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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
재임기간 | 제23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
제27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 |
학력 | |
가족 | 배우자, 아들 윤형진, 딸 윤혜상[2] |
소속 정당 | |
경력 | 이기택 국회의원 비서 김재천 국회의원 보좌관 문희상 국회의원 보좌관 노무현 대통령 후보 홍보팀장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실행준비위원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 (참여정부) 제2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제1부속실장 (참여정부) 대통령비서실 연설기획비서관 (참여정부) 제6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 (참여정부)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 |
1961년 1월 10일 경상남도 진해시[3]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신고등학교,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번역 일을 하다가 1988년 통일민주당 국회의원이던 노무현의 보좌관으로 취직하며 노무현과 인연을 맺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노무현이 1993년 자서전 「여보 나 좀 도와줘」를 집필할 때 도움을 주며 노무현과의 관계가 더욱 돈독해졌다. 특히 글쓰는 데 재주가 있었을 뿐 아니라 사교성이 좋아서 노무현의 총애를 받았다.
1990년부터 민주당 이기택 전 의원의 비서로 일하다가 1997년부터는 한나라당 김재천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문희상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다 2001년 3월부터 노무현 캠프에 합류해 캠프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을 시작으로, 2003년 5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8월까지는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수행하는 수행비서 격인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8월까지는 제1부속실장과 연설기획비서관직을 겸임했다. 참고로 연설기획비서관 후임은 김경수. 2006년 8월에는 정태호의 후임으로 또다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 2007년 4월 천호선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퇴임 후에는 양정철, 권순욱 등과 함께 주기적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해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 집필 작업을 주로 담당하였다. 그러나 2009년 노무현의 서거로 관련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노무현 서거의 충격으로 3년 가까이를 폐인으로 살다가 그의 친구 문재인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문재인을 도왔다. 그 유명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가 윤태영의 작품이다.
2015년 장고를 깨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자신의 일화를 다룬 '바보 산을 옮기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당내경선에서는 문재인 대신 안희정을 지지했고, 안희정 캠프에서 TV토론을 총괄했다.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였으며,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취임사를 작성했다. 2017년 10월 전해철, 이광재와 함께 노무현재단 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직접적인 정치 활동 대신 노무현재단 관련 업무만 보고 있으며, 강연과 집필 등을 하고 있다.
2020년 12월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사퇴하자 후임자로 언론에서 잠시 거론됐으나 2020년 12월 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영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며 결과적으로 대통령비서실장 임명은 무산되었다.
1990년부터 민주당 이기택 전 의원의 비서로 일하다가 1997년부터는 한나라당 김재천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이후 2000년 새천년민주당에 입당해 문희상 전 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다 2001년 3월부터 노무현 캠프에 합류해 캠프의 핵심 인물로 활약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2003년 2월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을 시작으로, 2003년 5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청와대 대변인을 역임하였으며, 2004년 7월부터 2006년 8월까지는 대통령을 바로 옆에서 수행하는 수행비서 격인 청와대 제1부속실장을 역임했다. 2005년 11월부터 2006년 8월까지는 제1부속실장과 연설기획비서관직을 겸임했다. 참고로 연설기획비서관 후임은 김경수. 2006년 8월에는 정태호의 후임으로 또다시 청와대 대변인을 맡아 2007년 4월 천호선에게 자리를 물려줄 때까지 대변인으로 활약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회전문 인사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노무현 퇴임 후에는 양정철, 권순욱 등과 함께 주기적으로 봉하마을을 방문해 참여정부에 대한 기록 집필 작업을 주로 담당하였다. 그러나 2009년 노무현의 서거로 관련 작업은 중단되고 말았다.
노무현 서거의 충격으로 3년 가까이를 폐인으로 살다가 그의 친구 문재인이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자 문재인을 도왔다. 그 유명한 기회는 평등할 것입니다. 과정은 공정할 것입니다. 결과는 정의로울 것입니다가 윤태영의 작품이다.
2015년 장고를 깨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자신의 일화를 다룬 '바보 산을 옮기다'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2017년 제19대 대통령 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 당내경선에서는 문재인 대신 안희정을 지지했고, 안희정 캠프에서 TV토론을 총괄했다.
그러나 문재인이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결과에 승복하고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에 합류하였으며, 문재인이 대통령에 당선되자 취임사를 작성했다. 2017년 10월 전해철, 이광재와 함께 노무현재단 이사로 선임됐다.
이후 직접적인 정치 활동 대신 노무현재단 관련 업무만 보고 있으며, 강연과 집필 등을 하고 있다.
2020년 12월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사퇴하자 후임자로 언론에서 잠시 거론됐으나 2020년 12월 31일 문재인 전 대통령이 유영민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며 결과적으로 대통령비서실장 임명은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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