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훈(방송인)

최근 수정 시각:
임성훈
林成勳 | Lim Seong-hoon
세상에 이런일이 임성훈
본명
임종상
출생
본관
나주 임씨 (羅州 林氏)[2]
국적
종교
신체
168cm, 65kg
학력
가족
여동생[3]
배우자 오윤주(1976년 결혼 ~ 현재)
장남 임형택[4]
차남 임희택[5]
데뷔
1974년 동양방송 '코미디 살짜기 웃어예'
 

1. 개요2. 생애3. 여담4. 주요 출연작
4.1. 방송4.2. 영화4.3. 광고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2. 생애[편집]

 
1950년 7월 28일, 서울특별시 성북구에서 태어났다. 경복고등학교(44회)와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고 연세대학교 4학년에 재학 중 응원단장을 역임했다.

우연한 기회에 재학중 각 대학교 명물로 TV에 출연했다 이후 MC를 보게 됐다고 한다.(유퀴즈에서 본인이 얘기함).[6] 어찌 보면 임백천과 비슷한 케이스다. MC로 유명해진 이후에도 2011년에는 콘서트 7080에서 공연한 적이 있다. 링크 아침방송 MC 보던 중 조용필과의 어쿠스틱 기타 협연#을 보면 뮤지션으로서의 그의 기본기를 알 수 있다.

1970년, 신중현과 퀘션스의 객원 보컬로 가수 데뷔를 했다. 당시 신중현과 김홍탁이라는 당대 최고의 기타리스트들에게 곡을 받아 1972년 주간경향컵 뉴스타 팝 그랑프리 컨테스트에서 팝 남자가수부문 대상을 받았지만 대중적 히트에는 실패했고, 1976년 '시골길'이라는 곡으로 어느 정도 성공했다.

코미디언으로서는 1974년 동양방송 코미디 '살짜기 웃어예'로 데뷔했다.[7] 코미디언에서 개그맨으로 명칭이 넘어가던 시기의 선두 주자 중 한 명이다.

그 후 1980년대 KBS의 간판 MC로 활동했다. 이후 프리랜서 선언을 거쳐 MBC, SBS 등에서도 고정 프로를 맡게 되었는데, 중장년층들에게는 KBS 가요톱10의 MC로[8], 2030 세대에게는 SBS 특명! 아빠의 도전과 MBC 퀴즈가 좋다, 그리고 2010년대~2020년대 들어서는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MC로 알려져 있다.

KBS에서 《강연 100℃》를 진행했다. 그 외에도 하이서울 홍보대사, 서울특별시의회 홍보대사, 서주우유 모델로 활동했다.

슬하에 아들만 둘을 두고 있는데, 장남은 LG U+ 버라이어티 제작팀장으로 근무하는 임형택, 차남은 힙합 뮤지션 사이드 비의 멤버 T'ache(본명 임희택)이다. 온게임넷에서 프로리그 예고 영상 성우로 활동했으며, 엠넷 엠 카운트다운나레이션도 맡고 있다. 후자의 경우, Side-B 정규 2집에 아버지의 곡 시골길을 리믹스한 곡을 수록했다. 시골길 MV 역시 슬하에 아들 둘을 두고 있고 아들 중 한 명이 힙합 뮤지션으로 활동하고 있는 조형기와도 비교되는 대목이다. 다만 이쪽은 장남이란 차이점이 있다. Row Digga란 예명으로 활동 중인 조경준이 바로 이 인물이다.

SBS의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를 첫 회부터 종영까지 진행했으며 1000회 방송 당시에 1000회 감사패를 수여받은 바 있다. 기사[9]

2020 SBS 연예대상에서 레전드 특별상을 수상했다.

2022년 4월 26일,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에 확진됐다.
 

3. 여담[편집]

 
임성훈1980
1980년 젊은 시절(30세) 모습
임성훈 전투력
  • 당랑권, 오형권[10] 등의 고수로 알려져 있다. 체구가 큰 편은 아니지만[11] 수십 년간 무술을 연마했으며 주특기는 창술이다. 또한 태권도, 권투, 쿵후를 배운 경험도 있다.# 위의 움짤을 보면 알겠지만 70대의 나이에도 뛰어난 운동 능력을 유지하고 있고 근육량도 상당한 편이다.[12] 젊은 시절에는 쿵후 교범의 사진 모델을 한 적도 있을 정도로 무술 쪽에도 정통해 있다. 가수이자 작곡가전영록과도 무술로 아는 사이라고 한다. 실전 실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개그맨 서승만이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급하길[13] 한 번은 임성훈과 아내가 동반 외출을 했다고 한다. 아내가 운전을 했는데 여자가 운전석에 앉은 것을 보고 지나가던 차에 탔던 일행(남자 2명이었다고 한다)들이 시비를 걸어왔다고 한다. 이에 임성훈 본인이 내려서 정중하게 진정시키고 보내려고 했는데 아내를 직접 위협하려 하자 번개 같이 주먹 2번을 남자 둘의 안면에 적중시켜서 바로 다운을 시켜 버렸다고 한다. 이후 시비를 걸었던 남자들은 조용히 사과하며 떠났다고 한다.
  • 임성훈의 차남인 테이크(임희택)는 음악하고 싶다는 말을 꺼냈다가 두들겨 맞은 적도 있다고.
  • 배철수는 자기 프로그램에 임성훈이 출연했을 때 "젊을 때의 성훈이 형은 우리가 좀 어렵고 무서운 선배로 기억했는데, 중년부터 노년까지 방송에서 친숙한 이미지의 연예인이 된 게 어색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아무래도 무술인인 연예인 선배라서인지 배철수와 그 동년배 가수들은 임성훈을 좀 어려워 했다는 듯하다. 호칭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배철수보다 나이가 많다.
  • 런닝머신을 뛰거나 걸으며 멘션 연습을 하는 편이다. 건강과 동안 외모 그리고 진행 능력이 괜히 얻어진 게 아닌 듯하다.
  • 내한 당시, 일명 '네네 인터뷰'를 진행했던 적이 있다. 당시 로저 테일러존 디콘이 인터뷰에 응했는데 '네네' 소리가 크리피했던 지 넋 나간 표정을 짓는 로저 테일러의 마지막 얼굴이 압권이다.(당시 인터뷰 영상)
  • 박소현과 같이 《세상에 이런 일이》를 1회부터 지금까지 진행을 해오고 있는데 그 둘이 나이를 안 먹는다고 생각할 정도로 동안인지라 일각에서는 사실상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진행을 맡을 게 아니라, 출연을 해야 한다는 농담도 있다.
  • 당시 연세대학교 출신이라는 학벌에서 보여주듯 1980년대 활약한 방송인들 중에서는 매우 드물게 영어에 꽤 능했다. 1980년대 재한외국인들이 출연한 한 예능을 진행한 적이 있었는데, 출연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 못알아듣자 영어로 이야기한 적이 있다. 1999년 SBS 임백천 원더풀 투나잇의 '김종석 대학간다'라는 코너에서 영어를 공부하던 김종석이 Budget을 버드짓이라고 발음 하자 옆에서 보고 있던 임성훈이 "그건 버드짓이 아니고 버짓이라고 읽는 거야" 라고 정정해줬다.
  • 2026년 1월 기준, 각종 보도 자료를 기준으로 봤을 때 공식적으로는 단 두 번만 해외여행을 가본 적이 있으리라 추측된다. 개그맨 김한국이 밝힌 바에 따르면, 임성훈은 데뷔 초창기인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TV,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다 보니 방송국을 비우면 안 된다는 일종의 커다란 사명감이 생겨 자리를 비울 수 없어 외국에 가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김한국 인터뷰 이는 지금처럼 자유롭지 못했던 당시의 해외여행 분위기와, 임성훈이 '세상에 이런 일이'를 매주 20년 넘게 빠짐없이 진행해 온 걸로 미뤄봤을 때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사실상 사적인 관광 목적으로 해외여행을 안 갔다는 뜻이고, 2008 베이징 올림픽 당시 연예인 응원단 자격으로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후 현지 경기장에서 동료 연예인들과 함께 국가대표 선수들을 응원한 바가 있다. 기사 1 기사 2 기사 3 또 한 번은, 임성훈이 모친상을 당해서 캐나다로 다녀왔을 때이다.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모친은 캐나다에서 여동생 부부와 같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조카로부터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다음 날이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 녹화 일이었고, 방송이 최우선이라는 어머니의 조언에 따라, 모친상을 이유로 빼먹을 뻔한 방송분을 무사히 녹화한 다음 날에 캐나다행 비행기를 타고 캐나다 현지에서 마지막까지 어머니를 잘 모셔드렸다고 한다. 가족이 캐나다에 있는 것으로 봐서는 캐나다로는 아마도 몇 차례는 갔을 것이라 추측은 되지만, 물론 정확한 해외여행 횟수는 본인만 알 것이다.
  • 전두환 정권 시절에는 민주정의당의 당원이었다. 그래서 당시 민정당 행사 MC로 종종 활약했다. 특히 1987년 6월 항쟁이 촉발된 당일의 전당대회에서도 메인 MC를 봤다.[14] 그러나 이후에는 정치적인 발언을 삼가는 편이다.
  • 2025년 연세대학교 창립 140주년 및 연고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축제에 등장해 약 50년 만에 모교 노천극장에서 공연했는데 MC가 73년에 응원단장을 역임했다고 하자 74년에 응원단장을 했었다고 정정했으며 당시 응원방식을 알려주며 70대 중반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율동을 보여줬다. # 그리고 그 춤의 극히 일부분을 유 퀴즈 온 더 블럭 출연분에서 두 MC 옆에서 짤막하게 선보이기도 했다.
  • 연세대라는 높은 수준의 대학 출신이라는 점과, 하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일일이 세기 힘들 정도로 다양하고 명망 있는 프로그램에서 MC로서 진행을 맡다보니, 일반 대중들 중에는 임성훈을 방송국 출신 아나운서로 인식하는 사람도 의외로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임성훈이 등장하는 유튜브 영상의 댓글, 블로그 혹은 SNS 등의 글을 보면 누군가가 실제로 '임성훈 아나운서'라는 식으로 적어놓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정작 임성훈은 방송국 공채 아나운서 출신이 전혀 아니며, 사실은 위에서도 언급됐듯이 가수 및 코미디언 출신이다. 만약 진짜 방송국 공채 혹은 특채 아나운서 출신이라면 ●프리랜서 선언 전에는 소속된 특정 방송국의 프로그램 위주로만 출연했을 가능성이 매우 컸을 테고, ●모든 아나운서들이 한 번씩 거친다는 TV 혹은 라디오 형식의 뉴스 혹은 시사토론 등의 진지하고 엄숙한 방송 프로그램을 실제로 몇 차례 진행한 흔적이 있거나, ●방송국 주관의 한국어 교육 부문, 혹은 방송국 내외적으로 아나운서 양성 사업에 이바지한 바가 있어야 할 것이다. 아래에 언급된 퀴즈, 다큐멘터리, 진중함이 묻어나는 오락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보면 알겠지만, 이러한 프로그램들을 진행한 적이 있는 것도 임성훈 본인만이 누리는 특유의 ●높은 학벌에서 비롯된 교양, 그리고 ●깔끔하고 안정된 진행 스타일이 접목되어 캐스팅됐을 가능성이 높다.
  • 대략 2010년대 이후에는 나이 탓인지 방송이나 행사를 진행할 때만큼은 안경을 착용한다.
 

4. 주요 출연작[편집]

 
 
 
 
 
 
 

5. 둘러보기[편집]

 
kbs를 빛낸 50인 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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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섭[A]
안국정[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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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가 공영방송 50주년을 맞이하여 선정한 50인의 인물로, 순서는 가나다순으로 정렬하였다.

선정을 위해 KBS와 여론조사기관 칸타퍼블릭이 공동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하였다. 사내외 전문가그룹 100명과 인구 통계학적 분포에 따라 성별, 연령별로 구성된 KBS 국민 패널 1,800여 명이 참여한 1차 설문 조사로 100명의 후보군을 우선 선정한 후, 이어서 3주간 KBS 공영방송 50주년 홈페이지(kbs50.kbs.co.kr)를 통해 일반 시청자 7만여 명을 대상으로 최종 투표를 실시하였다. 시청자 투표로 선정된 최종 50인은 한국언론학회와 한국방송학회, 한국언론정보학회의 추천을 받아 미디어 학계 전문가로 구성된 ‘KBS를 빛낸 50인 선정자문위원회’에서 적격성 검토를 거쳐 확정되었다.

[A]: 가요무대 음악 감독을 맡은 KBS 악단장으로, 2022년 사망했다.
[B]: 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기획, 연출한 PD.
임성훈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진행자상
강석
(2005년)
임성훈
(2006년)
정관용
(2007년)

 
[1] 자신이 조용필과 동갑이라고 방송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다.[2] 29세손 종○(鍾○) 항렬. #[3] 오래전에 캐나다로 이민을 가 정착하였다고 한다.[4] 2022년 9월 30일부로 SBS를 퇴사해 LG U+ 산하 조직 콘텐츠제작센터로 이적했다. SBS에서 런닝맨, 패밀리가 떴다, 웃찾사 SBS 인기가요 등 담당했다.[5] 가수 사이드 비의 멤버 테이크(T'ache)[6] 최양락송승환유튜브 채널에서 증언하길, 업계에서는 전유성과 코미디계 동기로 여겨지는 것 같다.[7] 1년 뒤인 1975년에는 해당 프로그램에 김병조가 데뷔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임성훈과 김병조는 1950년생 동갑내기이다.[8] 역대 순위제 음악방송 전체 진행자 중 최장 기간 진행자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9] 그리고 네티즌들은 당시 각각 세는 나이로 70세, 49세였던 임성훈과 박소현의 동안이야말로 '세상에 이런일이' 수준이라고 평했다.[10] 홍가권 황비홍의 홍가권 수련 투로 중 하나로 용호사학표권의 오형권 교본에 표지 모델을 한 적이 있다.[11] 프로필 상 신장은 168cm로 현대 기준으로 보면 큰 신장이 아니지만 임성훈의 연령을 생각하면 평균 이상인 것도 맞다.[12] 애초에 대학 시절 응원단 출신이면 운동을 많이 할 수밖에 없다. 대학교 응원단은 운동량이 상당히 많다. 거기다가 21세기인 지금도 군기를 잡아서 논란이 될 정도의 군대식 분위기인데 1970년대는 더했을 테니...[13] 임성훈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을 뿐, 오랫동안 활동한 유명 MC라고 말하면서 중간중간 뜬금없이 '세상에 이런일이!'라고 말하며 임성훈임을 노골적으로 암시했다.[14] 이 전당대회에서 김병조통일민주당 비하 발언 사건이 터지게 된다.[15] 1회 (10월 21일), 2회 (10월 28일)만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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