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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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하부 문하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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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장정사를 평장사로 약칭한 것으로 추정
고려 도첨의중찬
문성공(文成公)
안향
安珦
국보 안향 초상(2014년 국...
국보 제111호 안향 초상
이름
유(裕) → 향(珦)[1]
시호
문성공(文成公)
본관
사온(士蘊)
회헌(晦軒)
출생
경상도 흥주 상평리
(現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배점리 상평동)
사망
1306년(충렬왕 32) 9월 12일 (향년 63세)
국적
 
 
 
 
1. 개요2. 생애3. 평가4. 여담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고려유학자 · 정치가. 동국 18현의 한 사람이자 한반도성리학을 처음으로 도입한 대학자. 본관은 흥녕(興寧), 시호는 문성공(文成公), 아명은 유(裕), 자는 사온(士蘊), 호는 회헌(晦軒). 안향의 본관인 흥녕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으로 흥녕 안씨는 바로 지금의 순흥 안씨(順興安氏)이다. 주자(朱子)가 집대성한 성리학을 고려에 도입함으로써 유학을 중심으로 한 신진사대부를 등장하게 한 계기를 만들었으며 안향 자신도 흥주(흥녕의 다른 이름으로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과 풍기읍 일대)의 중소 지주층 출신의 사대부였다.
 
 
 
 

2. 생애[편집]

 
 
 
 
1243년(고종 30년) 경상도 흥주(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에서 흥주의 향족이었던 안부(安孚 / 1220 - ?)와 강주 우씨(剛州禹氏) 부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안유의 아버지 안부는 흥녕 안씨의 시조인 보승별장 안자미(安子美)의 손자로 흥녕 안씨 일족은 흥주의 토착 향족 출신 가문이었다. 안부 또한 흥주의 향리로 있다가 개경으로 상경해 의업(醫業)으로 출세하여 이후 정3품 밀직부사(密直副使)를 거쳐 판도판서(判圖判書)에 이르러 치사(관직에서 은퇴하는 것)하였으며 어머니 우씨는 예빈승(禮賓丞)을 지낸 우성윤(禹成允)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명석하고 학문에 밝았던 안유는 1260년(원종 1년) 문과에 급제하여 18세의 나이에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이 무렵 이름을 향(珦)으로 고쳤다. 직후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자리를 옮겨 10년 가까이 재임했다. 1270년(원종 11년) 삼별초의 난 때 강도(江都 : 지금의 강화도)에 억류되었다가 탈출하였으며 1272년(원종 13년) 감찰어사(監察御史)가 되었다. 강도 탈출의 일로 원종의 신임을 얻어 이름을 알리게 된다.

1275년(충렬왕 1년) 상주판관(尙州判官)으로 부임했는데 미신으로 백성들을 수탈하며 재산을 축적하고 사람들을 함부로 부리는 등 상주에서는 무당들의 행패가 심했다. 이에 안향은 미신을 타파하고 풍속을 쇄신시키기 위해 무당들을 잡아다 엄히 다스렸으며 다시는 사특한 농간으로 백성들을 현혹시키지 못하게 하면서 상주의 풍속이 바로잡혔다. 이후 판도사좌랑(版圖司左郎)·감찰시어사(監察侍御史)를 거쳐 국자사업(國子司業)에 올랐다. 1288년(충렬왕 14년) 우사의대부(右司議大夫)를 거쳐 좌부승지(左副承旨)로 옮기고 다시 좌승지(左承旨)로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었다. 1289년(충렬왕 15년) 2월 정동행성(征東行省)의 원외랑(員外郎)에 임명되었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좌우사낭중(左右司郎中)이 되었고 고려유학제거(高麗儒學提擧)가 되었다. 1289년 11월 충렬왕제국대장공주 부부를 호종하여 직접 원나라에 가서 주자의 저작들을 손수 베끼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畵像)을 그려 가지고 1290년(충렬왕 16년) 고려로 돌아왔으며 1290년 3월 종2품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올랐다.

문신이었지만 무재(武才)도 있었던 듯하다. 1294년(충렬왕 20년) 동남도병마사(東南道兵馬使)를 제수받아 합포(合浦)[3]에 출진하기도 했으며 지공거(知貢擧)로 옮겼다가 12월 지밀직사사(知密直司使)로 보직되었다. 1295년(충렬왕 21년) 밀직사사(密直司使)로 승진했으며 1296년(충렬왕 22년) 삼사좌사(三司左使)로 전직했고 충렬왕과 제국대장공주를 호종하여 다시 원나라 원행을 다녀왔다. 1297년(충렬왕 23년) 첨의참리세자이보(僉議參理世子貳保)가 되었으며 12월 집 뒤에 작은 서실을 짓고 공자와 주자의 화상을 모셨다. 1298년(충렬왕 24년/충선왕 원년) 원나라의 간섭으로 충렬왕이 물러나고 세자인 장(璋)이 충선왕으로 즉위하면서 시행된 관제 개혁에 따라 집현전태학사 겸 참지기무 동경유수 계림부윤(集賢殿太學士 兼 參知機務東京留守鷄林府尹)이 되고 다시 첨의참리 수문전태학사 감수국사(僉議參理修文殿太學士監修國史)가 되었다. 1298년 8월 충선왕을 따라 또다시 원나라에 들어가는데 그의 3번째 원나라 여정이었으며 생애 마지막 국외 활동이 된다. 1299년(충렬왕 복위 원년) 충렬왕이 다시 복위되자 1300년(충렬왕 복위 1년) 수국사(修國史)가 되었으며 이어서 광정대부 찬성사(匡靖大夫贊成事)에 올랐고 얼마 뒤 최고 관위인 벽상삼한삼중대광(壁上三韓三重大匡)이 되었다.

1303년(충렬왕 복위 4년) 국학학정(國學學正) 김문정(金文鼎)을 중국 강남(江南 : 현재의 난징)에 보내어 공자와 72현의 화상, 문묘에서 사용할 제기(祭器)·악기(樂器) 및 육경(六經)·제자(諸子)·사서(史書)·주자의 저서 등을 구해오게 하였다. 충렬왕에게 청하여 문무백관으로 하여금 6품 이상은 1근, 7품 이하는 포(布)를 내게 하여 양현고(養賢庫)에 귀속시키고 그 이자로 인재 양성에 충당하도록 하였다. 이때 무신인 고세(高世)가 자신은 무관인데 어찌하여 문관을 양성하는 양현고에 재산을 내야 하는가하며 거부하자 "공자(孔子)의 가르침은 만세의 규범이다. 신하가 임금에게 충성하고 아들이 어버이에게 효도하며 아우가 형을 공경하는 것은 누구의 가르침인가? 무인인 내가 무엇하러 돈을 내어 문인 생도들을 가르치는 데 보태느냐 한다면 이는 공자를 무시하는 것이니 가당한 일인가?"라는 말로 힐책하여 고세도 양현고에 재산을 내게 하였다. 1303년 12월 첨의시랑 찬성사 판판도사사 감찰사사(僉議侍郎贊成事判版圖司事監察司事)가 되었다.

1304년(충렬왕 복위 5년) 5월 섬학전(贍學錢)을 마련하고 박사(博士) 관직을 설치하여 출납을 관장하게 했는데 국자감 운영의 재정적 원활을 가져왔다.[4] 1304년 6월 대성전(大成殿)이 완성되자 중국에서 구해온 공자를 비롯한 성인들의 화상을 모시고 밀직부사로 치사한 이산(李㦃)과 전법판서 이진(李瑱)을 천거하여 경사교수 도감사(經史敎授都監使)로 임명하게 하였다. 이 해에 판밀직사사 도첨의중찬(判密直司事都僉議中贊)으로 관직 생활을 마쳤는데 도첨의중찬은 수상의 관직에 해당한다. 관직에서 물러난지 2년이 지난 1306년(충렬왕 복위 7년) 9월 12일에 64세를 일기로 개경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안향이 세상을 떠나자 국자감과 사학 12공도의 생도들이 모두 소복을 입고 안향의 가는 길을 마중했다고 한다. 안향이 세상을 떠난 뒤 충렬왕은 직접 장단(長湍 : 경기도 장단군)의 대덕산(大德山)에 장지를 마련해 주었으며 그의 장례가 끝나자 문성(文成)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안향은 이후의 사대부들에게 도학의 시조로 추앙받으며 성인으로 떠받들어졌고 조선이 건국된 뒤에는 성균관 유생들이 제사를 모실 정도로 학자들에게 숭앙받았다.

안향이 세상을 떠난지 12년이 지난 1318년(충숙왕 5년) 그의 공적을 기념하기 위해 원나라 화공을 불러 그의 초상을 그리게 했다.[5] 초상화가 그려진 다음 해인 1319년(충숙왕 6년) 문묘에 안향의 신주를 모시게 되었고 조선 시대에 문묘가 다시 지어진 뒤에도 안향의 신위는 제향신위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안향은 조선 문종 이후로는 안유(安裕)라는 초명이나 안향(安向)이라는 표기로 불리게 되는데 문종의 이름이 안향과 같은 '옥이름 향(珦)'이었으므로 피휘를 위해 초명으로 부른 데에서 기인한다.

1542년(중종 37년)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안향의 생가가 있던 내죽리(內竹里 : 지금의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에 그의 사당을 세우고 1543년(중종 38년) 풍기군의 학사를 안향의 사당으로 옮겼는데 조선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1549년(명종 4년)에는 풍기군수로 재임 중이던 퇴계 이황(李滉)이 조정에 상소를 올려 백운동서원에 명종의 친필로 쓰여진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현판을 하사받았는데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의 시작으로 300년 후에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철폐되지 않고 살아남았다.[6] 1643년(인조 21년) 안향의 묘소 근처인 봉잠산(鳳岑山) 기슭에 장단군의 유생들이 임강서원(臨江書院)을 세워 안향을 모셨으며 이 외에도 전라남도 곡성군에도 안향의 영정을 모신 회헌영당(晦軒影堂)이 세워졌다.

1931년 안향의 후손 안순환은 중원대전 중 공묘가 파손되는 일이 발생하자 조선 유림계를 대표하는 사절단을 구성하여 공자의 77대 종손 쿵더청을 만나 위로하였다.
 
 
 
 

3. 평가[편집]

 
 
 
 
안향은 일상생활에서 유학의 도리를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유학이야말로 인간이 따라야 할 사실상 유일하게 올바른 가르침이라는 성리학의 가르침을 원나라에서 접하고 직접 그것을 연구하며 고려로 가져와서 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로 하여금 배우게 하여 사실상 한국 성리학의 시조가 되었다. 안향을 시작으로 한 신진사대부의 정계 등장은 질서가 무너져가던 고려를 엎고 조선을 건국하는 주요 동력이 되었으며 성리학의 이념을 중심 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들어서자 도학의 시조로 받들어지고 문묘에 제향되었다. 그의 제자로 유명한 인물이 이진[7], 권부[8], 우탁[9], 백이정[10], 이조년[11], 신천[12]6군자이다. 안향 - 6군자 - 이제현 - 이색 - 정몽주로 고려 성리학의 계보가 이어진다. 또한 성리학의 개조인 주자를 존경하고 그의 호인 회암(晦菴)에서 회(晦)를 따와서 스스로의 호를 회헌(晦軒)이라고 할 정도로 주자성리학을 깊이 따랐다. 그러나 태극이나 기를 논하는 차원이 아닌 배움에 몸을 담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올바른 도리를 배우기 위해 성리학을 권장했고 성리학이 뿌리를 내린 조선시대로 가면서 안향의 원론적인 성리학 이념은 퇴계 이황, 율곡 이이,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 등에 의해 태극과 기, 우주를 논하는 심오한 체계를 굳혔다. 그리하여 성리학은 조선의 골자로서 자리매김했지만 불교 국가였던 고려의 유학자인 안향이 생각했던 올바른 유학의 모습은 병자호란 이후 조선이 성리학을 교조화하며 틀어지게 되었다. 안향의 후손들은 조선시대에도 흥성했으며 지금의 순흥 안씨 후손들에 이르기까지 유학의 일가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13]
 
 
 
 

4. 여담[편집]

 
 
 
 
  • 안향은 사람을 감정하여 식별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한다.
    김이(金怡, 1265~1327)와 백원항(白元恒, ?~?)이 아직 현달하지 못하였을 때, 안향이 그들을 보고 말하기를, “후일에 반드시 둘 다 귀하고 귀현(貴顯)해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후 김이는 1326년 첨의정승, 1327년 첨의중찬 등 수상직을 역임했고, 추충보절동덕공신(推忠保節同德功臣)에 봉해졌다. 백원항은 1321년 재상직인 첨의평리에 올랐다.

    이제현(李齊賢, 1287~1367)과 이이(李異, ?~?)[14]는 1301년 과거에 함께 급제하였고 둘 다 유명하였다. 이제현은 15세에 국자감시, 문과를 모두 합격하였고, 이이도 어린 나이에 문과에 합격하였다고 한다. 안향이 불러 시를 짓게 하고는 말하기를, “이제현은 반드시 귀하게 되고도 장수할 것이고, 이이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과연 이제현은 수상직인 도첨의정승, 우정승, 문하시중에 이르렀고 5차례 공신에 봉해졌으며 81세를 향수했으나 이이는 부친인 이혼(李混, 1252~1312)보다 일찍 사망하였다.
  • 안향이 자신의 노비들을 성균관을 위해 일하라고 기증하여 그 후손들이 대대로 반촌(한성부에서 성균관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에 살며 성균관에서 일했는데 이들을 반인이라고 불렀으며, 안향의 후손이 성균관에 들어오면 옛 주인의 후손이 오셨다며 극진히 대했다. 반인들은 한양 도성의 도축업, 유흥업 등을 맡기도 했다.
  • 경기도 박물관에 안향의 다른 초상화가 남아있다.
  • 안향초상
 
 
 
 

5. 둘러보기[편집]

 
 
 
 
[세가(世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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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 혜종 · 정종定宗 · 광종 · 경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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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비·종실·공주 열전(列傳)]
원정왕후 김씨 · 원화왕후 최씨 · 원성태후 김씨 · 원혜태후 김씨 · 원용왕후 유씨 · 원목왕후 서씨 · 원평왕후 김씨 · 원순숙비 김씨 · 원질귀비 왕씨 · 귀비 유씨 · 궁인 한씨 · 궁인 이씨 · 궁인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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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신왕후 한씨 · 용의왕후 한씨 · 용목왕후 이씨 · 용절덕비 김씨 · 연창궁주 노씨
상회공주 · (유씨 소생 공주)
애상군 왕방 · 낙랑후 왕경 · 개성후 왕개 · 도애공주
인평왕후 김씨 · 인예순덕태후 이씨 · 인경현비 이씨 · 인절현비 이씨 · 인목덕비 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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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현비 이씨 · 사숙태후 이씨 · 원신궁주 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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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 5현
적색: 조선 종묘 배향공신

정부상징
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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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100호]
[101~150호]
[151~200호]
[201~250호]
[251~300호]
[301~336호]

 
 
 
 
[1] 문종(조선)의 이름 향(珦)과 겹치는 바람에 조선 조정에서는 논의 끝에 문종의 이름을 피휘토록 하고 안향의 이름을 초명인 유(裕)로 바꿔 불렀다. 순흥 안씨 옛 족보에는 안유(安裕)라고만 나오는 경우도 있음.[2] 순흥은 현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을 가리킨다.[3] 지금의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4] 오늘날의 장학재단 같은 시스템이라고 생각하면 편하다.[5] 초상은 이후 안향의 후손들이 보관하다가 조선 명종 때 다시 복제하였는데 복제본이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11호로 지정된 회헌영정(晦軒影幀)이다.[6] 소수서원은 지금도 유적지로 남아있으며 국보 제111호 회헌영정도 이 곳에서 봉안하고 있다. 지금은 그 인근인 순흥면 청구리에 안향, 주세붕, 주자 등의 인물들의 유적을 소개하는 소수박물관이 세워져 있다.[7] 검교첨의정승. 고려 말 대학자이자 문하시중을 지낸 이제현의 아버지.[8] 첨의정승. 이제현의 장인.[9] 성균좨주.[10] 첨의평리 상의회의도감사. 이제현의 스승이자 사돈.[11] 정당문학. 고려 말 권신 이인임의 조부.[12] 판밀직사사.[13] 안중근, 안철수 등도 안향의 먼 후손들이다.[14] 본관은 전의 이씨. 형부시랑 이윤관(李允寬)의 증손이자 도첨의정승 이혼(李混)의 차남이다. 관직은 성균악정(成均樂正)에 이르렀고 부친 이혼보다 일찍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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