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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대훈장 수훈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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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Imelda Romualdez Marcos 이멜다 로무알데스 마르코스 | ||||||||||
출생 | |||||||||||
국적 | |||||||||||
직업 | |||||||||||
재임기간 | 제10대 대통령 배우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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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
“그녀는 8년 간 매일 구두를 갈아 신었다고 한다. 하루도 같은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그녀의 전기 영화 <이멜다(Imelda)>의 도입부
필리핀의 전직 하원의원이자 기업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의 부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현 필리핀 대통령의 모친.
대통령인 남편의 임팩트가 하도 강해서 그렇지 이 양반도 부정부패로는 남편 뺨쳤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치 행각들로 악명이 높았으며, 한때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역임하면서 횡령도 엄청나게 저질러 자국의 경제를 말아먹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 마르코스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감정이 마르코스보다도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2018년 11월 9일 필리핀 법원에 의해 최고 77년형 선고가 확정되어 정석대로라면 공직은 물론 피선거권도 박탈당해야 도리지만, 당연하게도 이멜다 측에서 항소할 것이라고 하며, 거기에 현재 공직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2022년 5월,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기어코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해서 36년만에 마르코스 일가가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대통령인 남편의 임팩트가 하도 강해서 그렇지 이 양반도 부정부패로는 남편 뺨쳤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사치스러운 인물'이라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사치 행각들로 악명이 높았으며, 한때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역임하면서 횡령도 엄청나게 저질러 자국의 경제를 말아먹는데 일조했다. 그래서 필리핀인들은 "페르디난드 마르코스는 용서할 수 있어도, 이멜다 마르코스만큼은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할 정도로 그녀에 대한 감정이 마르코스보다도 더 좋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2018년 11월 9일 필리핀 법원에 의해 최고 77년형 선고가 확정되어 정석대로라면 공직은 물론 피선거권도 박탈당해야 도리지만, 당연하게도 이멜다 측에서 항소할 것이라고 하며, 거기에 현재 공직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2022년 5월, 그의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기어코 필리핀 대선에서 승리해서 36년만에 마르코스 일가가 다시 정권을 잡게 되었다.
- 1965~1986 제10대 필리핀 대통령 배우자
- 1975~1986 초대 메트로 마닐라 주지사
- 1978~1984 메트로 마닐라 6구 국회의원
- 2010~2019 북일로코스 2구 하원의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는 파티장에서 처음 만났는데, 이들의 만남을 중재해준 사람은 호세 게바라(Jose Guevara, 1917~2002)라는 언론인인데, 게바라는 1938년부터 2002년(정확히는 사망일)까지 무려 64년간 필리핀 최대 신문 '마닐라 불틴'에 칼럼을 개재한 필리핀의 유명 언론인이다. 마르코스의 '꾸준한 조수' 취급받을 정도로 친마르코스 성향이었다.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170㎝였던 페르디난드[3]가 172㎝였던 이멜다에 비해 키도 작고 나이도 무려 12살 가까이 많아 처음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서 <이멜다 마르코스>에 따르면 페르디난드는 당시 이멜다와 결혼하기 위해서 기이한 행동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매일 이멜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내는 것이였다. 하루에 1개씩, 총 11일 동안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음에도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넘어오지 않았다. 허나 여차저차하여 페르디난드는 "이멜다, 언젠가 영부인이 될 생각은 없어요?"라고 간신히 프러포즈를 한 끝에 이멜다와 결혼했다고 한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의하면, 사교계에서 연애하던 상류층 부자 남자에게 버림받고 크게 낙심하여 실의에 빠진 이멜다를, 한결같이 옆에서 위로해주고 함께 해준 것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멜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에,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인데다 가문도 끝내주는 페르디난드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170㎝였던 페르디난드[3]가 172㎝였던 이멜다에 비해 키도 작고 나이도 무려 12살 가까이 많아 처음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서 <이멜다 마르코스>에 따르면 페르디난드는 당시 이멜다와 결혼하기 위해서 기이한 행동을 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매일매일 이멜다에게 다이아몬드 반지를 보내는 것이였다. 하루에 1개씩, 총 11일 동안 다이아몬드 반지를 하루도 빠짐없이 보냈음에도 이멜다는 페르디난드에게 넘어오지 않았다. 허나 여차저차하여 페르디난드는 "이멜다, 언젠가 영부인이 될 생각은 없어요?"라고 간신히 프러포즈를 한 끝에 이멜다와 결혼했다고 한다,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의하면, 사교계에서 연애하던 상류층 부자 남자에게 버림받고 크게 낙심하여 실의에 빠진 이멜다를, 한결같이 옆에서 위로해주고 함께 해준 것이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멜다는 자신을 사랑하는 일편단심에, 전도유망한 젊은 정치인인데다 가문도 끝내주는 페르디난드에게 마음을 열었다고 한다.
이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필리핀 대통령을 목표로 하자, 이멜다도 이를 위해서 열심히 뛰어 다녔다. 특히 놀랍게도 필리핀 대통령 선거 당시 이멜다의 행적은 이후의 엄청난 사치 행각을 생각하면 경악스러울 정도로 완전무결한 내조의 여신이자 현숙한 귀부인이었다고 한다. 우선 선거 유세현장에서 연설과 함께 노래를 부르면서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그리고 저명인사들의 부인들의 모임을 조직해서 선거 자금을 마련했고, 성대한 연회를 열어 그녀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면서 페르디난드의 지지율을 높여 나갔다.
게다가 미스 마닐라에도 도전했던 사람이 남편의 당선을 위해서 필리핀 전국을 누비고 다니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여러 지방들을 두루두루 방문하거나, 고무보트까지 타면서 지방으로 내려갔고, 거기서도 흙을 다 묻혀가면서 모내기를 하거나 농사를 도왔다. 이런 일들을 수천 개의 섬들을 왔다갔다하면서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에게 "내가 얻은 표의 3분의 1은 당신의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엄령 선포 전까지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퍼스트레이디 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게다가 미스 마닐라에도 도전했던 사람이 남편의 당선을 위해서 필리핀 전국을 누비고 다니기까지 했다. 비행기를 타고 여러 지방들을 두루두루 방문하거나, 고무보트까지 타면서 지방으로 내려갔고, 거기서도 흙을 다 묻혀가면서 모내기를 하거나 농사를 도왔다. 이런 일들을 수천 개의 섬들을 왔다갔다하면서 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 1965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페르디난드는 이멜다에게 "내가 얻은 표의 3분의 1은 당신의 것이다."라고 말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계엄령 선포 전까지는 남편과 마찬가지로 퍼스트레이디 직을 성실하게 수행했다.
이멜다는 남편의 2기 재임기부터 점차 사치향락에 맛을 들이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타락하게 된다. 이멜다는 계엄령 선포 기간 동안 보건복지부 장관직과 마닐라 시장직을 지내게 되는데 그 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필리핀의 국가재정을 횡령하거나 과시욕을 충족시키기 위해 쓸모없는 사치성 사업을 벌여서 필리핀의 경제를 망쳤다. 특히 남편의 계엄령 선포 이후로는 누가 신경쓰든 말든 대놓고 명품들을 쓸어 담아갔다. 당연히 이멜다가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데 쓰이는 돈은 모두 국가재정에서 지출되었다.[4]
언제 쿠데타가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대신해 이멜다가 해외 정상들을 만나며 외교 사절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페르디난드는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한 충격으로 이멜다가 사치향락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당시 이멜다가 즐겼던 사치의 정도는 보카사 1세의 대관식[5]을 매일매일 행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후술할 사치 행각과 별개로 의외로 식생활에서는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실 근현대 독재자들이 다른 건 사치를 많이 부려도 유년기가 평범하면 식습관은 평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이한 건 아니다.
언제 쿠데타가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 때문에 자리를 비울 수 없었던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대통령을 대신해 이멜다가 해외 정상들을 만나며 외교 사절 역할을 수행하는 동안 페르디난드는 불륜을 저질렀으며, 이로 인한 충격으로 이멜다가 사치향락에 집착하게 되었다고 한다. 후술하겠지만, 당시 이멜다가 즐겼던 사치의 정도는 보카사 1세의 대관식[5]을 매일매일 행했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후술할 사치 행각과 별개로 의외로 식생활에서는 큰 논란을 일으키지 않았다. 사실 근현대 독재자들이 다른 건 사치를 많이 부려도 유년기가 평범하면 식습관은 평범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이한 건 아니다.
흔히 이멜다 마르코스가 사치스러운 사실은 알지만 얼마나 사치스러운지는 잘 모른다. 그래서 풍문으로 나도는 이야기나 그것들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 이야기들은 모두 사실이며, 심지어 대중적으로 알려진 정보가 진실보다 훨씬 축소된 내용일 정도다.
훗날 이멜다가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멜다가 살던 말라카냥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나 되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대통령궁을 방문한 영국의 사진기자 알렉스 보위는 대통령궁 지하에 있는 이멜다 마르코스의 옷장 속에 쌓여있는 세계 최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핸드백, 그리고 장신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한다.
아래는 마르코스 부부가 1986년 하와이로 망명했을 당시에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 목록이다.[6]




훗날 이멜다가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함께 하와이로 망명을 떠났을 때 이멜다가 살던 말라카냥궁 지하에는 가로 21m, 세로 21m나 되는 커다란 방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이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대통령궁을 방문한 영국의 사진기자 알렉스 보위는 대통령궁 지하에 있는 이멜다 마르코스의 옷장 속에 쌓여있는 세계 최일류 유명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최고급 의상과 구두, 핸드백, 그리고 장신구들을 보고 입을 다물 수 없었다고 한다.
아래는 마르코스 부부가 1986년 하와이로 망명했을 당시에 발견된 이멜다의 사치품 목록이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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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백 벌에 달하는 최고급 의상
- 최고가의 파티용 장갑 68켤레
- 각종 유명 브랜드의 팬티 3,500장
- 최고급 이브닝 가운 2,000벌
- 최고급 검은색 브래지어 500개에, 심지어 방탄이 가능한 브래지어까지 있었다.
- 최고급 가발 30개
- 아직 뜯지도 않은 스타킹 박스 200개
- 최고급을 자랑하는 수백 개의 보석상자. 그 중 한 보석에는 1만 9천 달러의 가격표가 붙은 보석도 발견되었다.
- 방 한쪽에는 최고급 신상 명품 가방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쌓여 있었다.
서랍 속에 보관되어 있는 청구서들을 조사한 결과, 이멜다는 오전에 100만 달러, 오후에는 200만 달러어치의 골동품을 사들였다고 하는 충격적인 사실도 드러났으며, 이멜다는 10만 7천 달러의 이브닝 가운을 구입하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이탈리아의 유명 디자이너 발렌티노에게는 실크 드레스 6벌을 한꺼번에 주문하기도 했다.
이멜다의 옷장에는 세계 각국의 드레스와 갖가지 색상의 의상들이 가득 차 있었으며,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가격표가 그대로 붙어있는 구찌 핸드백들이 선반 위에 가득 쌓여 있었다.
이멜다의 침대 옆에는 선반 가득하게 비디오 테이프들이 있었는데, 마닐라 영화제에 초청되어서 이멜다와 만난 적이 있던 미국의 배우 조지 해밀턴 주연의 <무적의 사나이 조>도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것들이 고작 한 방에서만 발견된 사치품들인데, 심지어 이것들은 망명지에 다 가져가는 것이 불가능해서 진짜 귀한 건 챙기고 남은 것들이었다.
- 이멜다가 살았던 말라카냥궁의 인테리어는 최고급이었는데, 말라카냥 궁의 바닥은 이탈리아산 대리석이며, 천장은 수정 샹들리에로 장식되었고, 욕실에는 도금이 아닌 100% 순금으로 만든 세면대가 있었다. 침실에는 황금으로 도금한 이멜다의 동상이 있었는데, 이멜다는 자신의 황금 동상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건물 안의 거의 모든 물건들은 최고급의 명품들로 채워져 있었다. 원래 있던 것을 1978~1979년에 대대적으로 리모델링하며 이렇게 되었고, 민주화 이후 필리핀 대통령들은 거의 모두 이 건물에서 숙식하는 것을 피할 정도라고 한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와 이멜다 마르코스가 살았던 말라카냥궁
- 필리핀 여행에서 유명한 관광코스인 코코넛 궁전이 있는데, 이 건물은 이멜다의 사치욕 때문에 만들어졌다. 1981년 코코넛 껍질을 파인애플이나 바나나 섬유로 건축 자재로 사용해서 만들어진 건축물로, 약 400억 정도를 들여 지었다. 필리핀을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만든 건물이었지만, 정작 이를 본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궁전이 너무 화려하게 지어졌다고 판단해서 코코넛 궁전에 체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마지막으로 말라까냥에서 마르코스 부부와의 국빈 만찬 때, 요한 바오로 2세는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를 무시하지 말라"고 마르코스 부부에게 설교했다고 한다.
코코넛 궁전 - 이멜다가 덥다고 바기오에 가 있을 때, 파티를 할 곳이 없다면서 "파티장을 지어달라"고 남편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에게 떼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지어진 곳이 현재까지 바기오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국제회의장인 '컨벤션센터' 다. 한술 더 떠서 그 건물이 다 지어지자 파티를 하는데, 설탕이 모자라자 군용 헬기로 설탕을 실어 날랐다고 한다. 헛소문이라는 설도 있었으나 결국에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런 식으로 약 1만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시설들을 무려 수십 개가 넘게 만들었다고 한다.
- 파티를 좋아해서 매일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성대한 연회와 수많은 파티, 그리고 특히 세계 굴지의 패션쇼는 빠지지 않고 참석했으며, 물론 갈 때마다 돈을 신나게 뿌려댔다고 한다.
- 파티 용도로 뉴욕에 별도의 아파트를 구입했고, 가구 인테리어 비용으로 그 1980년대에 약 150만 달러를 지출했다.
- 전설처럼 내려오는 에피소드 중에서 이른바 '치즈회항' 사건이 있다. 1970년대, 이탈리아 로마에서 마닐라로 돌아오던 필리핀 항공 여객기에 탑승한 이멜다가 비행 도중 갑자기 기장에게 로마로 돌아갈 것을 명령했는데, 그 이유가 황당하게도 "로마에서 치즈 사는 것을 깜박해서"였다고 한다.[12]
- 이멜다에게는 이른바 비틀스 스캔들이란 것도 있다. 1966년 한창 날리고 있던 비틀스가 서독과 일본, 그리고 필리핀을 도는 월드투어에 나섰는데[13] 이멜다는 필리핀에 도착한 비틀스를 자신의 개인 파티에 초청했다가 거절을 당하자 TV에 나와 “낙심했다”며 눈물을 흘렸고, 다음날 이멜다의 지지자들이 호텔과 공항으로 몰려들어 거세게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비틀스는 가까스로 공항에 도착했지만 이멜다의 지시로 에스컬레이터가 중지됐고, 경호요원 등은 자취를 감춘 상태로 간신히 필리핀에서 탈출했다. 비틀스는 이후 이 사건에 대해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14]
- 필리핀에서도 칸 영화제 같은 대규모 국제 영화제가 열려야 한다는 이유로 마닐라 국제영화제를 만들었다. 그리고 영화제가 열릴 건물이 필요해 4개월 안에 건물을 완공시키려고 4천명을 동원했다. 그러다 너무 빨리 짓는 바람에 건물 공사 도중 붕괴사고가 일어나 최소 169명이 사망하는 마닐라 필름 센터 붕괴사고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공사를 직행해 어찌저찌 영화제를 열긴 했다. 하지만 영화제는 얼마 안 가 망했다.
-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에 대해서 묻자, 이멜다는 "탐욕은 자선이다, 모든 이들에게 나눠 주려면 일단 탐욕스럽게 모아야 한다."라는 망언을 남겼다. 물론 그 자선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자선이라면 딱히 거짓말은 아니다.
어쨌든 이렇게 필리핀을 말아먹었으니, 1986년 민주화 혁명 이후로 필리핀에서 하와이로 사실상 쫓겨나다시피 했다. 당연히 해먹은 것만으로도 돌아올 자격이 없었지만, 1991년 필리핀 대법원의 사면을 받았고 이때를 기점으로 필리핀에 귀국한다. 1992년 대통령 선거에서 234만표의 득표하여 건재함을 과시하였고, 1993년에 부패혐의로 기소되었다가 1998년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이멜다 컬랙션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차렸는데, 기업가로도 대성공하여 영부인 시절 못지않게 돈을 무진장 끌어모았다. 거기에다가 딸을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로 당선시킨 덕택에 현재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2010년에 베니그노 아키노 3세[18]가 대통령이 되면서 부정축재한 재산에 대한 환수작업이 진행되었기에 재산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정의구현을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 혐의로 환수당한 재산을 제외한 마르코스 일가의 남은 재산 역시 어마어마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니, 필리핀의 부촌에 마르코스 일가 소유의 고급 저택을 3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다. 앞서 전술했듯 과거에 재산을 물쓰듯 써댄 이멜다가 사업을 하면서 전보다 재산을 더욱 불리고 있기도 하고, 마르코스 일가가 원래부터 필리핀의 오래된 명문가 중 하나로, 국회의원과 공무원으로 잘 나가고 있는 명문가이기 때문. 그리고 상술했듯이 이멜다는 해외 부동산이나 여러 사치품들을 사들이며 축재를 했을텐데, 이렇게 본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재산들은 사실상 환수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를 아는 필리핀 국민들은 아주 뒷목 잡을 지경이다.
2016년 총선에서도 일로코스 노르테 2구에 출마해서 99.0%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딸도 노르테 주지사에 여전히 당선되었고, 그녀의 아들도 부통령에 출마해서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해서 무난하게 부통령에 당선될듯 했지만 개표 중후반들어 여당인 자유당 레니 로브레도 후보에게 역전당하는 바람에 낙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증명했다.
그러다가 체포영장이 나와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한다.# 다만 당장 구속되지도 않을 것이고 항소를 할 것으로 보여 정의가 어떻게 구현될지는 오리무중이다.
2019년 7월 3일 이멜다의 구순 잔치에 참석한 일반 하객들 261명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생겼다. 일반인에게 제공된 음식은 VIP 손님의 것과 달랐다고 한다.# ## 환자들이 실려가고 있는데도 공연이 계속됐다고 알려졌다.#
2022년 5월 9일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쫓겨난 영부인’에서 ‘대통령의 어머니’로 돌아왔다.# 미국 변호사 출신 며느리와 함께 봉봉 정권의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다시 사치 행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93세 생일잔치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통령궁에서 열어버렸다.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호전되기도 했다.#
그녀는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이멜다 컬랙션이라는 패션 브랜드를 차렸는데, 기업가로도 대성공하여 영부인 시절 못지않게 돈을 무진장 끌어모았다. 거기에다가 딸을 일로코스 노르테 주지사로 당선시킨 덕택에 현재까지도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그래도 다행히 2010년에 베니그노 아키노 3세[18]가 대통령이 되면서 부정축재한 재산에 대한 환수작업이 진행되었기에 재산이 어느 정도는 줄어들었다.
그렇게 정의구현을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축재 혐의로 환수당한 재산을 제외한 마르코스 일가의 남은 재산 역시 어마어마하다. 어느 정도인가 하니, 필리핀의 부촌에 마르코스 일가 소유의 고급 저택을 3채나 가지고 있을 정도다. 앞서 전술했듯 과거에 재산을 물쓰듯 써댄 이멜다가 사업을 하면서 전보다 재산을 더욱 불리고 있기도 하고, 마르코스 일가가 원래부터 필리핀의 오래된 명문가 중 하나로, 국회의원과 공무원으로 잘 나가고 있는 명문가이기 때문. 그리고 상술했듯이 이멜다는 해외 부동산이나 여러 사치품들을 사들이며 축재를 했을텐데, 이렇게 본국의 행정력이 미치지 않는 재산들은 사실상 환수하기도 어렵다. 물론 이를 아는 필리핀 국민들은 아주 뒷목 잡을 지경이다.
2016년 총선에서도 일로코스 노르테 2구에 출마해서 99.0%의 득표율로 재선되었다. 뿐만 아니라 딸도 노르테 주지사에 여전히 당선되었고, 그녀의 아들도 부통령에 출마해서 선거직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해서 무난하게 부통령에 당선될듯 했지만 개표 중후반들어 여당인 자유당 레니 로브레도 후보에게 역전당하는 바람에 낙선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것은 증명했다.
그러다가 체포영장이 나와 정의가 구현되었다고 한다.# 다만 당장 구속되지도 않을 것이고 항소를 할 것으로 보여 정의가 어떻게 구현될지는 오리무중이다.
2019년 7월 3일 이멜다의 구순 잔치에 참석한 일반 하객들 261명이 식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사고가 생겼다. 일반인에게 제공된 음식은 VIP 손님의 것과 달랐다고 한다.# ## 환자들이 실려가고 있는데도 공연이 계속됐다고 알려졌다.#
2022년 5월 9일 아들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쫓겨난 영부인’에서 ‘대통령의 어머니’로 돌아왔다.# 미국 변호사 출신 며느리와 함께 봉봉 정권의 실세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아들이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다시 사치 행각을 이어가고 있는데, 93세 생일잔치를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대통령궁에서 열어버렸다. 이에 대해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호전되기도 했다.#
- 비틀즈가 의도치 않게 퍼스트 레이디 이멜다 마르코스를 모욕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참사가 일어난 적이 있다. 공적인 자리는 피하는 것을 원칙으로 했던 비틀즈의 매니저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비틀즈를 대신하여 대통령궁에서의 아침식사 초대를 정중하게 거절하자, 이멜다가 생방송으로 분노를 표출해 국민들이 분개하는 일이 있었다.[19] 더군다나 정부의 지시로 모든 경찰들이 보호를 거부하면서, 그들은 성난 국민들에게서 살아남아 필리핀을 탈출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결국 비틀즈 멤버들은 공연 수익까지 모두 필리핀 당국에 뺏기면서야 탈출할 수 있었다.# 이 일로 인해 비틀즈 멤버들은 큰 충격을 받아 월드 투어를 중단하고, 실험적인 음악 활동에만 집념했으며, 필리핀 투어 직후 나온 앨범이 바로 록의 역사를 바꿨다고 평가받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이다. 이 때문에 비틀즈 팬들 사이에서는 "이멜다 마르코스가 의도치 않게 세계 음악의 역사를 완전히 바꿔버렸다"는 농담도 종종 나온다.
[1] 스페인인 혼혈 집안이라서 그런지 필리핀인치고는 키가 굉장히 크다. 지금도 동남아인이나 중국인 남성 평균키(전부 160대)보다 훨씬 더 크며, 싱가포르인 남성(171㎝), 일본인 남성 평균키(172㎝)와 비슷하고 한국인 남성 평균키(174㎝)보다는 조금 작은 수준이다. 그치만 이제 90대 넘는 고령이 되고 나서 172㎝보다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2] 이멜다는 동양인 외모처럼 생겼으나 일본계+스페인계이다. 이멜다의 아버지는 스페인계지만 중국계의 피도 섞여 있다.[3] 근데 페르디난드도 필리핀인 치고는 키가 큰 편에 속한다. 지금도 필리핀인 평균키보다 크다.[4]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처럼 주변의 견제를 받지 않자 그녀의 욕망도 폭주한 것으로 보인다.[5] 여기에 든 돈이 2023년 환율로 환산하면 무려 약 1,300억 원에 달했다고 한다.[6] 1986년 3월 11일 동아일보 기사 중 일부.[7] 사실상 이멜다의 사치를 상징하는 물품이다.[8] 당시가 1980년대라는 것을 감안하면 1만 달러는 엄청난 금액이며, 지금도 필리핀인들에게는 4년제 대졸 신입사원들의 3년치 급여이기도 하다. 특히 필리핀 명문대 졸업자의 연봉이 한화로 310만원 정도로, 한국의 8분의 1쯤 된다.[A] 9.1 9.2 9.3 2013년 2월 3일 the Asian지 뉴스 중 일부[12] 참고로 마르코스 부부의 장녀인 아이미 마르코스는 이보다 한술 더 떴는데, 아이미 마르코스는 자녀를 필리핀에 두고 유럽을 여행할 때에 자녀들에게 모유를 수유하기 위해 아버지가 보낸 필리핀 항공의 특별 항공편을 모유 택배로 썼고, 이 때문에 필리핀 항공의 많은 비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어 유럽에 살고 있거나 유럽을 여행하던 많은 필리핀인들이 불평했다고 한다.[13] 당시 필리핀의 국제적 지위는 상당히 높은 편에 속했다.[14] https://news.v.daum.net/v/20181118060046559?f=m [15] 사실 이런 사례는 정치 후진국에서 매우 흔하다. 한국에서도 특정 정치인들 소유의 토지나 건물이 '단지 소유주가 권력자라는 이유로 재개발된 것이 아니냐'는 강한 의혹을 받는 논란이 여러 차례 있어 왔고, (특히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그 정점)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런데 필리핀은 오죽할까?[16] 1980년 7월 3일 경향신문 중 일부.[17] 1986년 4월 14일 동아일보 보도 중.[18] 마르코스 정권 하에서 살해당한 야당 정치인과 마르코스 독재정권을 끝장낸 여성 대통령 사이의 장남이다. 바꿔 말해 아키노 가문 자체가 마르코스 가문과 제대로 원수를 진 것.[19] 이 사실을 뒤늦게 안 폴 매카트니는 "국민들을 괴롭힌 독재자를 빡치게 했다는 게 너무 고소하다"라면서 이멜다를 조롱했다. 직설적인 성격의 존 레논은 아예 "그런 정신병동 같은 나라에는 다시는 가지 않을 거다"라고 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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