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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헌민주당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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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6년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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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공업대학 출신
- 사회운동가 출신 정치인
- 인터넷 밈/정치 및 사회/일본
- 인터넷 밈/정치인/일본
- 동화대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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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현직 | 입헌민주당 최고고문 |
재임기간 | 제94대 내각총리대신 |
링크 | |
세습 정치인이 아닌데다 일관되게 반(反) 자민당의 길을 걸어온[10] 군소야당 사회민주연합 출신으로 맨땅에 헤딩하듯 성장해온 입지전적 인물이라 자민당의 보수 세습 정치에 질린 시민들의 기대가 컸으나, 야당 정치인 시절의 기대치[11]에 한참 못 미치는 정치력으로 실망을 주었고 설상가상으로 들이닥친 천재(天災)와 막장기업이 야기한 인재(人災)를 신경써 수습하고도 비난받는 불행한 인물이다.[12]
복지 확대 이전에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는 간 내각의 정책방향 자체는 오자와 이치로의 '일단 닥치고 복지 확대'보다 현실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금 인상이라면 본능적으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무시하고 일본 참의원 선거 직전에 이를 주장함으로서 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프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부분. 그리고 털렸다는 22회 참원선에서도 득표율 자체는 비례,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자민당보다 앞섰다.[13] 민심은 아직까지도 민주당이 실망스러워도 자민당을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은 셈인데, 선거전략을 개떡같이 짜서(...)[14] 자민당에게 반등의 기회를 준 셈이다. 이 때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만 하지 않았어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간 총리 개인으로서도 뼈아픈 부분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좋은데 정치능력이 떨어진다.
다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의 대응만큼은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자체가 전대미문의 대재앙이었던 데다가 연이어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대응을 해야 했을 도쿄전력은 꾸물거리고 있는 중에 직접 쳐들어가 지휘한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분명 필요한 행동이었다. #[15] 특히나 시간이 지나면 약간은 해결되는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원자력 사고는 명백히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긴박한 사고이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끌었다간 지금보다도 더 방사능 지대가 넓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간 총리가 관련 전공자였기에 위기감을 느껴 빠르게 대처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래나저래나 욕 먹는 건 똑같으니 포기하고 도쿄전력 탓이나 하면서 손 놓고 있자" 식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1억 일본인에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이후 들어선 아베 정권이 2018년 일본 서남부 폭우 사태때 66시간이 흐르고서야 대책본부를 수립했고 25년 만에 일본을 강타한 최악의 태풍이 오사카를 강타했는데도 총재선 집회가 열리는 니가타현으로 가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는데 후쿠시마 때 그런 식으로 했다간 정말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욕은 간 나오토가 더 먹었으니 지지리도 운이 없는 셈이다.
그렇게 데인 탓인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복지 확대 이전에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 건전화가 우선이라는 간 내각의 정책방향 자체는 오자와 이치로의 '일단 닥치고 복지 확대'보다 현실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금 인상이라면 본능적으로 회피할 수밖에 없는 유권자들의 심리를 무시하고 일본 참의원 선거 직전에 이를 주장함으로서 참패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프로 정치인으로서의 자질을 의심케 하는 부분. 그리고 털렸다는 22회 참원선에서도 득표율 자체는 비례, 지역구 모두 민주당이 자민당보다 앞섰다.[13] 민심은 아직까지도 민주당이 실망스러워도 자민당을 대안세력으로 보지 않은 셈인데, 선거전략을 개떡같이 짜서(...)[14] 자민당에게 반등의 기회를 준 셈이다. 이 때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만 하지 않았어도 나름대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이 가능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간 총리 개인으로서도 뼈아픈 부분일 것이다. 요약하자면, 사람은 좋은데 정치능력이 떨어진다.
다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의 대응만큼은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동일본 대지진 자체가 전대미문의 대재앙이었던 데다가 연이어 터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에서 누구보다도 빨리 대응을 해야 했을 도쿄전력은 꾸물거리고 있는 중에 직접 쳐들어가 지휘한 것은 국가 지도자로서 분명 필요한 행동이었다. #[15] 특히나 시간이 지나면 약간은 해결되는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원자력 사고는 명백히 골든타임이 존재하는 긴박한 사고이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끌었다간 지금보다도 더 방사능 지대가 넓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나마 간 총리가 관련 전공자였기에 위기감을 느껴 빠르게 대처한 것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이래나저래나 욕 먹는 건 똑같으니 포기하고 도쿄전력 탓이나 하면서 손 놓고 있자" 식으로 대응하지 않은 것은 일본이라는 국가와 1억 일본인에게 매우 다행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장 이후 들어선 아베 정권이 2018년 일본 서남부 폭우 사태때 66시간이 흐르고서야 대책본부를 수립했고 25년 만에 일본을 강타한 최악의 태풍이 오사카를 강타했는데도 총재선 집회가 열리는 니가타현으로 가는 만행을 저지른 바 있는데 후쿠시마 때 그런 식으로 했다간 정말 큰일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욕은 간 나오토가 더 먹었으니 지지리도 운이 없는 셈이다.
그렇게 데인 탓인지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국민 절반이 살 수 없게 되는 사고라면 100년에 한번뿐일지라도 그런 위험부담은 져서는 안된다!"
라는 발언까지 날리기도 했다.
총리는 적어도 4년 정도는 해야 안정적이다라는 말을 총리가 되기 전 의원 시절에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대로 4년은 커녕 1년 3개월에 그치면서 또 하나의 단명 내각으로 남고 말았다.[16] 그래도 역대 전후 내각 총리대신 32명 가운데 19위의 재임기간으로 일본 정치의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래에는 비교적 긴 임기에 색깔있는 총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임기 내의 지지율 하락에 따라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가장 많이 까이게 되었다. 당장 니코니코 대백과에서 간 나오토 항목과 아베 신조 항목을 비교해봐도 보수층들이 얼마나 간 총리를 혐오하는지 알수 있다. 보수층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대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평가는 최악 자체. 그 뒤 반핵 행보를 이유로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고 있는 일본 내 보수세력들에게 틈틈히 공격당하고 있다.
언행불일치를 그간 요상하게 해왔기에 극우가 아니더라도 까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아베 총리는 인터넷으로 유권자와 소통하기 때문에 자격미달"[17]이라는 발언을 본인 블로그에 써놓는 걸로 시작해서, "정치판이 개판이라 은퇴하고 싶다"고 인터뷰까지 해놓고는 선거전에 제일 먼저 뛰어든다던지 자기는 블로그에서 타 정당 낙선운동[18]을 벌였으면서 아베가 블로그에 본인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걸로 정점을 찍은 여러 가지 기행 덕분에 신나게 까이고있다. 그러나 간 나오토가 아베를 고소한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니 간 나오토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19]
총리는 적어도 4년 정도는 해야 안정적이다라는 말을 총리가 되기 전 의원 시절에 한 적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대로 4년은 커녕 1년 3개월에 그치면서 또 하나의 단명 내각으로 남고 말았다.[16] 그래도 역대 전후 내각 총리대신 32명 가운데 19위의 재임기간으로 일본 정치의 현실에서는 아주 짧은 편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이래에는 비교적 긴 임기에 색깔있는 총리로 남게 되었다.
하지만 그도 임기 내의 지지율 하락에 따라 하토야마 유키오와 함께 가장 많이 까이게 되었다. 당장 니코니코 대백과에서 간 나오토 항목과 아베 신조 항목을 비교해봐도 보수층들이 얼마나 간 총리를 혐오하는지 알수 있다. 보수층들 뿐만 아니라 이 시기에 대한 대부분의 일본인들의 평가는 최악 자체. 그 뒤 반핵 행보를 이유로 원전 재가동을 밀어붙이고 있는 일본 내 보수세력들에게 틈틈히 공격당하고 있다.
언행불일치를 그간 요상하게 해왔기에 극우가 아니더라도 까는 사람이 상당히 많다. "아베 총리는 인터넷으로 유권자와 소통하기 때문에 자격미달"[17]이라는 발언을 본인 블로그에 써놓는 걸로 시작해서, "정치판이 개판이라 은퇴하고 싶다"고 인터뷰까지 해놓고는 선거전에 제일 먼저 뛰어든다던지 자기는 블로그에서 타 정당 낙선운동[18]을 벌였으면서 아베가 블로그에 본인의 정책을 비판하는 글을 올리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걸로 정점을 찍은 여러 가지 기행 덕분에 신나게 까이고있다. 그러나 간 나오토가 아베를 고소한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니 간 나오토만 잘못했다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19]
일단 간 나오토 총리는 한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인 입장을 취임 전부터 표명했고, 미래 지향적 한일관계를 위해 동북아 평화번영을 추진하는 등 매우 개념 있고 진일보한 인물. 총리 취임 전부터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 정치인들에게 강도 높게 비판하고 나서기도 했다.
그는 북한 관계와 관련 "한국의 천안함 침몰 사건은 용인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고, 2010년 8월에는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해 간 나오토 담화를 발표하여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의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간 나오토가 2010년 7월 당시 의회에서 일본에는 전혀 없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의 유교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행동인 고개를 돌려 물을 마시는 행동을 하여 일본 네티즌들에게 한국의 스파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며, 간 나오토가 한국계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다. 기사
결론적으로 간 나오토 재임 시기에 한일관계가 매우 원만했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오부치 게이조, 하토야마 유키오 등과 함께 한국인에게 개념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근 2014 ~ 2015년 사이에 자주 방한해 도호쿠 지진, 원전사고에 대해 수없이 강연을 하였고, 경주에서도 강연을 가진 적도 있다.해당 영상 또한 2015년 3월 18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고해당 영상, 2016년 당시 jtbc 후쿠시마 다큐 프로그램에 일본 총리 최초로 출연하여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총리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SBS 스페셜 제작진과 전직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인터뷰를 했으며 총리시절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도쿄전력의 행태에 대해 돌려말하기 식으로 비판하기도 했다.[20]
그는 북한 관계와 관련 "한국의 천안함 침몰 사건은 용인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을 전면적으로 지지한다"고 밝히기도 했고, 2010년 8월에는 한일병합 100주년을 맞이해 간 나오토 담화를 발표하여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의 모든 사실을 인정했다.
또한 간 나오토가 2010년 7월 당시 의회에서 일본에는 전혀 없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한국의 유교 사상에 포함되어 있는 행동인 고개를 돌려 물을 마시는 행동을 하여 일본 네티즌들에게 한국의 스파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으며, 간 나오토가 한국계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었다. 기사
결론적으로 간 나오토 재임 시기에 한일관계가 매우 원만했었고 무라야마 도미이치, 오부치 게이조, 하토야마 유키오 등과 함께 한국인에게 개념 있는 정치인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최근 2014 ~ 2015년 사이에 자주 방한해 도호쿠 지진, 원전사고에 대해 수없이 강연을 하였고, 경주에서도 강연을 가진 적도 있다.해당 영상 또한 2015년 3월 18일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문재인 전 대통령과 회담을 가지기도 했고해당 영상, 2016년 당시 jtbc 후쿠시마 다큐 프로그램에 일본 총리 최초로 출연하여 인터뷰에 응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총리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태에 대해 SBS 스페셜 제작진과 전직 일본총리로서는 최초로 인터뷰를 했으며 총리시절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 도쿄전력의 행태에 대해 돌려말하기 식으로 비판하기도 했다.[20]
연도 | 선거 종류 | 지역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76 | 71,368 (11.74%) | 낙선 (5위) | ||||
1979 | 67,480 (11.93%) | 낙선 (6위) | ||||
1980 | 157,921 (22.82%) | 당선 (1위) | 초선 | |||
1983 | 127,700 (19.90%) | 재선 | ||||
1986 | 136,482 (20.35%) | 당선 (2위) | 3선 | |||
1990 | 137,343 (17.34%) | 당선 (3위) | 4선 | |||
1993 | 154,827 (20.49%) | 당선 (1위) | 5선[25] | |||
1996 | 116,910 (62.45%) | 6선 | ||||
2000 | 114,750 (56.15%) | 7선 | ||||
2003 | 139,195 (58.33%) | 8선 | ||||
2005 | 126,716 (47.43%) | 9선 | ||||
2009 | 163,446 (59.47%) | 10선[26] | ||||
2012 | 73,942 (28.33%) | 당선 (2위)[석] | 11선 | |||
2014 | 89,877 (38.79%) | 12선 | ||||
2017 | 96,713 (40.73%) | 당선 (1위) | 13선 | |||
2021 | 122,091 (47.12%) | 14선 |
- 대학생 시절 마작점수계산기를 발명했다. 특허도 갖고 있다고 한다.
- 일본 전 총리로서는 이례적으로 한국의 뉴스인 JTBC 뉴스에 게스트로 나왔다. 주제는 역시 일본 내 원전 문제 및 원자력 발전 반대. 또한 같은 방송사의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40화에서 제작진과 함께 그린피스 레인보우 워리어 호를 타고 후쿠시마 원전 앞바다로 나가 당시 상황에 대해 얘기를 했다.(3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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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각부설치법상 의무적으로 임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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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자이자 사촌누나이다. 일본의 경우 근친혼의 범위를 3촌이내의 친족에 한하기 때문.[A] 2.1 2.2 2.3 2.4 2.5 중선거구제 시절 (구) 도쿄 7구[B] 7.1 7.2 석패율 비례대표.[9] 하토야마 유키오와 공동 재임[10] 1955년 자민당 체제 등장 이후 일본의 총리 가운데 자민당 당적을 가져 본적이 한 번도 없는 인물은 1994~1995년 자민당-일본사회당-신당 사키가케 3당 연립내각의 무라야마 도미이치, 민주당 정권 시절의 간 나오토 본인, 후임 총리였던 노다 요시히코 셋 뿐이다.[11] 98년 지지통신 차기총리 여론조사에서 당시 총리였던 하시모토 류타로를 20%차로 따돌리며 30%의 압도적 지지율로 1위를 하는등 일본인들의 기대가 컸다. [12] 이에 맞먹는 불행을 겪은 총리가 다나카 가쿠에이. 록히드 사건으로 평생을 고생했다.[13] 비례 민주 31.56%vs자민 24.07%. 지역구 민주 38.97%vs자민 33.38%.[14] 대표적인 선거전략 실패로는 2인구, 3인구에서 후보를 2명 내보내는 전략이 실패한 것이다. 자민당은 이와 반대로 당 지지율이 낮음을 인지하고 확실하게 당선시키기 위해 후보 한 명만을 내보냈는데, 민주당은 표가 분산되어서 후보들의 득표율 합은 자민당보다 높지만 모두의 당, 공명당등의 중견정당의 약진으로 2인구, 3인구에서 한 석도 건지지 못하고, 반대로 표가 통일된 자민당은 한 석은 건지는 그런 구도가 전국에서 연출됐다.[15] 총리가 간다고 업무 효율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시 도쿄전력은 '철수'(사실상 도망)하려고 하다가 총리가 와서 그러지 못한 것이다. 만약 실제로 철수하고 손을 놓아버렸을 때 피해가 얼마나 더 커질지는 예측하기 어려우나, 원자력 사고의 특성상 심해졌으면 심해졌지 자연히 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을 것이다. 오죽하면 당시 관방장관 에다노 유키오는 "최악의 경우 도쿄를 버려야 할 수도 있다"라고까지 했을 정도이다.[16] 그래도 자민당 장기집권 시대를 다시 연 아베 신조의 후임자 스가 요시히데(1년 1개월)보다는 오래 재임했다. 그래도 스가는 자민당 내에서 거의 모든 파벌들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선을 노리다가 포기했기 때문에 간 나오토와는 상황이 달랐다.[17] 이건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다. 자민당과 아베 내각이 방송국, 신문 표현의 자유는 손타쿠 등으로 침해하면서 인터넷상의 헤이트스피치는 적극적으로 방관하였기 때문.[18] 일본은 원칙적으로 인터넷에서의 선거운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단지 2013년 5월부터 한정적으로 제한이 풀리긴했지만, 2013년 7월 현재도 정치인과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연예인이 방송에서 퇴출당한 사례가 있을 정도로 엄격했다.[19]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경과 2013년 7월 17일자에 자세한 내용이 실려 있다.[20] 도쿄전력은 자신들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행정부의 수장인 총리에게 수차례 허위 보고를 올렸다. 이 행동은 명백히 법률을 위반한 것이었고 결국 후쿠시마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기회를 놓쳤다. 간 나오토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실각에 원인을 제공했을 뿐더러 일본을 망치게 만들었기 때문에 충분히 비판할 만하다.[21] 민주당 창당을 위한 탈당[22] 민정당, 사회민주연합, 신당우애와 신설 합당[23] 입헌민주당 합류를 위한 탈당[24] 국민민주당과 신설 합당[25] 일본 중의원 의원 총선거의 마지막 중선거구제[26] 제94대 내각총리대신 (2010.6.8.~2011.9.2)[석] 석패율제 당선[28] 물론 그 관직과 한자는 다르다.[29] 간 나오토는 일본 의회 내에서도 이름 높은 반관료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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