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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훈 |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유원은 1863년 9월 18일 전라도 전주부 소양면 신교리(현 전라북도 완주군 소양면 신교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천도교 신자로, 1919년 3월 2일 저녁 자신의 집에서 천도교인 김태경(金太京)으로부터 조선독립선언서 4매를 전달받은 후 그날 밤 같은 마을 이달수(李達洙), 유명선(柳明善), 양영화(梁永化), 그리고 전주군 용진면 공덕리에 거주하는 이완옥(李完玉) 등에게 각 1매씩을 배포하였다.
또한 유원은 민영진, 김태경(金太京), 서호순(徐鎬淳), 유선태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주읍내 도로 기타 요소 및 각 면에 배포하고, 기독교측과도 연락하여 거사를 계획하여 각기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며 교회 조직을 통하여 거사 준비를 진행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유원은 1919년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4년 6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유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또한 유원은 민영진, 김태경(金太京), 서호순(徐鎬淳), 유선태 등과 함께 독립선언서를 전주읍내 도로 기타 요소 및 각 면에 배포하고, 기독교측과도 연락하여 거사를 계획하여 각기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제작하며 교회 조직을 통하여 거사 준비를 진행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로 인해 유원은 1919년 5월 1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았다. 출옥 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다 1924년 6월 1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유원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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