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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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참지정사 장순공(章順公) 왕자지 王字之 | |
출생 | |
사망 | |
묘소 | 경기도 임강현 세곡 서산 |
재임기간 | 고려 병부상서 지추밀원사 |
고려 추밀원사 판삼사사 | |
고려 이부상서 참지정사 판호부사 | |
고려의 별무반 행영 군단 | ||
대원수(大元帥) | ||
행영대원수(行營大元帥) 윤관 | ||
부원수(副元帥) | ||
행영병마사(行營兵馬使) 오연총 | ||
판관(判官) | ||
병마판관(兵馬判官) 최홍정 | 병마판관(兵馬判官) 황군상 | 병마판관(兵馬判官) 김부필 |
기타 지휘관 | ||
녹사(錄事) 척준경 | 권지승선(權知承宣) 왕자지 | 선병별감(船兵別監) 양유송 |
병과 | ||
신기군(神騎軍) | 신보군(神步軍) | 발화군(發火軍) |
도탕군(跳盪軍) | 경궁군(梗弓軍) | 정노군(精弩軍) |
항마군(降魔軍) | ||
도합 17만 명 | ||
내시[4] 출신으로 윤관의 북방 개척에 참전해 공을 세웠다. 숙종 대에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가 되어 예종 3년에는 병마판관(兵馬判官)이 되었고, 윤관의 휘하에서 척준경과 함께 함주와 영주 지방에서 여진족을 무찔렀다.
척준경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듯한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말을 빼앗기고 죽을 뻔했다. 이때 척준경이 구해주고 말을 잃은 그를 위해 적을 추격해 장갑마 1필을 얻어줘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 뒤 쭉쭉 승진하였는데, 1112년에 이부시랑 추밀원좌승선, 1113년에 예빈경 추밀원지주사, 1114년에 전중감 및 추밀원지주사에 임영되었다. 1115년 7월에는 호부시랑이었던 문공미와 함께 이부상서로서 사은진봉사로 송나라에 갔다가 1116년 6월에 대성아악을 가지고 귀국했다.
1117년에는 2월에 좌산기상시 동지추밀원사, 12월에 병부상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이후 1118년에는 동북면병마사 겸 지행영병마사, 1119년 6월 19일에 추밀원사 판삼사사가 되였으며, 1122년 3월 11일에는 참지정사로 있다가 음력 1122년 3월 24일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받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예를 안았으나 뒷날 탐욕스럽다는 이유로 배향 공신 자격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와 인종 대에 끝내 배향을 철회했다.
척준경과 매우 친밀한 사이였던 듯한데 여진족의 기습을 받아 말을 빼앗기고 죽을 뻔했다. 이때 척준경이 구해주고 말을 잃은 그를 위해 적을 추격해 장갑마 1필을 얻어줘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 뒤 쭉쭉 승진하였는데, 1112년에 이부시랑 추밀원좌승선, 1113년에 예빈경 추밀원지주사, 1114년에 전중감 및 추밀원지주사에 임영되었다. 1115년 7월에는 호부시랑이었던 문공미와 함께 이부상서로서 사은진봉사로 송나라에 갔다가 1116년 6월에 대성아악을 가지고 귀국했다.
1117년에는 2월에 좌산기상시 동지추밀원사, 12월에 병부상서 지추밀원사가 되었다. 이후 1118년에는 동북면병마사 겸 지행영병마사, 1119년 6월 19일에 추밀원사 판삼사사가 되였으며, 1122년 3월 11일에는 참지정사로 있다가 음력 1122년 3월 24일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장순(章順)이라는 시호를 받고 예종의 묘정에 배향되는 영예를 안았으나 뒷날 탐욕스럽다는 이유로 배향 공신 자격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 나와 인종 대에 끝내 배향을 철회했다.
- 역사 교과서에는 윤관, 척준경만 간략하게 나오는 탓에 일반인들이 거의 모르지만 왕자지뿐 아니라 여진 정벌에 참가한 장군들 거의 대부분은 그렇다. 오히려 이름 때문에 유명해진 케이스로 볼 수 있다. 하필 성씨까지 "왕"이어서 참으로 절묘한 어감의 이름이 되어버렸다.
- 척준경의 생애가 드라마화되지 않는 이유로 그의 절친이었던 이 사람의 이름을 들기도 한다. 일례로 국방TV 토크멘터리 전쟁사에서 이 시대를 다룰 때도 차마 이름을 부를 수 없어 패널들은 왕 장군이라고 애둘러 언급하고 이름은 자막으로만 나왔다.[5] 물론 우스개로 하는 말에 가깝고, 왕자지가 주인공인 창작물이 아닌 다음에야 굳이 못 만들 이유까지는 없다. 일단 왕자지의 초명은 소중(紹中), 자는 원장(元長)이므로, 삼국지에서 조운을 조자룡으로 부르는 것처럼 왕원장으로 작중에서 부를 수도 있고,[6] 사극이라고 모든 기록상의 인물을 다 등장시켜야 하는 것도 아니며, 다큐멘터리도 아니고 파생 창작물일 뿐이니 다른 이름으로 바꾸거나 다른 실존인물의 캐릭터와 적절히 합체시켜 등장시키는 등의 방법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진지하게 따지자면 왕자지 때문이라기보단, 척준경 문서에도 서술되어 있듯 척준경의 구체적인 행적이 불명이기 때문일 것이다.[7]
- 우스개로 왕자지가 사극에 출연할 때 다음과 같은 대사들이 나올 거라는 얘기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
- 2014년 1월 30일에 올레마켓 웹툰에서 척준경을 주인공으로 다룬 푸른바람 척준경이 연재됐었는데[11] 왕자지도 본명 그대로 나왔다. 한 가지 기묘한 점은, 건실한 청년으로 묘사 되는 척준경, 이자겸과 달리 왕자지는 더벅머리의 곱상한 쇼타로 묘사된다. 작품 내에 고증 오류가 조금씩 보이는데, 1화에 이자겸의 난을 조명했지만 본궐에서 싸웠다는 고려사의 기록과는 달리 야전으로 그리는데다 이자겸의 난은 1126년에 일어났는데 이미 1122년에 사망한 왕자지가 버젓이 살아서 척준경과 붙어다니며, 문관 출신인 윤관이 인간 흉기급 무관이다. 가장 고질적인 오류는 역시 봉두난발.
[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열전(列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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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주 김씨 김정지(金廷砥)의 딸[2] 원래 해주 박씨였고 궁예의 신하였는데 역성혁명 당시 왕건을 도운 공로로 왕씨 성을 하사받아 해주 왕씨가 되었다. 즉 일반 귀족보다도 신분이 높은 준 왕족급이다.[3] 지방의 약세 호족. 조선시대엔 기세가 크게 꺾인다.[4] 고려시대 내시는 조선시대와는 달리 왕을 가까이서 보필하는 신진 관료들을 말한다. 내시하면 환관을 떠올리는데, 고려의 내시는 거세된 환관이 아니며 김인존, 안향 같은 상당한 엘리트만이 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의 승지들로 생각하면 된다.[5] 메인 패널이었던 임용한은 2000년대 초반에 저서를 통해 왕자지의 존재를 국내 역덕계에 알린 일등 공신이다. 임용한의 말에 따르면 원래 본명을 언급하며 방송하기로 했지만, 방송하다 보니 웃음이 터져나와 결국 언급하지 않고 가기로 했다고 한다.[6] 이 정도 높은 신분의 인물이라면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는다. 보통은 관직명으로 부르고, 아무리 막역한 사이라도 이름(名)보단 자(字)로 부른다. 부모나 임금이라면 이름을 부를 수 있지만 부모는 아명으로, 임금도 그를 존중해 관명으로 부르면 해결된다. 다만 조서 같은 공문서에는 이름이 들어가야 하므로 이것까진 피할 수 없다.[7] 생애 자체가 불명인 것은 아니고, 세부적인 부분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다. 기록상에 등장하는 그의 행적 대다수는 "여진족 몇 명을 베었다"나 "이자겸과 붙어먹었다" 같은 거시적인 행적뿐이고, 상세한 과정이나 그 속에서 사람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등이 거의 기록이 없다. 이 때문에 척준경으로 드라마를 만들면 그의 대사 거의 전부를 허구로만 채워야 한다.[8] 십팔자득국, 목자득국으로 변형해서 올라가는 경우도 드물게 있다.[9] 여주 김씨 김정지(金廷砥)의 딸[10] 유교 예법 상으론 천자는 붕(崩), 제후는 훙(薨), 사대부는 졸(卒), 평민은 사(死)로 죽음을 표현한다.[11] 작가는 과거 노숙검객후크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던 박경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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