말았다.[44]
투수 왕국이라는 별칭은 유명한 투수들을 연이어 배출했던 인천+경기+강원 연고에 힘입은 결과였다. 많은 사람들이 투수왕국 하면 해태를 떠올리지만[37], 선발에 비해 그럭 저럭이었던 불펜진을 가진 해태에 비해, 태평양은 선발부터 마무리까지 역사에 남을 수준급의 투수들을 거느렸다. 오히려 선발이 수준급이지만 불펜이 별로 였던 구단은 빙그레였다. 평균적인 선발레벨은 한희민, 이상군 등을 포함한 빙그레가 해태보다 나았지만 선동열, 조계현, 이강철, 이대진[38] 때문이다.
투수진은 남부럽지 않았지만 공격력은 역대 최악 수준으로 부진해[39] 번번이 팀의 상위권 진출에 걸림돌이 되었다. 위에 언급된 신인 짠물 트리오가 40승을 거뒀지만 1989년 팀의 승리는 62승에 그쳤으며,[40] 결국 그 해 삼성 라이온즈와의 준플레이오프는 박정현의 투혼으로 이겨냈으나[41], 어렵사리 진출한 플레이오프에서 해태 타이거즈에 1승도 못 건지고 탈락하고 말았다.
이런 공격력과 투수진 사이의 극심한 격차로 인해 붙은 팀 별명은 짠물야구. 더불어 인천 출신인 사람을 '인천 짠물' 또는 짠돌이로 부르던 당시의 지역드립도 영향을 미쳤다. 1루수 김경기[42]와 청보 핀토스에서의 활약을 이어나가 4번타자를 맡았던 포수 김동기[43], LG에 박준태를 내주며 데려온 좌익수 윤덕규 외에는 정말 공격을 맡아줄 타자가 없었다. 그나마 테이블세터진에서 1988~1990시즌까지 해태왕조 초기 핵심 인물인 김일권이 해태시절 해보지도 못한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인 3할의 타율이나(1988시즌), 40개 이상의 도루(1989시즌 62도루, 1990시즌 48도루)로 활약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활약했던 김일권의 후임 1번타자 이희성을 제외하면 6번타자 밑의 하위타선은 문자 그대로 암울했다. 1번타자를 보조할 확실한 2번타자가 없었던 것은 덤. 그나마 이희성도 1992, 1994시즌에 부상으로 빠졌었고, 이희성과 더불어 테이블세터 역할을 했던 여태구도 1992년에만 반짝한 정도였다. 여태구는 준주전 정도의 선수로 기억남을 뿐. 이 짠물 타선이 극에 달한 1993년에는 팀 출루율 .290, 팀 장타율 .299, 팀 OPS .589로 타격 지표에서만 KBO 역사상 최악의 기록을 세 개나 세우게 되며, 팀은 당연히 꼴찌를 하고 말았다.[44]
삼청태현 역사 내내 유격수 복이 없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포수만큼은 걱정이 없었다. 금광옥-김진우-김동기-박경완-김동수로 이어지는 화려한 계보가 특징. 삼청태 시절에 활약하였던 포수들은 팀 내에서 가장 잘치는 타자인 경우가 많았고 따라서 수비 부담이 큰 포수임에서 클린업에서 활약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타자가 김동기. 김동기의 경우 1988 시즌 3할 5푼이 넘는 타율을 기록하며 리그 내의 수위타자 자리를 지켰는데 김바위, 이광근과 클린업을 이루어 무시무시한 타격감을 뽐냈다. 그 이후 이해창, 김일권 등 발빠른 테이블세터진이 은퇴하고 원원근, 여태구, 이희성이 반짝 활약에 그치면서 사실상 '태평양은 김동기만 조심하면 되는 팀'으로 변모하였다. 이마저도 김동기가 1993 시즌 타격 부진에 빠지며 팀의 타선은 완전히 물방망이가 되었다.
현대유니콘스 응원가 (사용년도 : 1996 ~ 2007) (현대! 유니콘스! 현대! 유니콘스!) 이 함성 모아서 너희에게 주리라 이루자 신화창조를 우리의 희망을 모두 다 모아서 힘차게 달려 보아라 최강의 유니콘스[45] 꿈의 구단 유니콘스 지칠줄 모르는 너희의 용기 최강의 유니콘스 꿈의 구단 유니콘스 패기와 정열의 너희의 이름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이상이다 현대 유니콘스 우리들의 친구다 현대 유니콘스 너희를 사랑하리라 우리의 현대 유니콘스 |
1996년 창단 때부터 마지막 시즌인 2007년까지 계속 사용되었다.[46] 참고로 인천 연고 시절인 1999년까지 사용된 버전과 2000년부터 사용된 버전이 살짝 다르다. 원래는 2분 40초 정도의 노래지만[47] 인천을 떠난 2000년 이후부터 1분 30초 정도로 축약됐다. 템포가 살짝 빨라졌고 후렴구 반복구가 사라졌다. 응원가를 부른 사람은 디지몬 어드벤처 OP를 불렀던 홍종명[48]이라고 한다. 출처
한 때 디시인사이드 야구 갤러리에서 응원가 관련 게시물의 댓글에 누군가가 '홍서범-조갑경이 부른 것 같다'라고 개인적인 의견을 적은 것이 갤러리 내에서 와전된 후 꽤 널리 퍼져 사실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꽤 많다. 게다가 익히 알려져 있는 것처럼 홍서범은 LG 트윈스가 지면 다음날 집안 분위기가 개판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LG 트윈스의 광팬이다. 때문에 1996년 창단 당시 현대 구단에서 거액을 제시하며 응원가 녹음 제안을 했다고 하더라도 LG에 대한 충성심이 지극한 홍서범이 수긍을 했겠느냐는 의견이 있다.
키움 히어로즈 창단 초기에는 이 응원가의 현대! 유니콘스! 부분을 최강! 히어로즈!로 바꿔서 부르기도 했으나 원곡의 맛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여러 논란들이 겹치며 폐기처분돼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
연안부두 (사용년도 : 1996 ~ 1999)[계승] 어쩌다 한번~ 오는 저 배는~ 무슨 사연 싣고 오길래~ 오는 사람~ 가는 사람~ 마음마다 설레게 하나~ 부두에 꿈을 두고 떠나는 배야~ 갈매기 우는 마음 너는 알겠지~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빠라바라밤~ 빠바밤 빠라바라밤~ 빠바바밤~ 빠바바바바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울고~ 배 떠나면 나도 운단다~ 안개 속에~ 가물가물~ 정든 사람 손을 흔드네~ 저무는 연안부두 외로운 불빛~ 홀로 선 이 마음을 달래주는데~ 말해다오~ 말해다오~ 연안부두 떠나는 배야~ |
1979년 혼성그룹 김트리오가 발매한 대중가요.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부터 인천 연고 프로야구단을 상징하는 응원가로 사용됐던 만큼 태평양 돌핀스를 인수한 현대 유니콘스 역시 옛 팀들의 전통을 이어받아 연안부두를 비공식 응원가를 사용했다. 그러나 2000년 연고지 이전을 단행한 후로는 당연하게도 이 노래가 쓰이지 않았고, 인천을 연고로 새롭게 창단된 SK 와이번스가 이 노래를 응원가로 사용하여 현재 SSG 랜더스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여담으로 전신 팀 중 하나인 삼미 슈퍼스타즈 매각 당시와 현대 유니콘스의 연고지 이전 당시 성난 인천 야구팬들은 야구장 앞에서 연안부두를 부르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정보 있는 것만)
- 이숭용: (라면과 구공탄)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이숭용~ 날려버려 날려버려 안타 이숭용~ X2
- 브룸바: (SK 시절 박재홍 구호) 현!대! 브!룸!바! 홈!런!타!자! 브!룸!바! X2 브!룸!바! 화이팅!
- 이택근: (369송) 이~택근 이택근 이~택근 이택근 안~타! 이!택!근! X2
- 전준호: (뽀뽀뽀) 안타치고 도루하는 전준호~ X4
- 정성훈: (아기염소) 정성훈 안타! 정성훈 안타! 안타를 날려주세요~ 정성훈 홈런! 정성훈 홈런! 홈런을 날려주세요~ X2
- 안타송: (원곡불명) (딴다단다따단~) OOO 안타!(홈런!) (딴따다다다다다다단) OOO 안타!(홈런!) X2[53]
- 리듬 응원1: (캉캉) (딴 따다다다 딴딴 따다다다 단단 따다다다) 막!강!현!대! X2 막! 강! 현! 대!
- 리듬응원2: (순정) 워어어~ (현!) 워어어~ (대!) 워어 워어어 워어어~ (현대!) X2
- 견제응원: (쿵쿵!) 날새! (쿵쿵!) 날새! (쿵쿵!) 날새!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던져!
- 기본 박수구호: (짝짝짝! 짝짝! 짝짝짝!) 현대! X2
- 박수구호: (짝! 짝짝 짝짝! 짝! 짝짝 짝짝!) 막!강!현!대![54]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47 | 투수 | 1990(태평양) | 2003(KIA) | 인천 연수구유소년야구단[58] 감독 | ||
68 | 김동건 | 2004(현대) | 2004~2005 | 2005(현대) | ||
67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07(현대) | 키움 히어로즈 원정기록원 | ||
50 | 2006(현대) | 2006~2007 | 2021(SSG) | |||
99 | 1999(현대) | 1999~2001(현대) | 2001(현대) | KBO 심판위원 | ||
93 | 1991(OB) |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66 | 김선일 | 2004(현대) | 2004~2006(현대) | 2006(현대) | ||
45 | 2000(현대) | 2000~2007 | 2014(넥센) | |||
30 | 1998(현대) | 1998~2007 | 2014(고양) | |||
11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2001.6(현대) | 2003(한화) | 부평구 리틀야구단 감독 | ||
48~34 | 2002(삼성) | 2004~2007 | 2007(넥센) | 키움 히어로즈 1군 불펜코치 | ||
50 | 2003(현대) | 2003~2007 | 2013(넥센) | 수원시 야구레슨장 코치 | ||
50 | 1996(SD) | 2002 | 2006(중신) | |||
57 | 류상문 | 2003(현대) | 2003~2005 | 2005(현대) | 청원중학교 투수코치 | |
29 | 2000(현대) | 2000~2007 | 2015(한화) | 대전유천초등학교 야구부 감독 | ||
24 | 1997(TB) | 2005~2006 | 2009(퉁이) | 아세레로스 데 몽클로바 감독 | ||
93 | 2006 | 2006~2007 | 2018(NC) | 인천 남동구청 리틀야구단 코치 | ||
38 | 박상진 | 2004(현대) | 2004~2006 | 2006(현대) | ||
60 | 1999(현대) | 1999~2007 | 2008(우리) | 두산 베어스 스카우트팀 수석 스카우트 | ||
21 | 1988(태평양) |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0(SK) | 토론토 사회인 야구리그 (MPBL) 감독 겸 선수 | ||
49 | 박종선 | 2007(현대) | 2007(시즌 해체 종료) | 2007(현대) | ||
49-27 | 2000(현대) | 2000~2007 | 2012(KIA) | 한화 이글스 잔류군 투수코치 | ||
21 | 2002(현대) | 2002~2007(현대) | 2017(KIA) | |||
23 | 2000(현대) | 2000~2007 | 2010(넥센) | 용인 드래곤즈 투수코치 | ||
34 | 2001(현대) | 2001~2005 | 2005(현대) | |||
40 | 1996(현대) | 1996~2001 | 2001(현대) | |||
21 | 2005(현대) | 2005~2007 | 2019(롯데) | KIA 타이거즈 1군 수석코치 | ||
53 | 송선목 | 2002(현대) | 2002 | 2002(현대) | ||
14-19 | 1999(현대) | 1999~2007 | 2017(한화) | SSG 랜더스 1군 수석코치 | ||
22 | 1997(MIN) | 2003 | 2003(현대) | 경찰관 | ||
29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3(LG) | 경남대학교 투수코치 | ||
53 | 1997(HOU) | 2001 | 2002(DET) | |||
47 | 2005(현대) | 2005~2007 | 2013(두산) | 김해고등학교 감독 | ||
59 | 2004(현대) | 2004~2007 | 2021(키움) | |||
33-59-55 | 2002(현대) | 2002~2007 | 2015(NC) | 상무 피닉스 야구단 투수코치 | ||
65 | 이근용 | 1997(현대) | 1997~1998,2001(이상 현대) | 2001(현대) | ||
65 | 2000(현대) | 2000~2007 | 2014(LG) | 충암고등학교 코치 | ||
42 | 2005(현대) | 2005~2007 | 2021(kt) | |||
11 | 1996(한화) | 2001~2007 | 2015(SK) | 포천 몬스터 투수코치 | ||
52 | 이상현 | 2000(현대) | 2000~2005 | 2008(우리) | ||
25 | 2001(삼성) | 2005~2007 | 2010(넥센) | KIA 타이거즈 2군 투수코치 | ||
90 | 이정신 | 2006(현대) | 2006 | 2006(현대) | ||
29-48 | 2006(현대) | 2006-2007 | 2022(두산) | |||
91-22 | 우원식 | 2004(현대) | 2004~2005 | 2005(현대) | ||
18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2004(현대) | 2007(SK) | |||
56 | 윤성귀 | 2002(현대) | 2002~2004,2007(현대) | 2007(현대) | ||
54 | 1997(LG) | 1999~2007 | 2007(현대) | |||
55 | 2006(현대) | 2006~2007 | 2020(롯데) | |||
38 | 2006(현대) | 2006~2007(현대) 2008~2009(우리) 2010~2011(넥센) | 2011(넥센) | |||
40 | 2005(현대) | 2005-2007 | 2022(kt) | |||
61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11(SK) | |||
28 | 1989(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0(현대) | KBO 의무위원 | ||
20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08(KIA) | 삼성 라이온즈 육성군 재활코치 | ||
21-27 | 1991(쌍방울) | 1998~2000 2003(이상 현대) | 2005(KIA) | 제주고등학교 투수코치 | ||
60 | 2006(현대) | 2006~2007 | 2008(우리) | |||
51 | 2002(현대) | 2002~2007 | 2010(넥센) | 서울아이티고등학교 BC 감독 | ||
57 | 2006(현대) | 2006~2007 | 2013(넥센) | |||
41 | 1990(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9(SK) | 두산 베어스 잔류·재활군 코치 | ||
64 | 조창훈 | 1997(현대) | 1997~1999 | 1999(현대) | ||
98 | 1999(현대) | 1999~2002 | 2002(현대) | |||
18 | 1997(현대) | 1997~2001.6(현대) | 2017(KIA) | 용인예술과학대학교 감독 | ||
45 | 1996(현대) | 1996~1999(현대) | 2010(LG) | |||
31 | 1987(청보) | 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2002(LG) | |||
40 | 최환인 | 2002(현대) | 2002~2004 | 2006(롯데) | ||
39 | 1993(SD) | 2001 | 2001(현대) | |||
16 | 1998(현대) | 1998~2001 | 2001(현대) | 개성고등학교 감독 | ||
45 | 1997(삼성) | 2001~2007(현대) | 2011(넥센) | 경희대학교 투수코치 |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12 | 포수 | 2002(현대) | 2002~2007 | 2013(KIA) | ||
26 | 2002(현대) | 2005~2007 | 2012(한화) | |||
35 | 1986(청보) | 1986~1987(청보) 1988~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연수구 유소년 야구단 지도자[67] | ||
2 | 1986(빙그레) |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2 | 1990(LG) | 2003~2007(현대) | 2009(히어로즈) | |||
32 | 김성준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12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1998(현대) | |||
2-56 | 1998(현대) | 1998~2004 | 2004(현대) | 강릉영동대학교 배터리코치 | ||
15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부천고등학교 코치 | ||
22 | 박상일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
26 | 1991(쌍방울) | 1998~2002(현대) | 2013(SK) | |||
22 | 2005(현대) | 2006~2007 | 2016(넥센) | 구미대학교 야구부 코치 | ||
26 | 2007(현대) | 2007 | 2019(질롱) | |||
25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1999,2001(현대) | 2001(현대) | |||
53 | 2003(현대) | 2003~2006 | 2006(현대) | 선린인터넷고등학교 코치 | ||
35 | 2007(현대) | 2007(시즌 해체 종료) | 2013(고양) | 나주 광남BC 코치 | ||
84 | 최호근 | 1996(태평양) | 1996 | 1996(현대) | ||
24-37 | 2002(현대) | 2002~2005 | 2017(SK) | |||
44 | 2005(현대) | 2005~2007 | 2014(NC) | 백송고등학교 코치 |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2루수 | 1989(삼성) | 1996 | 1996(현대) | |||
25-17 | 유격수 | 2006(현대) | 2006~2007 | 2019(PIT) | ||
52 | 내야수 | 2003(현대) | 2003~2007 | 2011(넥센) | 키움 히어로즈 스카우트 | |
55 | 3루수, 투수[71] | 1990(태평양) | 1990~1995(태평양) 1996~2003(현대) | 2008(한화) | ||
00 | 1루수, 3루수 | 1990(태평양) | 1990~1995(태평양) 1996~2000 시즌 중(현대) | 2001(SK) | ||
14 | 내야수, 우익수 | 2007(현대) | 2007 | 2014(넥센) | 한화 이글스 2군 외야·주루코치 | |
18 | 김동현 | 내야수 | 1996(현대) | 1996~1999(현대) | 1999(현대) | |
66 | 김태광 | 포수 | 1996(현대) | 1996 | 1996(현대) | |
14 | 내야수 | 1995(한화) | 2005~2006 | 2006(현대) | 세종공공SC 감독 | |
0-5 | 내야수(2루) | 1997(현대) | 1997~2007 | 2013(LG) | LG 트윈스 1군 수비코치 | |
3 | 내야수, 좌익수 | 2002(현대) | 2002~2004 | 2016(KIA) |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 |
69 | 김해녕 | 내야수 | 1995(현대) |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17 | 3루수 | 1987(TOR) | 2000~2001(현대) | 2002(LG) | ||
31 | 2루수 | 1992(LG) | 1998 시즌 중[75]~2003(현대) | 2010(LG) | 고양 백송고등학교 감독 | |
7 | 유격수 | 1996(현대) | 1996~2004(현대) | 2015(SK) | 삼성 라이온즈 감독 | |
12 | 3루수 | 1989(텍사스) | 1998 | 1999(투손) | ||
3 | 유격수, 2루수, 3루수 | 2006(현대) | 2006~2007 | 2017(kt) | 화성 비봉고등학교 코치 | |
9 | 2루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 | 2001(SK) | 한화 이글스 전력 강화 코디네이터 | |
15 | 내야수 | 1998(롯데) | 2002~2007(현대) | 2007(현대) | 디지털서울문화예술대학교 야구부 감독 | |
42 | 신규한 | 내야수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
56 | 내야수 | 1996(현대) | 1996~1998 | 1998(현대) | ||
12-5 | 유격수 | 1991(태평양) | 1991~1995(태평양) 1996~2000(현대) | 2000(현대) | LG 트윈스 감독 | |
34 | 1루수 | 2005(현대) | 2005~2007 | 2025(kt) | ||
92-66 | 내야수 | 2005(현대) | 2005~2007 | 2007(현대) | ||
68 | 내야수[76] | 2006(현대) | 2006~2007 | 2020(KIA) | 롯데 자이언츠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 |
60 | 이경호 | 내야수,투수 | 1992(태평양) | 1992~1995 1996~1998(현대) | 1998(현대) | |
17 | 3루수 | 1991(태평양) | 1991~1995(태평양) 1996~1997 시즌 중[77](현대) | 1999(쌍방울) | 인천 중구 리틀야구단 감독 | |
10 | 1루수, 외야수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2007(현대) | 2011(넥센) | SSG 랜더스 1군 감독 | |
46-1 | 내야수 | 1989(빙그레) | 1995(태평양) 1996(현대) | 1996(현대) | ||
37 | 포수,내야수 | 1992(태평양) | 1992~1995(태평양) 1996~2001(현대) | 2009(KIA) | ||
4 | 1루수, 2루수 | 1989(OB) | 1998~2001(현대) | 2001(현대) | ||
6 | 내야수 | 1995(태평양) | 1996~2002(현대) | 2002(현대) | 제물포고등학교 감독 | |
50 | 이유섭 | 내야수, 투수 | 2003(현대) | 2003~2005 | 2008(우리) | |
3-31 | 3루수 | 2000(현대) | 2000~2001,2004~2005 | 2006(두산) | ||
35 | 조승현 | 내야수 | 1997(현대) | 1997~1999,2000~2006 | 2006(현대) | |
17 | 1루수, 좌익수 | 2001(SK) | 2007 시즌 중 ~ 종료(현대) | 2015(kt) | 두산 베어스 1군 타격보조코치 | |
24 | 내야수 | 1989(MIL) | 1999 | 1999(현대) | ||
58 | 내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18(NC) | 중앙중학교 코치 | |
16 | 3루수 | 1999(해태) | 2003~2007 | 2018(KIA) | ||
6 | 2루수, 3루수, 유격수 | 2003(현대) | 2003~2007 | 2021(NC) | NC 다이노스 1군 수비코치 | |
7 | 내야수 | 2005(현대) | 2005~2007 | 2017(삼성) | ||
15-9 | 유격수, 2루수 | 1998(현대) | 1998~2007 시즌 중 | 2008(LG) | ||
23 | 내야수 | 1994(태평양) | 1994~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한인 야구팀 코치 겸 고문[78] | |
43 | 허유신 | 내야수 | 1996(현대) | 1996~1998 | 1998(현대) | 서산시 서해안 야구연합회 코치 |
3 | 3루수 | 1996(한화) | 2006~2007 시즌 중 ~ 종료(현대) | 2007(현대) | 두산 베어스 1군 수석코치 | |
13 | 3루수, 유격수 | 2006(현대) | 2006~2007 | 2025(kt) | ||
94 | 2루수 | 2006(현대) | 2006~2007 | 2025(롯데) |
배번 | 이름 | 포지션 | 데뷔년도 | 삼청태현 소속기간 | 은퇴년도 | 비고 |
25-36 | 1루수, 우익수 | 2002(현대) | 2002~2007 | 2012(넥센) | ||
44 | 외야수 | 1989(삼성) |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8(쌍방울) | ||
33 | 강필선 | 외야수 | 1999(현대) | 1999~2001 | 2003(롯데) | 야로 베이스볼 클럽 코치 |
39 | 외야수 | 1993(태평양) | 1993~1994 1996~1997(현대) | 1997(현대) | 인천고등학교 감독 | |
36 | 1993(태평양) | 1993(태평양), 1996~1997 시즌 중(현대) | 1997(쌍방울) | 유원대학교 야구부 감독 | ||
14 | 외야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8(현대) | 1999(쌍방울) | ||
16-33 | 외야수 | 1984(OB) | 1997~1998 | 1999(쌍방울) |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 | |
42 | 김낙관 | 외야수 | 1997(현대) | 1997~1999(현대) | 1999(현대) | |
8 | 내야수, 외야수 | 1989(롯데) | 1990~1995(태평양) 1996~2001(현대) | 2001(현대) | 광주진흥고등학교 감독 | |
8 | 외야수 | 1995(태평양) | 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36 | 김종희 | 외야수 | 1995(태평양) | 1995~1996 | 1996(현대) | |
33 | 외야수 | 1992(캔자스) | 2005~2006 | 2007(KIA) | ACL 로열스 감독 | |
44 | 박기범 | 외야수 | 1999(현대) | 2004(현대) | 동산중학교 감독 | |
14 | 박우호 | 외야수 | 2002(현대) | 2002~2004 | 2005(현대) | |
62 | 중견수, 우익수 | 1996(현대) | 1996~2002(현대) | 2012(SK) | MBC /MBC SPORTS+ 해설위원 | |
24 | 외야수 | 1996(BAL) | 1999.6.28~시즌 중 종료 | 1999(시즌 중 종료)(현대) | ||
27 | 서성민 | 우익수 | 1999(현대) | 1999~2002 | 2002(현대) | |
36 | 좌익수 | 2002(현대) | 2002~2005 | 2005(현대) | ||
14 | 우익수 | 1995(LG) | 2000 | 2008(KIA) | KIA 타이거즈 단장 | |
44-32 | 3루수, 좌익수, 우익수 | 1994(OB) | 2001~2004 | 2008(삼성) | ||
17-25 | 외야수 | 1996(한화) | 2004~2007 | 2014(넥센) | LG 트윈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 |
3 | 외야수 | 1985(MBC) | 1992(시즌 중)~1995(태평양)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44 | 윤인섭 |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2 | 2002(현대) | 안산블랙샤크 선수 |
32 | 포수,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5(한화) | 고양 히어로즈 감독대행·타격코치 | |
39 | 유격수,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21(kt) | kt wiz 1군 타격 보조 코치. | |
46 |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7 | 2013(고양) | ||
39 | 외야수 | 2003(현대) | 2003~2005 | 2018(NC) | 삼성 라이온즈 1군 외야수비·작전코치 | |
42-31 | 포수, 1루수, 외야수 | 2003(현대) | 2003~2007 | 2020(키움) [81] | ||
63 | 이학균 | 좌익수 | 1998(현대) | 1998~2000 | 2000(현대) | |
51 | 외야수 | 1989(태평양) | 1989~1995(태평양) 1996(현대) | 1997(삼성) | ||
47 | 외야수 | 2001(현대) | 2001~2007 | 2018(한화) | ||
62 | 장요상 | 우익수 | 2004(현대) | 2004~2005 | 2008(우리) | 전주 투혼야구단 코치 |
49 | 외야수 | 1993(태평양) | 1993~1995(태평양) 1996~1999(현대)[82] | 2001(SK) | ||
46 | 외야수 | 1996(현대) | 1996~2002 | 2004(KIA) | ||
64 | 외야수 | 2000(현대) | 2000~2007 | 2010(한화) | SDF 투칸스 U-16 감독 | |
1 | 좌익수, 중견수 | 1991(롯데) | 1997~2007 | 2009(히어로즈) | KBS N SPORTS 해설위원 | |
8 | 우익수, 중견수 | 1997(현대) | 1997~2007(현대) | 2013(넥센) | LG 트윈스 1군 작전코치 | |
63 | 정현택 | 좌익수 | 1998(LG) | 2001(시즌 중)~2002 (이상 현대) | 2003(KIA) | |
17 | 정현희 | 외야수 | 1999(현대) | 1999~2000 | 2000(현대) | |
13 | 외야수 | 1998(현대) | 1998~2005 | 2012(SK) | ||
26 | 외야수 | 1993(빙그레) | 1995.6(태평양-시즌 중 종료) 1996~1997(현대) | 1997(현대) | ||
24 | 외야수 | 1997(현대) | 1997~2000 | 2009(롯데) | kt wiz 1군 작전·주루코치 | |
46-33 | 외야수 | 1994(삼성) | 2002~2003 | 2005(SK) | 야구육성사관학교 총감독 개혁신당 스포츠문화특보단장 | |
4 | 외야수 | 2004(현대) | 2004~2005 | 2012(LG) | ||
24 | 3루수, 외야수 | 2001(TEX) | 2003~2004, 2007 | 2009(히어로즈) |
- USA: 미국
- DOM: 도미니카 공화국
- VEN: 베네수엘라
년도 | 이름(영문) | 국적 | 포지션 | |
1998 | 조 스트롱(Joe Strong) | USA | 투수 | |
스캇 쿨바(Scott Coolbaugh) | USA | 내야수 | ||
1999 | 에디 피어슨(Eddie Pearson) | USA | 내야수 | |
조지 카날리(George Canale)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브렌트 바워스(Brent Bowers)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0 | 톰 퀸란(Tom Quinlan) | USA | 내야수 | |
에디 윌리엄스(Eddie Williams)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대릴 브링클리(Darryl Brinkley)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시즌중 방출 | |
찰스 카펜터(Charles Carpenter)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1 | 케리 테일러(Kerry Tayler) | USA | 투수 | |
톰 퀸란(Tom Quinlan) | USA | 내야수 | ||
J.R. 필립스(J. R. Philips)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오스카 엔리케스(Oscar Henriquez) | VEN | 투수 | ↖ 대체 영입 | |
2002 | 멜키 토레스(Melqui Torres) | DOM | 투수 | |
코리 폴(Corey Paul) | USA | 내야수 | ||
다리오 베라스(Dario Veras) | DOM | 투수 | 시즌중 방출 | |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 USA | 내야수 | ↖ 대체 영입 | |
2003 | 셰인 바워스(Shane Bowers) | USA | 투수 | |
마이클 프랭클린(Michael Franklin) | USA | 내야수 | 시즌중 방출 | |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 USA | 외야수 | ↖ 대체 영입 | |
2004 | ||||
마이클 피어리(Mike Fyhrie) | USA | 투수 | ||
2005 | 래리 서튼(Larry Sutton)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
2006 | 래리 서튼(Larry Sutton)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
2007 | 클리프 브룸바(Cliff Brumbaugh) | USA | 외야수 | |
미키 캘러웨이(Mickey Callaway) | USA | 투수 | 시즌중 방출 |
[ 펼치기 · 접기 ]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삼미 슈퍼스타즈 | 초대 | 1982년 | 13전 3승 0무 10패 (승률 0.230) | ||
감독대행 | 1982년 | 67전 12승 0무 55패 (승률 0.179) | |||
2대 | 1983년~1985년 | 153전 61승 3무 89패 (승률 0.407) | |||
감독대행 | 이재환 | 1983년 | 14전 5승 0무 9패 (승률 0.357) | ||
감독대행 | 1983년 | 30전 17승 0무 13패 (승률 0.567) | |||
감독대행 | 1983년 | 20전 8승 1무 11패 (승률 0.421) | |||
감독대행 | 1985년 | 38전 14승 0무 24패 (승률 0.368)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청보 핀토스 | 초대 | 1985년 | 55전 24승 1무 30패 (승률 0.444) | ||
2대 (통산 3대) | 1986년 | 57전 15승 2무 40패 (승률 0.273) | |||
감독대행 | 1986년 | 51전 17승 0무 34패 (승률 0.333) | |||
3대 (통산 4대) | 1987년 | 108전 41승 2무 65패 (승률 0.389)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태평양 돌핀스 | 초대 | 1988년 | 15전 1승 0무 14패 (승률 0.066) | ||
감독대행 | 1988년 | 93전 33승1무 59패 (승률 0.357) | |||
2대 (통산 5대) | 1989년~1990년 | 240전 120승 7무 113패 (승률 0.515) | 1989년 플레이오프 진출 | ||
3대 (통산 6대) | 1991년 | 126전 55승 2무 69패 (승률 0.444) | |||
4대 (통산 7대) | 1992년~1995년 | 504전 206승 21무 277패 (승률 0.427) | 1994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 ||
구단명 | 순서 | 이름 | 재임 기간 | 전적 | 비고 |
현대 유니콘스 | 초대 (통산 8대) | 1996년~2006년 | 1427전 778승 36무 613패 (승률 0.559) | 1996년 한국시리즈 준우승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0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1년 플레이오프 진출 2002년 준플레이오프 진출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4년 한국시리즈 우승 2006년 플레이오프 진출 | |
2대 (통산 9대) | 2007년 | 126전 56승 1무 69패 (승률 0.448) |
1996년 현대 유니콘스로 팀이 개편되기 전까지는 대대로 팀 전력이 최약체를 벗어나지 못한 탓에 역대 정식 감독 중 재임 중 승률이 5할을 넘긴 감독은 김성근과 김재박 뿐이다. 팀의 간판이 네 번이나 바뀌었고 현대 시절을 빼고는 하위권을 전전했지만 구단 역사 전체를 통틀어 본다면 감독 교체는 생각보다 빈번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삼성 라이온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 등은 10명 이상의 감독들이 등장했다가 사라졌지만 삼미부터 현대까지 정식 감독의 숫자는 삼미 초대 감독인 박현식부터 유니콘스 최후의 감독 김시진까지 9명이었다. 이는 구단의 26년간의 구단 역사 중 절반에 육박하는 11년간 김재박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던 영향이 크다. 물론 현대 시절을 빼고 삼미부터 태평양까지만 친다면 성적 부진으로 인한 감독 교체가 꽤 잦았다고 볼 수 있다.
| 우승 |
| 준우승 |
| 포스트시즌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2 | 6위/6팀[92] | 6위 | 삼미 슈퍼스타즈 | 80 | 15 | 0 | 65 | 0.188 |
1983 | 3위/6팀[93] | 3위 | 100 | 52 | 1 | 47 | 0.525 | |
1984 | 6위/6팀[94] | 6위 | 100 | 38 | 3 | 59 | 0.392 | |
1985[95] | 6위/6팀[96] | 6위 | 삼미 / 청보 | 110 | 39 | 1 | 70 | 0.358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6 | 6위/7팀[97] | 6위 | 청보 핀토스 | 108 | 32 | 2 | 74 | 0.302 |
1987 | 7위/7팀[98] | 7위 | 108 | 41 | 2 | 65 | 0.389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88 | 7위/7팀[99] | 7위 | 태평양 돌핀스 | 108 | 34 | 1 | 73 | 0.319 |
1989 | 3위/7팀 | 3위 | 120 | 62 | 4 | 54 | 0.533 | |
1990 | 5위/7팀 | 5위 | 120 | 58 | 3 | 59 | 0.496 | |
1991 | 5위/8팀 | 5위 | 126 | 55 | 2 | 69 | 0.444 | |
1992 | 6위/8팀 | 6위 | 126 | 56 | 3 | 67 | 0.456 | |
1993 | 8위/8팀 | 8위 | 126 | 34 | 10 | 82 | 0.310 | |
1994 | 2위/8팀 | 준우승 | 126 | 68 | 3 | 55 | 0.552 | |
1995 | 7위/8팀 | 7위 | 126 | 48 | 5 | 73 | 0.401 | |
연도 | 정규시즌 순위 | 최종 순위 | 팀 이름 | 경기수 | 승 | 무 | 패 | 승률 |
1996 | 4위/8팀 | 준우승 | 현대 유니콘스 | 126 | 67 | 5 | 54 | 0.552 |
1997 | 6위/8팀 | 6위 | 126 | 51 | 4 | 71 | 0.421 | |
1998 | 1위/8팀 | 우승 | 126 | 81 | 0 | 45 | 0.643 | |
1999 | 드림 3위/4팀 | 드림 3위 | 132 | 68 | 5 | 59 | 0.535 | |
2000 | 드림 1위/4팀 | 우승 | 133 | 91[100] | 2 | 40 | 0.695[101] | |
2001 | 2위/8팀 | 3위[102] | 133 | 72 | 4 | 57 | 0.558 | |
2002 | 3위/8팀 | 4위[103] | 133 | 70 | 5 | 58 | 0.547 | |
2003 | 1위/8팀 | 우승 | 133 | 80 | 2 | 51 | 0.611 | |
2004 | 1위/8팀 | 우승 | 133 | 75 | 5 | 53 | 0.586 | |
2005 | 7위/8팀 | 7위 | 126 | 53 | 3 | 70 | 0.431 | |
2006 | 2위/8팀 | 3위[104] | 126 | 70 | 1 | 55 | 0.560 | |
2007 | 6위/8팀 | 6위 | 126 | 56 | 1 | 69 | 0.448 | |
KBO 리그 통산 26시즌 | V4 | 3137 | 1466 | 77 | 1594 | 0.479 | ||
89준PO : 2승 1패 00PO : 4승 04KS : 4승 3무 2패 | 준PO 1승, PO 1승,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10승 3무 3패 | |
89PO : 3패 96KS : 2승 4패 | PO 1패, KS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2승 7패 | |
94PO : 3승 96준PO : 2승 06PO : 1승 3패 | 준PO 1승, PO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6승 3패 | |
94KS : 4패 98KS : 4승 2패 02준PO : 2패 | 준PO 1패, KS 1승 1패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8패 | |
96PO : 3승 2패 | PO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3승 2패 | |
00KS : 4승 3패 01PO : 1승 3패 | PO 1패,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5승 6패 | |
03KS : 4승 3패 | KS 1승 개별 경기 총 전적 : 4승 3패 |
개인 커리어 전체가 아닌 삼청태현 소속이었을 때의 성적이므로 1982년부터 2007년까지의 기록만 서술한다.
부분 | 이름 | 기록 | 삼청태현 소속 |
등판경기 | 395경기 | 1989~2000 | |
선발등판 | 269경기 | 1992~2000, 2003~2007 | |
완투 | 61완투 | 1983~1985 | |
완봉 | 9완봉 | 1987~1993 | |
ERA | 2.56 | 1989~2000 | |
승리 | 124승 | 1992~2000, 2003~2007 | |
패전 | 95패 | 1992~2000, 2003~2007 | |
세이브 | 142세이브 | 1989~2000 | |
홀드 | 50홀드 | 2001~2007 | |
이닝 | 1827.1이닝 | 1992~2000, 2003~2007 | |
탈삼진 | 1275개 | 1992~2000, 2003~2007 | |
피안타 | 1774개 | 1992~2000, 2003~2007 | |
피홈런 | 157개 | 1992~2000, 2003~2007 | |
볼넷 | 644개 | 1998~2007 | |
사구 | 61개 | 1986~1989 |
부분 | 이름 | 기록 | 삼청태현 소속 |
출장경기 | 1566경기 | 1994~2007 | |
타율 | 0.292 | 1996~2002 | |
출루율 | 박재홍 | 0.383 | 1996~2002 |
장타율 | 박재홍 | 0.526 | 1996~2002 |
타석 | 5803타석 | 1994~2007 | |
타수 | 4970타수 | 1994~2007 | |
안타 | 1403안타 | 1994~2007 | |
2루타 | 278개 | 1994~2007 | |
3루타 | 49개 | 1997~2007 | |
홈런 | 박재홍 | 176홈런 | 1996~2002 |
타점 | 736타점 | 1994~2007 | |
득점 | 717득점 | 1997~2007 | |
도루 | 289도루 | 1997~2007 | |
볼넷 | 626개 | 1994~2007 | |
사구 | 105개 | 1994~2007 | |
삼진 | 728개 | 1994~2007 |
굵은 글씨는 역대 최고 기록.
- 1998년: 도전! '98!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1999년: 도전! 2연패!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0년: 정상 새천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1년: 정상 2001!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2년: 도전 2002!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3년: 새로운 도전! 승리의 이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4년: 불패신화!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5년: 멋진 승리, 끝없는 도전!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6년: 도전! 열정! 투혼!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07년: 새로운 각오! 새로운 신화! 막강 현대! 최강 유니콘스!
- 2020년 시즌 종료 기준으로, 삼청태현의 구단역사에서 현대 유니콘스 시절만 따로 계산하면 KBO 리그에 존재했던 모든 구단 가운데 라이벌 삼성 라이온즈에게 역대 상대 전적에서 앞서고 있는 유일한 구단이 된다. 현대 시절의 삼성 상대전적은 121승 6무 94패.[106] 특히 조용준과 미키 캘러웨이는 해체된 지 시간이 좀 흐른 지금에도 삼성 팬들 사이에서 회자될 정도로 삼성 상대로 무시무시한 포스를 자랑했다.2004년 어린이날에 진행된 경기는 삼성에 9회까지 8-4로 뒤지고 있던 상황에서 연장까지 끌고가서 끝내 14-10으로 승리를 가져갔는데 그 충격의 여파로 '창단 후 10연패'라는 흑역사를 열게 한 시발점으로 삼성팬들에게 회자되고 있고, 같은해 한국시리즈에서는 배영수가 10이닝을 노히트 노런으로 끌고 갔어도 결국 경기를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도 있는데다, 이 시리즈에서 한국시리즈 최초의 삼중살 수비기록과 홈스틸 득점 기록을 썼으며, 배영수의 글러브 패대기 장면을 만들었던 당시 무명선수급 인지도였던 백업 전근표의 한 방까지 나왔다. 그러다보니 현대가 삼성을 상대로 루징시리즈를 기록했던 시즌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팬들의 각인으로는 항상 안풀리거나 발목을 잡는 상대로 현대 유니콘스를 꼽아서 회자하곤 한다. 삼성팬 중에서는 이러한 임팩트가 워낙 강해서 현대 선수단은 유명선수 무명선수 신인 베테랑 할 것 없이 전부 삼나쌩 클럽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팬도 있었을 정도다. 정규 시즌 이외에도 2000년 플레이오프 현대 4전 전승, 2004년 한국시리즈 현대 4승 3무 2패 등 삼성은 현대만 만나면 힘을 쓰지 못했다. 여기에는 당시 유니콘스의 프론트가 동종업계 라이벌이었던 삼성과의 승부결과에 굉장히 민감했고, 이에 따른 추가적인 인센티브까지 부여해서 따로 격려했다는 이야기가 있다.[107]
- 반대로 LG 트윈스에게는 삼청태 시절이나 현대 시절이나 꾸준히 약했다. LG가 비밀번호를 찍던 때에도 밀렸으며, 1994년 한국시리즈와 2002년 준플레이오프에서는 스윕을 당했으며, 1998년 한국시리즈에서는 우승했지만 상대전적에서 밀렸다.(7승 11패)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던 2000년에도 가장 고전한 팀이 LG였다.[108]
- 유독 한국시리즈를 쉽게 우승한 적이 없었다. 1998년 4승 2패로 6차전까지 치르고 나서야 우승했는데 이게 네 번의 우승 중 가장 적은 경기로 우승한 것이다. 2000년에는 3승을 먼저 거둬 손쉽게 시리즈를 가져가는 듯 했으나 두산에게 4~6차전을 내주면서 리버스 스윕 직전까지 갔으나 7차전을 이겨 4승 3패로 우승했다. 2003년 역시 SK와 승패를 주고받으며 7차전까지 치른 후에 우승했고, 현대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2004년에는 무려 9차전까지 치르고 난 뒤에야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었다.
야구계에서 2007년은 그야말로 눈물의 한 해라고 할 만하다. 현대 유니콘스의 해체와 동대문야구장의 철거라는 한국 야구의 양대 비극이 모두 2007년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비극적인데, 바로 다음해인 2008년, 한국 야구는 베이징 올림픽 우승이라는 희대의 빅이벤트 속에 엄청난 팬덤 증가와 중흥을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유니콘스 매각을 진행했다면 프로야구단 인수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과 여론의 추이는 2007년보다 높았을 거라는 푸념이 있다.[112]
하지만 이미 이 시기에는 KBO가 오랫동안 모아왔던 야구기금을 유니콘스를 대신 운영하는데 다 털어먹었기에 여력이 소진된 상황이었고[113], 여기에 발전기금으로 끌어다 쓰던 유니콘스 구단 측은 끝끝내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 등 말년의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처럼 뼈를 깎는 인건비 절감 노력을 하긴커녕 기존에 쓰던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도 않고, 야구계 전체의 돈을 탕진해서 자기들 성적을 내려 한다는 인식이 박혀 다른 구단들로부터 시선이 싸늘해진 상황이었다. 2007년 시즌 말의 상황은 급박했으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불가능했다. 유니콘스가 해체되어 7개 구단 체제가 되면 '이참에 우리도 해체할까?'라며 추가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구단들이 있다는 루머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그렇다면 리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 상황이었다. KBO가 센테니얼의 창단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거다.
사실 2008년의 프로야구 인기의 부활[114]에는 오랫동안 야구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만약은 모르는 것이지만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2008년 이후의 인기부활이 가능했을지는 불명확하다.[115]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한동안 메인스폰서를 구하는 데 애를 먹은 것에서 볼 수 있듯, 리그의 인기증가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이며, 기업이 이를 체감하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KBO는 지나치게 일찍 협상사실을 공개하거나 기존 구단과의 물밑협상을 거치지 않는 등 매각 협상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야구계의 여력은 소진된 상태에서 언제 또 다시 온풍이 불지 알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마저 듣도보도 못한 센테니얼에게 유니콘스를 넘기는 선택에 동의할 정도였던 걸 생각한다면, KBO의 선택을 그저 매도하는 건 부당하다.
하지만 이미 이 시기에는 KBO가 오랫동안 모아왔던 야구기금을 유니콘스를 대신 운영하는데 다 털어먹었기에 여력이 소진된 상황이었고[113], 여기에 발전기금으로 끌어다 쓰던 유니콘스 구단 측은 끝끝내 플로리다 전지훈련을 가는 등 말년의 쌍방울 레이더스나 해태 타이거즈처럼 뼈를 깎는 인건비 절감 노력을 하긴커녕 기존에 쓰던 예산을 절감하려는 노력도 아예 하지도 않고, 야구계 전체의 돈을 탕진해서 자기들 성적을 내려 한다는 인식이 박혀 다른 구단들로부터 시선이 싸늘해진 상황이었다. 2007년 시즌 말의 상황은 급박했으며, 더 이상 시간을 끄는 건 불가능했다. 유니콘스가 해체되어 7개 구단 체제가 되면 '이참에 우리도 해체할까?'라며 추가로 해체를 검토하고 있다는 구단들이 있다는 루머는 파다하게 퍼져 있었고 그렇다면 리그는 순식간에 쪼그라들 상황이었다. KBO가 센테니얼의 창단 의사를 거부할 수 없었던 건 이런 이유가 크게 작용했을 거다.
사실 2008년의 프로야구 인기의 부활[114]에는 오랫동안 야구계에 그림자를 드리웠던 유니콘스 문제가 해결된 것도 영향이 있었고, 만약은 모르는 것이지만 이 문제가 계속 되었다면 2008년 이후의 인기부활이 가능했을지는 불명확하다.[115] 이후 히어로즈 구단이 한동안 메인스폰서를 구하는 데 애를 먹은 것에서 볼 수 있듯, 리그의 인기증가를 통한 경제적 효과가 기업에 얼마나 이득이 될 것이며, 기업이 이를 체감하고 투자를 결정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시 KBO는 지나치게 일찍 협상사실을 공개하거나 기존 구단과의 물밑협상을 거치지 않는 등 매각 협상에서 많은 잘못을 저질렀으나, 이미 야구계의 여력은 소진된 상태에서 언제 또 다시 온풍이 불지 알 수없는 상황이었던 것을 감안해야 한다. 다른 대기업들마저 듣도보도 못한 센테니얼에게 유니콘스를 넘기는 선택에 동의할 정도였던 걸 생각한다면, KBO의 선택을 그저 매도하는 건 부당하다.
[ 펼치기 · 접기 ]
| |||||||||||||||||||||||||||||||||||||||||||||||||||||||||||||||||||||||||||||||||||||||||||||||||||||||||||||||||||||||||||||||||||||||||||||||||||||||
[1] 삼미 슈퍼스타즈의 창단일로 프랜차이즈 개시일이다.[2] 전신 태평양 돌핀스의 법인 설립일로 추정. 당시 태평양화학은 1987년 10월 6일 풍한방직 측과 청보 핀토스 구단 인수 계약을 체결했다.[3] 명목상 현대그룹이지, 2000년대 이후로 최대주주는 채권단이 장악한 하이닉스이다.[4] 5월 1일(청보 핀토스로 바뀐 이후로도 6월 21일까지).[5] 5월 2일(해당 명의로 참여는 6월 22일부터).[6] 공식적인 연고지는 서울특별시였으나, 기존 서울특별시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 권리금을 지불하지 못해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어 무연고 상태나 다름없었다.[7] 무단으로 사용하던 수원 야구장이 위치한 수원이 사실상 연고지였다.[8] 연고 이전 후 수원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홈경기를 개최했고 1999년까지는 제2 홈구장이었다.[9] 흔히 '원당 야구장'이라 불리긴 했는데, 정확히는 당시 현대전자 연수원 내에 있었던 야구장이었고 이름과 달리 소재지는 일산동구 설문동에 있다. 원당이라는 지명 자체가 일산이기도 해서 딱히 틀린 말은 아니다. 유니콘스 해체 이후에도 2008년부터 2009년까지 후신인 히어로즈 야구단이 강진군으로 2군을 보내기 전까지 잠시 이 곳을 빌렸고, 연수원 자체는 하이닉스를 거쳐 현재는 NH투자증권 산하 NH인재원 소속이 되었다.[10] 정몽헌 회장 사망 이후 공석.[11] 단일 리그 기준.[12] 굵은 글씨는 승리한 해.[13] 삼미 슈퍼스타즈 시절에 세운 기록이다.[14]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5] 경기당 평균 7,560명.[16] 가을야구를 제외한 정규시즌 기준.[17] 경기당 평균 1,797명.[18] 현대라는 이름으로 12시즌을 보냈는데 3시즌 반을 치른 삼미, 2시즌 반을 치른 청보, 8시즌을 치른 태평양보다는 확실히 구단 역사가 길다.[19] 현대의 인수 이전에는 하위권을 면치 못하는 약체였지만 현대는 막강한 전력을 앞세워 프랜차이즈 최초로 한국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팀으로 기록됐다.[20] 공식적으로는 서울특별시가 연고지이지만 모기업이 재정난을 겪게 되면서 기존 서울 연고 구단인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에게 권리금을 내지 못했고 연고권을 행사할 수 없었다.[21] 당시 SK 와이번스는 현대로부터 인천광역시+경기도+강원도 연고권을 함께 양수받았는데, 연고권을 양수받을 때 현대가 서울 입성 전까지 사용할 홈구장으로 수원구장을 2001년 상반기까지 빌려주기로 했고, 현대 유니콘스는 2001년까지 서울 상암동에 홈구장을 지어서 그 곳으로 갈 예정이었다. 그러나 현대 유니콘스가 재정난에 빠지게 되면서 서울 입성에 사실상 실패하게 됐고, 유니콘스측은 구단이 해체된 2008년까지 SK 측에 어떠한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단으로 수원시에 눌러 앉아서 수원 야구장을 홈으로 사용했다. 현대 해체 이후에는 권리를 인수한 히어로즈가 현대의 연고지 침해에 대한 책임을 가져가게 되어 SK에게 연고지 침해 배상금을 지불했다. 이후로도 경기도 연고지 권리는 SK 와이번스가 가지고 있다가 2013년 수원을 연고지로 한 kt wiz가 창단되면서 자연스럽게 넘겨주게 되었다.[22] 2000년 5월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2003년 한국시리즈 우승 후 전무에서 사장으로 승진했다. 사장이 되어서도 구단의 맡은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23] 공교롭게도 태평양 돌핀스 시절 1989년부터 1994년까지 썼던 상징색과도 같다. 응원 깃발의 색깔은 창단 당시부터 줄곧 녹색이었으나 막대풍선 색깔은 창단 초기에 다소 바뀌었다. 원래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썼으나 하필이면 이 당시 LG 트윈스와 해태 타이거즈도 노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게다가 1996년 한국시리즈에서는 노란색 막대풍선을 쓰는 팀끼리 맞붙다보니 색깔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4차전에 붉은색 막대풍선을 사용하기도 했다. 결국 현대가 먼저 노란색을 버리고 1997년부터 해체될 때까지 하얀색 막대풍선을 사용했다. 하얀색 막대풍선에는 범현대가 계열 기업의 로고나 제품의 명칭이 광고 형식으로 삽입됐다. 구단 초창기에는 현대전자의 PC였던 멀티캡이나 현대오일뱅크의 로고가 새겨졌고 이후에는 현대증권이나 현대해상 로고가 써져있었다. 초록색을 상징색으로 삼던 팀이었지만 초록색 막대풍선은 창단 초창기 잠시 연두색 막대풍선을 쓴 이후로 한 번도 쓰지 않았다. 하얀색 막대풍선 외에도 수원야구장 시대 초기 노란색 봉투에 초록색 글씨로 "막강현대"를 삽입한 비닐봉투를 응원도구로 쓰기도 했다. 비닐봉투 응원도구는 2008년 주황색 봉다리 열풍을 일으킨 롯데 자이언츠가 원조라고 다들 아는데 사실과 다르다. 비닐봉투 응원을 먼저 발명한 건 현대였다. 이후 베이징 올림픽 시절 기준으로 야빠들의 전성기가 들어설때 롯데가 이를 활용한 것이었다. 롯데가 사용한 비닐봉투는 흔히 편의점에서 주는 소형 비닐봉투 크기였고 현대의 비닐봉투는 크기가 조금 커서 어린이의 경우 봉지에 구멍을 뚫어서 옷처럼 입을 수 있는 정도였다.[24] 사실 인천/경기팜은 전통적인 투수 강세 지역이다. 현대의 전신인 삼미 시절에는 임호균이라는 국가대표 투수가 있었고 청보 시절에는 최계훈이 에이스 역할을 했다. 투수왕국의 이미지는 태평양 시절에 들어서면서 극대화된다. 강력한 투수들이 대를 이어 배출됨에도 팀 전력이 하위권을 면치 못했던 이유는 강력한 투수력에 비해 야수들의 타력과 수비력이 형편없었기 때문이다. 투수진이 기를 쓰고 1실점만 해도 타자들이 점수를 아예 못 내서 1-0으로 경기를 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쉽게 말하자면 투타의 불균형이 매우 극심했던 팀이 현대 이전까지 있었던 팀들의 전통적 팀컬러였다.[25] 이동학의 사례에서 보듯 2003년은 두각을 나타낸 신인 자체가 보이지 않은 신인 흉년의 해였다. 또 다른 신인왕 후보라 해봐야 이택근이 있었는데 이택근도 신인왕을 받을 성적은 전혀 아니었다. 조용준이 전성기는 짧았지만 한국시리즈 MVP를 받기도 했었고, 오재영은 싸융짱문오에 포함될 정도가 되긴 했어도 불펜에서 잘 활약해주고 있다.[26] 1996년 플레이오프에서 2패 이후 3승을 거두는 리버스 스윕으로 한국시리즈에 진출. 삼성은 1997년 준플레이오프에서 쌍방울과 대결했다.[27] 1988~1993.[28] 1994~1995.[29] 이후 2002년부터는 SK가 새로운 야구장을 사용하며 관중 수 차이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30] 당시 관중 순위는 4-5-5-5로 2000년대에 비하면 확연히 관중 동원에서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현대의 엄청난 현금 동원력을 통해 온갖 선수들을 영입하며 스타 플레이어들도 많았다.[31] 당시 현대는 홈구장 관중을 늘릴 아이디어를 인터넷을 통해 모집하기도 했다.#[32] 결국 인천에 사업장을 두고 있던 대우 계열사 사업장은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전부 간판을 바꿔 달게 된다. 대우자동차는 GM 한국사업장이 됐는데 사실상 GM의 생산 하청기지로 전락했고 대우중공업은 두산그룹에 넘어갔다가 HD현대그룹으로 넘어가서 HD현대인프라코어가 된다. 대우자동차나 대우중공업은 새 주인을 만나서 여전히 인천에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대우전자는 가장 비참한 결말을 맞았다. 여기는 아예 법인 자체가 망해버렸고 용현동 공장 부지는 2015년 빈 터가 된 후 10년이 되도록 아직까지 텅 비어있다.[33] 박현식, 서동준, 임호균, 최계훈, 정민태, 김홍집, 위재영, 김수경, 류현진 등 수많은 명투수들이 인천에서 탄생했다.[34] 위에 언급된 선수들 중 류현진만 2006년에 프로 데뷔를 하여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다.[35] 박정현 2.15, 최창호 2.22, 정명원 2.45. 그해 평균자책점 1위는 1.17의 선동열.[36] 다만 위에 언급된 투수 3총사는 공교롭게도 모두 인천 출신이 아니다. 박정현만 태평양의 광역 연고지역이던 "수원시" 출신이며 최창호(대구)와 정명원(전북 군산)은 아예 다른 지역 출신이었다.[37] 여긴 투수왕국 이라고 불리지만 그런거 보다 보통 강팀 내지 왕조 또는 공포의 검빨 유니폼 이라고 불리는게 전통적이였다. 근데 KIA 타이거즈로 팀명이 바뀌고는 타이거즈 내지 그냥 부상병동, 종합병원, 고양이, 개그 팀으로 우스꽝스럽게 불린다. 이유는 해태시절 보다 못하는 성적을 기록하거나 틈만 나면 선수들이 다치거나 해서이다.[38] 다만, 이대진은 빙그레랑 접점이 없는 이유가 93년 데뷔할때 빙그레는 마지막으로 팀이름을 썼기 때문이다. 이듬해 팀명이 한화 이글스로 바뀐다. 자세한건 한화그룹 참조[39] 투수진이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꽁꽁 묶어도 같은 팀 타자들까지 점수를 못 내서(...) 연장전에 가는 경우가 많았고 어찌저찌해서 3실점 아래로 막아내는 호투를 해도 타자들의 방망이가 헛돌아서 영패를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삼청태현 소속 투수들의 경우 평균자책점 등 세부 지표가 리그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음에도 승수가 적고 패수가 많은 것을 볼 수 있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는 희대의 투타 불균형 때문으로 볼 수 있다.[40] 각각 박정현 19승, 최창호 10승, 정명원 11승. 이는 1989 시즌 총 승수의 64.5%나 차지할 정도였다.[41] 준PO 1차전은 무려 14이닝 완투승을 기록했고 준PO 3차전에서 경기 도중 허리부상을 당해 앰뷸런스를 타고 병원에 실려갔다... 그것도 5회부터~9회까지 던지다가 그리 된 것이었다.[42] 김경기 이외에 1루수가 없었다. 그리고 태평양 팀 역대 개인홈런 1위 및 팀내 홈런 1위였다... 이건 쌍방울 레이더스의 김기태와 흡사하다. 거기다가 둘 다 1루수가 기본 포지션이고 서로 94년 리그 홈런왕 경쟁까지 갔었다. 승자는 김기태였다. 당시 좌타자 최초의 홈런왕 이라는 역사를 기록.[43] 김경기 이전 돌핀스의 유일무이한 주포.[44] 다만 팀타율은 .224로 역대 최하는 아니었다. 역대 타격 최약체는 1986년 이 팀의 전신인 청보 핀토스가 세운 .219.[45] 몬더그린 현상으로 인해 이 대목이 '최강희 눈이 커'라고 들리기도 했다. 불암콩콩코믹스에도 이 몬더그린을 사용했다.[46] 느린 버전[47] 2절이 있는 것은 아니고 간주 후 "최강의 유니콘스~" 대목부터 반복한다.[48] 2012년 12월 28일 뇌출혈로 인해 4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계승] 태평양 돌핀스의 응원가를 계승했다[50] 후신격 구단인 키움 히어로즈 팀 응원가 중 하나로 가사만 살짝 바뀐 채 현재도 남아있다. 히어로즈 입장에서는 현대와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않아도 우리 히어로즈 시절부터 사용해온 유서깊은 응원가.[51] 공교롭게도 박경완의 친정인 쌍방울 레이더스의 현재까지 구전되는 유일한 응원가 역시 바로 이 곡에서 따왔다. 그쪽의 가사는 "방울~방울방울방울~ 쌍방울~ 쌍방울~"[52] 가사는 알수없다[53] 마구마구에서도 나온다.[54] 현 한화 육성응원 박수와 동일[55] 2025 시즌 중에는 정훈, 오재일, 황재균도 남아 있었으나 세 선수 모두 2025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며 현대 시절을 겪어본 모든 타자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한화 이글스에서 방출된 장시환은 LG 트윈스에 입단하며 2026년까지 현역 생활을 연장할 수 있게 되었다.[56] 1군 경기는 1991년부터[57] 트레이드 마감시한 7월 31일[58] (U-13)[59] 2026~[60] 2025년에는 감독대행, 2026년 부터 정식 계약 체결.[61] 2026년 1월 1일 사망[62] 2002년 1차지명 최후의 지명자[63] 2025년 10월 17일 사망[64] 2살 아래인 최승호의 형[65] 장시환으로 개명[66] 모교인 야구부 배터리 코치로 활동중[67] 3살 아래 위인 좌완투수였던 김상기의 친동생[68] 본인이 영원한 삼성맨이라는 자부심이 강했기에 현대로 오자마자 은퇴를 선언해버렸다.[69] 아마추어 야구 및 타격 지도자 생활을 하고있다[70] 2022년 키움으로 복귀하려고 하였으나 불발.[71] 2000년 투수 전업[72] 이후 현대 유니콘스에서 1996년 ~ 1999년에 타자에서 2000년 ~ 2008년에 투수로 전환했다.[73] 태평양 돌핀스 최후의 3할타자였다.[74] KBO 리그 심판 김풍기의 사촌 동생[75] 7월 31일 LG에서 최창호를 상대로 트레이드 마감시한[76] 2014 시즌에 외야수로 전향했다.[77] 6월 까지[78] 야구계를 떠나 미국으로 이민 가며 현재는 보스턴에서 세탁관련 사업을 한 적이 있다.[79] 인천연고 제2 수원구장 기준[80] 무연고 임시 수원 홈구장 기준[81] 당시 소속팀의 활동기간은 2008~2009년, 2012~2020년[82] 7.22 까지 95 1차지명한 쌍방울에서 지명권 양도한 강필선 보상선수로 이적함[83] 빙그레 이글스 내야수 출신인 초등학교 교사로 전업한 지화동의 동생.[84] 강명구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해체 시까지 구단주 대행 역임.[85] 김진영 감독이 1983년 6월 1일 잠실 MBC전에서 일어난 폭력 사태 후 구속되고 자숙의 의미로 잔여 시즌을 감독대행 체제로 가게 되자 별안간에 팀 지휘봉을 잡았다. 그런데 14경기를 치르고 돌연 이선덕 코치에게 지휘봉이 가게 됐는데 이재환과 경동고 동문인 백인천이 급작스럽게 삼미에 선수 겸 코치로 이적했기 때문이다. 당시 이재환과 백인천의 사이는 매우 험악했고 이를 고려해 이재환을 한직인 2군 감독으로 내려보냈다.[86] 초대 감독을 맡았던 그 박현식 선생이 맞다. 구단 고문으로 위촉됐던 박 선생이 다시 지휘봉을 잡은 것 역시 백인천 때문이었다. 선수 겸 타격코치로 일하던 도중 간통죄로 인해 구속되면서 사실상 구단에서 퇴단 조치됐다. 그러면서 선수단 개편 차원에서 이선덕 코치에게 투수코치 임무만 맡기고 박현식 고문을 감독으로 다시 복귀시켰다. 그러나 자숙하던 김진영 감독이 복귀하면서 박현식 감독도 물러나게 된다.[87] 2020년 한화 이글스에 의해 깨질 뻔 했던 초유의 18연패 당시 감독대행. 1985년 3월 30일 구덕 개막전 승리 이후 내리 16경기를 패배하자 김진영 감독이 4월 29일 '조건부 휴가'라 쓰고 사실상의 퇴진이라 하는 절차를 밟으며 물러났다. 투수코치였던 신용균이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이름으로 치른 마지막 경기까지 팀을 지휘했다.[88] 삼미 슈퍼스타즈가 간판을 내리고 1985년 후기리그부터 청보 핀토스라는 이름으로 시즌을 치렀지만 후기리그까지만 팀을 지휘하고 퇴진하게 된다.[89]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뿌라와 으린 슨슈를 사랑하시는 그 분 맞다. 본인은 청보 감독 시절을 잊고 싶은 과거로 생각하는 듯 하다.[90] 1군 참여 2년차 빙그레 이글스에도 털릴 정도로 꼴찌를 기록한 감독이었지만 한 시즌을 풀로 채웠다. 리그 참가 6시즌 만에 처음으로 감독 교체 없이 한 시즌을 보낸 것은 이때가 처음. 물론 이미 구단의 모기업인 청보식품이 1987년 중반부터 상당한 경영난을 겪었기 때문에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91] 태평양화학이 핀토스 구단을 인수해서 재편한 것이 1988년 시즌 개막 직전이었기 때문에 이 당시도 감독을 바꾸고 자시고 할 상황이 아니었다. 결국 이름만 태평양으로 바뀌었을 뿐 청보 핀토스와 크게 차이가 없었고 결국 시즌 초반에 경질된다.[92] 전기 6위, 후기 6위[93] 전기 2위, 후기 2위[94] 전기 6위, 후기 6위[95] 전기리그에서는 삼미 슈퍼스타즈로 활동.[96] 전기 6위, 후기 6위[97] 전기 6위, 후기 7위[98] 전기 7위, 후기 6위[99] 전기 6위, 후기 7위[100] 2016년 두산 베어스가 93승을 기록하기 전까지 KBO 리그 단일시즌 최다승 기록이었다.[101] KBO 리그 단일시즌 승률 3위. 1위는 1985년 삼성 라이온즈의 0.706, 2위는 1982년 OB 베어스의 0.700. 다만 1985년과 1982년은 전후기리그로 시즌을 나눠 치르던 체제였기 때문에 1989년부터 제정된 단일시즌 체제로 한정하면 이 기록이 최고 승률 기록이다.[102]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두산의 우승으로 최종 3위.[103] 페넌트 레이스 3위였지만, 4위 팀 LG의 한국 시리즈 진출로 최종 4위.[104] 페넌트 레이스 2위였지만, 3위 팀 한화의 한국시리즈 진출로 최종 3위.[105] 창단 첫 해부터 해체될 때까지 이 캐치프레이즈는 변하지 않았다. 일종의 구단 기본 슬로건이 된 셈. 기본형 문구 앞에 뭔가의 낱말이 붙는 형태로 캐치프레이즈가 정해졌다.[106] 물론 삼청태현은 공식적으로 한 팀이기 때문에 이 상대전적은 현대 한정. 통상적이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삼청태현의 통합 전적은 당연히 삼성한테 일방적으로 뒤진다. 공식적으로 현재 삼성 상대 승률이 가장 높은 팀은 47승 2무 47패로 승률이 5할인 kt wiz다. 두 번째는 178승 8무 182패로 승패마진이 -4인 SK 와이번스.[107] 투수조 조장인 정명원이나 정민태 같은 선수들.[108] 상대전적 8승 9패까지 갔다가 마지막 2경기를 잡아 10승9패가 됐다. 2000 시즌 현대를 상대로 가장 높은 승률을 올린 팀이었다.[109] 현대는 2002년에 LG 트윈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고, 기아는 2003년에 SK 와이번스에게 플레이오프에서 패배, 2004년과 2006년에는 각각 두산 베어스, 한화 이글스에게 준플레이오프에서 패배해서 두 팀이 포스트 시즌에서 붙을 일은 없었다.[110] 전신까지 포함하면 1989년과 1996년에 붙은 적은 있었다.[111] 단, 인수조건을 걸면서 야구단을 제외하고 하이닉스를 인수했을 수는 있다.[112] 다만 많은 유니콘스 팬들이 바라는 구단 역사의 공식적 승계는 해당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기업이 인수했다 해도 어려웠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난 7년간 구단을 거의 내팽개치다시피 한 명목상의 모기업 하이닉스가 뜬금없이 나타나 인수대금을 내놓으라고 하면 여러모로 골치가 아파지기 때문이다.[113] 야구계 인사 일부는 기존 구단들에게서 운영비를 추렴해서 현대가 1년만이라도 더 버틸 수 있게 하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물론 말 그대로 시간벌기밖에는 안 되는 미봉책일 뿐이지만, 어쨌든 그렇게라도 하고 봐야 했을 정도로 상황이 절박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KT의 인수시도가 사외이사들과 주주들에 의해서 엎어졌듯이 이미 적자투성이인 프로야구판에서 자신의 기업도 아닌 남의 회사를 홍보하는데 당연히, 그 어느 기업도 자기 회사의 돈을 선뜻 내놓겠다고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114]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2008시즌 초부터 이미 프로야구의 인기는 관중수에서 입증되듯이 부활하고 있었다. 올림픽 금메달은 그런 추세에서 부스터 역할을 했지 유일한 촉매 역할을 한게 아니다.[115] 당장 이웃종목의 K리그만 봐도 2002 FIFA 월드컵 한국·일본으로 조성된 리그 붐을 받아먹을 준비(대회 종료 후 축구장에 가고 싶은데 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으로 서울팀이 없고, 대구 인천 광주에도 없다던지 등)가 되어있지 않았고, 기회가 왔을때 허무하게 날려먹어서 여전히 흥행에 큰 어려움을 호소하는 실정이다. 국제대회의 호성적은 리그 붐에 기여를 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리그의 앞날을 하루 아침에 밝게 비춰주는 것은 절대 아니다.[116] 다만, 해체 후 재창단을 거쳤기 때문에 현대의 역사를 이어받지 않는 별개의 신생구단이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