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트(이집트 신화)
최근 수정 시각:
상징 | |
관장 | |
상징 | 세트 동물[2] |
숭배중심 | 옴보스, 아바리스 |
동일시되는 신 | |
가족 | |
고대 이집트에서 숭배하던 신들 중에서 가장 오래 전부터 믿던 신들 중 하나로, 이집트 선왕조 대부터 널리 숭배되었고 석기시대까지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고 한다.
아내는 누이인 네프티스이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신화상에서도 정력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지라 네이트, 타웨레트, 호레아, 다른 지역의 신이었던 아나트나 아스타르테 등도 배우자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수많은 자식들도 두었다. 아누비스가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이란 전승도 있고 그외에도 악어의 신 세베크, 역시 악어의 신인 마가, 전갈의 여신 세르케트, 늑대나 자칼 머리를 가진 전쟁과 죽음의 신 웨프와웨트 등이 그의 자식으로 여겨졌다.[4]
아나트와 아스타르테의 경우, 그가 호루스와 왕권을 두고 다투던 시기 혹은 호루스에게 패하고 라의 배에 타게 되었을 때에 네이트의 주선으로 라의 딸들이자 다른 지방의 여신들인 아나트와 아스타르테를 자신의 동맹 겸 또 다른 동반자들이자 아내들로 맞이했다. 라 본인도 자신이 세트를 지지함을 보여주고 세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신의 딸들과 결혼하는 걸 허락했다. 이는 가나안 셈족 출신이던 힉소스(이집트 제15왕조)가 하이집트를 지배하던 시절 세트를 바알과 동일시해서 숭배했던 영향으로 보인다.
위의 패배 뒤의 후일담으로 호루스에게 패하면서 빼앗은 왕위를 돌려준 세트는 이후 태양신인 라가 그를 거두어 하늘을 가르는 자신의 배에 태워주었다.[5] 이후 세트는 패배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가끔씩 고함을 내지르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천둥과 번개'라고 부르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숭배되고 재물을 받았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신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보물을 가진 데다가 본인도 재물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은 성격으로 해석되기에 부와 관련된 신으로도 여겨진다. 이러한 측면은 상단과 캐러밴, 여행의 신으로서 숭배받는 것으로도 나타났으며, 힘과 군사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집트 서쪽 사막의 신 하와 연관되기도 하고 중동과 아나톨리아의 신 바알(하다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튀폰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흔히 악신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후술하듯 세트 역시 엄연히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숭배받은 신이었다. 이집트 19왕조에는 이 세트에게서 유래된 세티라는 이름을 가진 파라오가 두 명(세티 1세, 세티 2세)이나 존재했고 同왕조의 람세스 2세의 부대 중엔 동명의 세트 사단이 있었으며, 카데시 전투 당시엔 프타 사단과 함께 히타이트군에 포위당한 람세스 2세를 구원하기도 했다.
여신전생 시리즈 등 일본의 대중 매체에선 사탄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세트라는 소재가 차용되지만 마땅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악마의 이미지에 세트가 영향을 줬다는 주장은 신화학에선 유명한 이야기이다.
폭풍[6], 사막, 불임, 혼돈을 상징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연의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는 질서와 조화를 사랑했고, 극도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세트는 고대 이집트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천칭을 맞추기 위한 혼돈을 상징하였다. 세트는 호루스와 대조되었고 호루스가 낮이라면 세트는 밤을, 호루스가 질서라면 세트는 혼돈을 상징하였다. 세트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필요한 신이었고, 질서 있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예를 들어 분노, 파괴, 기이함 등-을 지녔지만,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이었다. 세트는 전쟁이나 폭풍 같은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돈을 상징했지만, 본래 창조물을 파괴할 수 있는 노골적인 "악한" 혼돈을 상징하지 않았다.[7]
아내는 누이인 네프티스이지만 기본적으로 여자를 좋아하고 신화상에서도 정력적인 모습을 자주 보이는지라 네이트, 타웨레트, 호레아, 다른 지역의 신이었던 아나트나 아스타르테 등도 배우자로 여겨지며 이에 따라 수많은 자식들도 두었다. 아누비스가 세트와 네프티스의 아들이란 전승도 있고 그외에도 악어의 신 세베크, 역시 악어의 신인 마가, 전갈의 여신 세르케트, 늑대나 자칼 머리를 가진 전쟁과 죽음의 신 웨프와웨트 등이 그의 자식으로 여겨졌다.[4]
아나트와 아스타르테의 경우, 그가 호루스와 왕권을 두고 다투던 시기 혹은 호루스에게 패하고 라의 배에 타게 되었을 때에 네이트의 주선으로 라의 딸들이자 다른 지방의 여신들인 아나트와 아스타르테를 자신의 동맹 겸 또 다른 동반자들이자 아내들로 맞이했다. 라 본인도 자신이 세트를 지지함을 보여주고 세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자신의 딸들과 결혼하는 걸 허락했다. 이는 가나안 셈족 출신이던 힉소스(이집트 제15왕조)가 하이집트를 지배하던 시절 세트를 바알과 동일시해서 숭배했던 영향으로 보인다.
위의 패배 뒤의 후일담으로 호루스에게 패하면서 빼앗은 왕위를 돌려준 세트는 이후 태양신인 라가 그를 거두어 하늘을 가르는 자신의 배에 태워주었다.[5] 이후 세트는 패배의 분노를 참지 못해서 가끔씩 고함을 내지르곤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인간들이 '천둥과 번개'라고 부르는 것이다.
외국에서도 숭배되고 재물을 받았다는 이야기 때문인지 신들 중에서도 가장 많은 보물을 가진 데다가 본인도 재물을 좋아하고 욕심이 많은 성격으로 해석되기에 부와 관련된 신으로도 여겨진다. 이러한 측면은 상단과 캐러밴, 여행의 신으로서 숭배받는 것으로도 나타났으며, 힘과 군사를 상징하기도 했다. 이집트 서쪽 사막의 신 하와 연관되기도 하고 중동과 아나톨리아의 신 바알(하다드), 그리스 로마 신화의 튀폰과 동일시되기도 한다.
흔히 악신으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후술하듯 세트 역시 엄연히 이집트에서 공식적으로 숭배받은 신이었다. 이집트 19왕조에는 이 세트에게서 유래된 세티라는 이름을 가진 파라오가 두 명(세티 1세, 세티 2세)이나 존재했고 同왕조의 람세스 2세의 부대 중엔 동명의 세트 사단이 있었으며, 카데시 전투 당시엔 프타 사단과 함께 히타이트군에 포위당한 람세스 2세를 구원하기도 했다.
여신전생 시리즈 등 일본의 대중 매체에선 사탄이라는 이름의 유래가 세트라는 소재가 차용되지만 마땅한 근거는 없다. 그러나 기독교적 악마의 이미지에 세트가 영향을 줬다는 주장은 신화학에선 유명한 이야기이다.
폭풍[6], 사막, 불임, 혼돈을 상징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자연의 거칠고 예측할 수 없는 힘을 나타내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는 질서와 조화를 사랑했고, 극도로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세트는 고대 이집트의 이원론적인 세계관에서 천칭을 맞추기 위한 혼돈을 상징하였다. 세트는 호루스와 대조되었고 호루스가 낮이라면 세트는 밤을, 호루스가 질서라면 세트는 혼돈을 상징하였다. 세트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지만 필요한 신이었고, 질서 있는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예를 들어 분노, 파괴, 기이함 등-을 지녔지만, 그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신이었다. 세트는 전쟁이나 폭풍 같은 것으로 인해 발생하는 혼돈을 상징했지만, 본래 창조물을 파괴할 수 있는 노골적인 "악한" 혼돈을 상징하지 않았다.[7]
이름은 이집트 상형문자로 swtẖ이며, 이집트학에서는 흔히 세트, 셋, 세테슈, 수테흐 등으로 번역된다. 현대 언어학자들의 재구에 따르면 중왕국 시대까지는 수터히(ˈsuːtəç), 신왕국 후기에는 수터흐(ˈsuːtəχ), 제3중간기에는 세터흐(ˈseːtəχ) 정도로 발음됐으리라 추정된다고 한다. # 이름의 뜻이나 기원은 불명확하다. 고대 이집트인의 기록에서 추정컨대 '혼란을 부추기는 자', '황폐하게 하는 자', '주정꾼'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지만 이 또한 확실하진 않다.
고대 이집트에서 널리 숭상되었다. 사막과 이방인의 신이자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통했다. 그 외에 대상인 캐러반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으며 어둠, 난폭함, 전쟁, 혼란, 악, 바다, 태풍 등을 상징했다.[8] 사실 나쁜 재앙과 혼란보다는 로키처럼 트릭스터에 가까운 이미지였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악신으로만 여겨지는 불우한 신이지만 사실은 고대 이집트에서 크게 숭배받았다. 역대 파라오는 자신들이 호루스와 세트의 후계자라 자처했고 역대 파라오에게 강력함을 부여하는 신으로 지위가 높았는데, 파라오의 권능과 힘 자체가 세트에게 비유되고 아예 동일시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트의 위상이 추락하여 단순한 악신으로 간주받은 것은 이집트 제3중간기 때의 일로 외부세력의 침입과 정복 등으로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의 일이다.
신화 전반에 걸쳐서 그에게 붙는 가장 일반적인 수식어는 '가장 위대한 강력함'이다. 이러한 수식어와 신화 전반에 나타나는 묘사로 알 수 있듯이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전쟁의 신으로 태양신 라가 암흑의 땅을 통과할 때 암흑과 혼돈을 상징하는 뱀 아포피스를 물리쳐 태양신 라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허나 라이벌 호루스를 괴롭힐 때에 아포피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오리지널과 달리 라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역대 파라오는 자신이 세트 신의 강력함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꾸준히 어필했다. 제18왕조의 부조 중에서는 투트모세 3세가 세트 신에게 무예를 배우는 장면을 묘사했다.
세트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로 상이집트에서 숭상받았는데 눕트(그리스어로 불린 이름은 옴보스)가 세트 신앙의 중심지였다. 후에 힉소스 왕조가 들어서자 자신들의 전통신과 세트가 유사하다고 생각했는지 힉소스의 근거지인 하이집트의 델타 삼각지 일대에서 세트 신앙이 융성해졌다. 힉소스 왕조와 경쟁하던 제 17 왕조 및 제 18왕조도 전란의 와중에 전쟁신 세트의 가호를 바랐는지 여러 왕들이 신전을 지어서 바쳤다. 후에 제19왕조를 개창하는 람세스 1세가 바로 세트 신을 받드는 하이집트 출신의 신관 가문이다. 그 때문인지 람세스 1세의 뒤를 이은 왕의 이름이 세티 1세였다. 세티란 '세트 신이 세우신 왕'이란 뜻인데 이후 왕명에 세트의 이름을 넣은 왕이 심심치 않게 출현했다. 제19왕조 시대에는 사막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세페르메루의 지배자'라는 칭호가 더해졌으며 통상 도시와 오아시스의 지배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제20왕조가 시작되면서 현대인들이 흔히 기억하는 세트의 악마화, 혹은 추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조차 비교적 외곽에 있는 주요 지역에서는 여전히 세트를 '도시와 오아시스의 지배자'라 부르며 숭배했다. 그러나 벽화에서 세트의 자칼 머리를 파내고 토트의 따오기 머리를 새겨넣는 짓들을 후대에 많이 했다고 한다. 신화상으로 이시스 및 호루스와 대립되는 관계이기 때문에[9]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이시스에 대한 숭배가 유행하면서 악신의 성격이 강해졌고, 고대 로마에까지 이시스 신앙이 성행하면서 악신으로 널리 알려져 현대까지 이어졌다.
고대 이집트에서 널리 숭상되었다. 사막과 이방인의 신이자 모래바람을 일으키는 신으로 통했다. 그 외에 대상인 캐러반의 수호신으로 숭배되었으며 어둠, 난폭함, 전쟁, 혼란, 악, 바다, 태풍 등을 상징했다.[8] 사실 나쁜 재앙과 혼란보다는 로키처럼 트릭스터에 가까운 이미지였다고 한다. 현대에 와서는 악신으로만 여겨지는 불우한 신이지만 사실은 고대 이집트에서 크게 숭배받았다. 역대 파라오는 자신들이 호루스와 세트의 후계자라 자처했고 역대 파라오에게 강력함을 부여하는 신으로 지위가 높았는데, 파라오의 권능과 힘 자체가 세트에게 비유되고 아예 동일시되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세트의 위상이 추락하여 단순한 악신으로 간주받은 것은 이집트 제3중간기 때의 일로 외부세력의 침입과 정복 등으로 정세가 매우 혼란스러울 때의 일이다.
신화 전반에 걸쳐서 그에게 붙는 가장 일반적인 수식어는 '가장 위대한 강력함'이다. 이러한 수식어와 신화 전반에 나타나는 묘사로 알 수 있듯이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닌 전쟁의 신으로 태양신 라가 암흑의 땅을 통과할 때 암흑과 혼돈을 상징하는 뱀 아포피스를 물리쳐 태양신 라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허나 라이벌 호루스를 괴롭힐 때에 아포피스로 변신하기도 한다. 물론 이 경우 오리지널과 달리 라는 절대 건드리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역대 파라오는 자신이 세트 신의 강력함을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꾸준히 어필했다. 제18왕조의 부조 중에서는 투트모세 3세가 세트 신에게 무예를 배우는 장면을 묘사했다.
세트는 위에서 언급한 대로 주로 상이집트에서 숭상받았는데 눕트(그리스어로 불린 이름은 옴보스)가 세트 신앙의 중심지였다. 후에 힉소스 왕조가 들어서자 자신들의 전통신과 세트가 유사하다고 생각했는지 힉소스의 근거지인 하이집트의 델타 삼각지 일대에서 세트 신앙이 융성해졌다. 힉소스 왕조와 경쟁하던 제 17 왕조 및 제 18왕조도 전란의 와중에 전쟁신 세트의 가호를 바랐는지 여러 왕들이 신전을 지어서 바쳤다. 후에 제19왕조를 개창하는 람세스 1세가 바로 세트 신을 받드는 하이집트 출신의 신관 가문이다. 그 때문인지 람세스 1세의 뒤를 이은 왕의 이름이 세티 1세였다. 세티란 '세트 신이 세우신 왕'이란 뜻인데 이후 왕명에 세트의 이름을 넣은 왕이 심심치 않게 출현했다. 제19왕조 시대에는 사막으로 이어지는 관문인 '세페르메루의 지배자'라는 칭호가 더해졌으며 통상 도시와 오아시스의 지배자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제20왕조가 시작되면서 현대인들이 흔히 기억하는 세트의 악마화, 혹은 추락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조차 비교적 외곽에 있는 주요 지역에서는 여전히 세트를 '도시와 오아시스의 지배자'라 부르며 숭배했다. 그러나 벽화에서 세트의 자칼 머리를 파내고 토트의 따오기 머리를 새겨넣는 짓들을 후대에 많이 했다고 한다. 신화상으로 이시스 및 호루스와 대립되는 관계이기 때문에[9]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시대에 이시스에 대한 숭배가 유행하면서 악신의 성격이 강해졌고, 고대 로마에까지 이시스 신앙이 성행하면서 악신으로 널리 알려져 현대까지 이어졌다.
고대 신화에서 신이 타락하거나 심지어 사악해지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신이 한 성격에서 다른 성격으로 갑작스럽고 완전히 변한 경우는 거의 없다.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마아트를 소중히 여겼는데 마아트는 진리, 조화, 질서, 가장 중요한 균형이라는 주제를 포함하는 우주의 자연 질서였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자연 질서는 이원성의 개념에 의존하였고, 이집트인들은 모든 것에 정반대의 개념이 있었고 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트는 다른 여러 신들의 대척점에 서는 역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도록 부름받았다. 세트는 이미 긍정적인 속성에 기반한 확고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었고, 상이집트에서 그는 자비로운 신으로 숭배받았다. 세트는 역사 중간에 지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혼동 없이 그의 속성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미지가 변한 뒤 세트, 수텍으로도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신 세트는 혼돈, 폭풍, 지진, 가뭄 및 기타 정상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그의 이름은 보통 '파괴자 또는 혼란을 가져오는 자'로 번역된다. 그는 또한 '외국 땅, 사막, 붉은색'과도 관련이 있다. 사막을 뜻하는 이집트어는 dshrt로 붉은 곳을 의미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그는 3가지 신들의 대척점에 서있었다.
호루스 : 하늘과 낮의 신 vs 세트 : 땅과 밤의 신
오시리스 : 초목과 비옥한 토양(케메트)의 신 vs 세트 : 사막과 가뭄(데슈레트)의 신
라 : 질서와 빛의 신 vs 세트 : 혼돈과 어둠의 신
이러한 대립은 이집트 신념 체계의 이원론적 성격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선은 악 없이는 선할 수 없고, 따라서 '나쁜 사람'으로서의 세트의 역할은 그가 반대하는 '좋은 사람'의 역할만큼이나 중요했다.
육체적으로 세트는 다른 의인화된 이집트 신들과 닮았는데, 사람의 몸과 동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트의 경우에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가늘고 뾰족한 주둥이, 길고 직사각형의 귀,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가진 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신비한 동물은 샤로 알려지게 되었고 세트가 머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세트의 동물"이라고도 불렀다. 많은 학자들은 이 동물을 세트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동물이라 여긴다. 세트는 때때로 샤와 다른 동물의 완전한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멧돼지, 영양, 악어, 물고기, 나귀, 하마 등 가능한 동물들의 목록은 매우 길었고, 그중에는 멧돼지, 영양, 악어, 물고기, 나귀, 하마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혼돈의 뱀인 아펩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종종 뱀과 관련이 있었다.
현존하는 세트의 이미지를 보면 한 손에는 앙크, 다른 한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홀은 윗부분에 샤가 있고 밑부분이 갈라진 지팡이었다.
이국 땅의 신이었던 세트는 제2중간기 시대(제13~제17왕조)에 아시아 부족인 힉소스가 하이집트를 정복(제15왕조)할 때 들어왔다. 그들은 그를 폭풍의 신 바알과 연관시켰고, 그 기간 동안 그는 아나트와 아스타르테라는 두 여신의 배우자로 연결되었다. 세트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사탄을 표현하는데 영감을 준 것으로도 여겨지는데, 뱀 아펩과의 연관성은 에덴 동산의 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예수는 세트의 영역인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왕조 이전 시대에 고대 이집트는 "2개의 땅"으로 나뉘었다. 두 땅은 자연 나침반이 아닌 나일 강의 방향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따라서 상이집트는 남쪽에 있었고 하이집트는 북쪽에 있었다. 통일 후 한동안 두 지역은 고유한 상징과 의식, 심지어 신까지 유지하였다. 신화의 초기 버전에서 세트는 상이집트의 군주였고, 大 호루스는 하이집트를 통치하였다. 세트는 이집트 국경 너머의 사막과 황량한 땅의 지배자이기도 했다. 당시 세트는 자비로운 신으로 여겨져 그를 기리는 신전이 여러 곳이 있었다. 세트는 처음에는 금이 채굴되는 사막 땅 근처의 누브트라는 사막 정착촌에서 숭배되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황금 마을의 그분"이라고 불렸다.
그의 주요 숭배 센터는 음보스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신도들은 사제들에게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마음의 문제가 있을 때 세트의 이름을 불렀고, 사람의 참 같은 아뮬렛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이 신전은 고대에 폐허가 되었지만 고고학 발굴을 통해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이언으로 만든 물건 중 가장 큰 홀이 발견되었다. 이 홀은 아멘호테프 3세가 세트에게 바친 물건이었다.
사막의 신으로서 세트는 생존에 필수적인 오아시스를 보호하기도 했다. 또한 죽은 자들과 친구가 되어 사다리를 이용해 천국과 저승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세트와 라가 동맹이라는 생각은 세트의 역사에서 이 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트는 혼돈의 신 아펩에게서 라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라와 함께 태양선을 탔다고 믿었다. 아펩(아포피스)은 태양을 삼키려는 거대한 뱀으로 세트는 태양선의 뱃머리에 올라타 창으로 아펩과 싸우며 라를 지켰다. 일부 문헌에서는 아펩이 라에게 최면을 걸어 매일 밤 태양을 삼켰고, 세트가 창으로 뱀을 베어 태양을 다시 하늘로 내보냈다고 한다.
신전에 새겨진 세트와 다른 신들의 부조 신전에는 구왕국 시대와 중왕국 시대에 大 호루스와 세트는 각각 동등한 지위와 힘을 가진 상하 이집트의 신 통치자로 여겨졌다. 때때로 그들은 동맹으로 인식되어 호루스-세트라는 2개의 머리를 가진 페르소나를 구현하기도 했다.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길 수 없었기에 그들은 마지막까지 싸울 운명인 것처럼 보였고, 어찌 보면 이 비효율적인 투쟁은 마아트의 균형을 의인화한 것이었다.
호루스와 세트의 전투는 인류의 투쟁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이집트가 마침내 통일국가가 되었을 때 신화의 새로운 부분이 필요했다. 상이집트는 하이집트에게 권력의 자리를 빼앗겼고, 따라서 세트는 호루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해야 했다. 이때부터 세트는 자비롭고 예의 바른 신에서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사소한 질투와 사악한 행동에 사로잡힌 신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신화의 탄생은 세트의 사악한 본성이 완전히 드러나는 오시리스 신화가 널리 퍼지기 이전에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세트의 페르소나가 혼란스럽게 바뀌고 大 호루스와 小 호루스가 혼동되는 것을 설명한다. 세트는 大 호루스와 小 호루스에게 모두 패배하였다.
이집트 신화의 이원론적 특성으로 인해 세트는 어두운 인물로 그려졌지만 욕을 먹거나 미움을 받지 않고 "필요악"으로 여겨졌고, 세트의 타락으로 인해 세트는 이집트 신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세트가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를 경험한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 아마도 통일 이집트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을 것이고, 추종자들이 권력을 잃었을 때 '연좌제'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았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세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으며 여전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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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마아트를 소중히 여겼는데 마아트는 진리, 조화, 질서, 가장 중요한 균형이라는 주제를 포함하는 우주의 자연 질서였다. 균형을 이루기 위해 자연 질서는 이원성의 개념에 의존하였고, 이집트인들은 모든 것에 정반대의 개념이 있었고 신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세트는 다른 여러 신들의 대척점에 서는 역할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행하도록 부름받았다. 세트는 이미 긍정적인 속성에 기반한 확고한 페르소나를 가지고 있었고, 상이집트에서 그는 자비로운 신으로 숭배받았다. 세트는 역사 중간에 지지가 바뀌었기 때문에 혼동 없이 그의 속성을 완전히 설명하기는 어렵다. 이미지가 변한 뒤 세트, 수텍으로도 알려진 고대 이집트의 신 세트는 혼돈, 폭풍, 지진, 가뭄 및 기타 정상적인 질서를 파괴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그의 이름은 보통 '파괴자 또는 혼란을 가져오는 자'로 번역된다. 그는 또한 '외국 땅, 사막, 붉은색'과도 관련이 있다. 사막을 뜻하는 이집트어는 dshrt로 붉은 곳을 의미한다. 이러한 속성으로 인해 그는 3가지 신들의 대척점에 서있었다.
호루스 : 하늘과 낮의 신 vs 세트 : 땅과 밤의 신
오시리스 : 초목과 비옥한 토양(케메트)의 신 vs 세트 : 사막과 가뭄(데슈레트)의 신
라 : 질서와 빛의 신 vs 세트 : 혼돈과 어둠의 신
이러한 대립은 이집트 신념 체계의 이원론적 성격에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선은 악 없이는 선할 수 없고, 따라서 '나쁜 사람'으로서의 세트의 역할은 그가 반대하는 '좋은 사람'의 역할만큼이나 중요했다.
육체적으로 세트는 다른 의인화된 이집트 신들과 닮았는데, 사람의 몸과 동물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세트의 경우에는 동물이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다. 가늘고 뾰족한 주둥이, 길고 직사각형의 귀, 갈래로 갈라진 꼬리를 가진 개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 신비한 동물은 샤로 알려지게 되었고 세트가 머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세트의 동물"이라고도 불렀다. 많은 학자들은 이 동물을 세트를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상의 동물이라 여긴다. 세트는 때때로 샤와 다른 동물의 완전한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멧돼지, 영양, 악어, 물고기, 나귀, 하마 등 가능한 동물들의 목록은 매우 길었고, 그중에는 멧돼지, 영양, 악어, 물고기, 나귀, 하마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혼돈의 뱀인 아펩과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종종 뱀과 관련이 있었다.
현존하는 세트의 이미지를 보면 한 손에는 앙크, 다른 한 손에는 홀을 들고 있다. 홀은 윗부분에 샤가 있고 밑부분이 갈라진 지팡이었다.
이국 땅의 신이었던 세트는 제2중간기 시대(제13~제17왕조)에 아시아 부족인 힉소스가 하이집트를 정복(제15왕조)할 때 들어왔다. 그들은 그를 폭풍의 신 바알과 연관시켰고, 그 기간 동안 그는 아나트와 아스타르테라는 두 여신의 배우자로 연결되었다. 세트는 유대교와 기독교에서 사탄을 표현하는데 영감을 준 것으로도 여겨지는데, 뱀 아펩과의 연관성은 에덴 동산의 뱀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며, 예수는 세트의 영역인 사막에서 사탄의 유혹을 받았다.
왕조 이전 시대에 고대 이집트는 "2개의 땅"으로 나뉘었다. 두 땅은 자연 나침반이 아닌 나일 강의 방향에 따라 이름이 붙여졌다. 따라서 상이집트는 남쪽에 있었고 하이집트는 북쪽에 있었다. 통일 후 한동안 두 지역은 고유한 상징과 의식, 심지어 신까지 유지하였다. 신화의 초기 버전에서 세트는 상이집트의 군주였고, 大 호루스는 하이집트를 통치하였다. 세트는 이집트 국경 너머의 사막과 황량한 땅의 지배자이기도 했다. 당시 세트는 자비로운 신으로 여겨져 그를 기리는 신전이 여러 곳이 있었다. 세트는 처음에는 금이 채굴되는 사막 땅 근처의 누브트라는 사막 정착촌에서 숭배되었다. 그래서 그는 때때로 "황금 마을의 그분"이라고 불렸다.
그의 주요 숭배 센터는 음보스에 있었는데, 이곳에서 신도들은 사제들에게 일상생활의 여러 측면에 대한 도움을 요청했다. 그들은 마음의 문제가 있을 때 세트의 이름을 불렀고, 사람의 참 같은 아뮬렛에 그의 이름을 새겼다. 이 신전은 고대에 폐허가 되었지만 고고학 발굴을 통해 이집트에서 발견된 파이언으로 만든 물건 중 가장 큰 홀이 발견되었다. 이 홀은 아멘호테프 3세가 세트에게 바친 물건이었다.
사막의 신으로서 세트는 생존에 필수적인 오아시스를 보호하기도 했다. 또한 죽은 자들과 친구가 되어 사다리를 이용해 천국과 저승으로 올라갈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세트와 라가 동맹이라는 생각은 세트의 역사에서 이 시대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세트는 혼돈의 신 아펩에게서 라를 보호하기 위해 매일 라와 함께 태양선을 탔다고 믿었다. 아펩(아포피스)은 태양을 삼키려는 거대한 뱀으로 세트는 태양선의 뱃머리에 올라타 창으로 아펩과 싸우며 라를 지켰다. 일부 문헌에서는 아펩이 라에게 최면을 걸어 매일 밤 태양을 삼켰고, 세트가 창으로 뱀을 베어 태양을 다시 하늘로 내보냈다고 한다.
신전에 새겨진 세트와 다른 신들의 부조 신전에는 구왕국 시대와 중왕국 시대에 大 호루스와 세트는 각각 동등한 지위와 힘을 가진 상하 이집트의 신 통치자로 여겨졌다. 때때로 그들은 동맹으로 인식되어 호루스-세트라는 2개의 머리를 가진 페르소나를 구현하기도 했다. 서로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싸웠지만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이길 수 없었기에 그들은 마지막까지 싸울 운명인 것처럼 보였고, 어찌 보면 이 비효율적인 투쟁은 마아트의 균형을 의인화한 것이었다.
호루스와 세트의 전투는 인류의 투쟁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에 이집트가 마침내 통일국가가 되었을 때 신화의 새로운 부분이 필요했다. 상이집트는 하이집트에게 권력의 자리를 빼앗겼고, 따라서 세트는 호루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해야 했다. 이때부터 세트는 자비롭고 예의 바른 신에서 권력 쟁취를 위한 투쟁에서 사소한 질투와 사악한 행동에 사로잡힌 신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이 신화의 탄생은 세트의 사악한 본성이 완전히 드러나는 오시리스 신화가 널리 퍼지기 이전에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세트의 페르소나가 혼란스럽게 바뀌고 大 호루스와 小 호루스가 혼동되는 것을 설명한다. 세트는 大 호루스와 小 호루스에게 모두 패배하였다.
이집트 신화의 이원론적 특성으로 인해 세트는 어두운 인물로 그려졌지만 욕을 먹거나 미움을 받지 않고 "필요악"으로 여겨졌고, 세트의 타락으로 인해 세트는 이집트 신화의 가장 중요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세트가 갑작스러운 성격 변화를 경험한 정확한 이유는 불명이다. 아마도 통일 이집트의 역사를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가 필요했을 것이고, 추종자들이 권력을 잃었을 때 '연좌제'에 의해 유죄를 선고받았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세트는 이집트 신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계속했으며 여전히 흥미로운 연구 주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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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는 혼란과 무질서의 신(테 벨데, "세트")으로 묘사되기 때문에 북유럽 신화의 로키나 장난꾸러기로 악명 높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와 유사해 보일지도 모르나, 세트의 캐릭터성은 이보다 더 복잡하다. 로키와 헤르메스는 세트와 몇 가지 특성을 공유하나, 이 신비로운 이집트 신은 해석과 표현으로 가득 차 있으며, 이용 가능한 텍스트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혼란이 가중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트는 단순한 인물이 아니고, 그의 이야기와 숭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그의 이미지를 반영하여 진화한다. 그의 본성과 많은 측면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어 그의 성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든다. 그래서 그는 역동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신이다.
세트의 이미지는 1왕조 이전 이집트의 스콜피온 킹 메이스 헤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유물은 이집트 남부 유적지 히에라콘폴리스의 주요 매장지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유적지는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많은 양의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 특별한 의식용 무기는 최초의 나카다 시대(기원전 4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이집트 신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웨인라이트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세트가 존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나카다 2기 문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인라이트는 전갈왕의 철퇴 머리에 새겨진 이미지가 실제로는 세트와 비슷하지만 세트와는 구별되는 남성 다산의 신 민의 이미지였다고 믿는다. 분명 세트의 이미지는 포착하기 쉽지 않은 이미지였을 것이다. 일부 이집트 학자들은 세트가 "나카다 1기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카다의 공동묘지는 고대 지역인 누브트(그리스어 : 옴보스)에 위치해 있었고, 나중에 세트를 숭배하는 컬트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칭호 Nbwty 또는 '누브트의 하나'의 가능한 이유이다. 나카다는 상이집트의 5번째 노메에 위치했지만, 세트는 10번째, 11번째, 19번째 노메와 델타의 왕실 도시 피라메스에서도 숭배되었고, 이 신에 대한 숭배는 이집트 전역에서 그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상이집트의 수호신으로서 그는 와디 하마마트 입구에서 태어났고 하이집트의 호루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세트는 원래 사막의 신, 즉 "붉은 땅"의 신이었고, 붉은 땅의 신으로서 범람원 또는 "검은 땅"의 문명화되고 정주하는 삶을 반대하고 위협하여 폭력, 혼돈, 혼란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후기 이집트에서 그는 "범죄, 질병과 내란, 외세의 침략"의 형태로 표현되는 외세의 상징으로서 진화한다. 마아트(질서)의 보존이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여겨지고 외국인이 이스페트(혼돈)의 육체적 발현이자 선구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세트는 가장 두려움의 원천이자 불안정성의 힘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통합의 신이자 파라오의 전통적인 수호신인 호루스에 대항하는 존재였다. 그의 가문의 다른 신들, 즉 헬리오폴리스의 위대한 엔네아드도 그를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세트는 오시리스의 살인자이자 아펩의 정복자이자 태양신 라의 수호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세트가 영원히 기만적인 강탈자로 낙인 찍힌 것은 아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태양의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라라고 믿었는데, 이 여행은 매우 위험하였고, 혼돈의 뱀 아펩은 바크를 통째로 삼키겠다고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들 중 하나였다. 이에 맞서 세트는 라를 위험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태양선 뱃머리에 서서 싸웠다. 리칼라는 그의 영역인 사막이 "라의 우주 질서의 경계를 지키는 첫 번째 또는 마지막 전초 기지"이기 때문에 "오직 세트만이 아펩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세트와 아펩의 전투는 뇌우의 군주로서 세트의 역할을 드러내며" 사막과 폭풍의 신에서 뇌우의 신으로 그런 그의 역할을 더욱 확장한다. 혼돈의 신 세트는 신화 속 야수에 맞서서 질서의 파괴를 막는 일차적 방어자였고, 각 신화는 세트에 또 다른 층위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세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강력한 신 중 하나였다. 윌킨슨은 힘의 신이기도 한 세트가 무게가 4,500파운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홀을 휘둘렀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신왕국 이전의 관 텍스트에 이미 세트와 아펩의 전투가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테 벨데, "혼돈의 신 세트" 99) 특히 라가 세트를 '선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방식으로 끝나는 <경합>의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트가 종종 '라의 선택된 자' 또는 '라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리칼라 233) 세트는 한 신을 죽이는 자이자 다른 신을 보호하는 자, 혼돈의 선구자이자 질서의 수호자, 누트의 아들이자 라의 아들이라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다. 신화는 캐릭터의 모호함과 그의 역할에 대한 모순되지 않는 단일 설명을 고수하지 않는 반복적인 실패를 반영한다.
신화 속 인물로서 세트의 모순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에서 세트에 대한 숭배도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먼저 <경합>이 쓰이기 1700년 전, 그리고 나카다 문화가 확산된 지 불과 몇 세기 후인 제2왕조가 그러했다. 후대의 파라오 중 1명인 세트-페립센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호루스식 이름 세레크를 채택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세트식 이름 세레크를 선택하였다. 페립센이 사막의 신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혁명적인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그의 세레크가 왕조 이전 이집트에는 호루스가 통치하는 왕국과 세트를 통치하는 2개의 라이벌 왕국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며, 세트-페립세의 승천은 세트 왕국의 짧은 승리의 증거라고 추측하였다.(카스틸리오스 85) 던은 세트-페립센의 후계자 카세켐이 "반란을 진압하고 상왕국과 하왕국을 재통일"한 후 호루스 이름을 '두 명의 강력한 자가 나타났다'는 뜻의 카세켐위(Khasekhemwy)로 바꿨다고 자세히 설명하며 논쟁에 가세한다.
카세켐위의 세레크는 다시 1번 전통에서 벗어나 호루스와 세트의 도상을 모두 사용하여 새로운 조합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제3왕조의 첫 번째 왕인 조제르가 곧바로 전통적인 호루스라는 이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수호신으로서 세트의 통치는 짧았고, 이 초기의 "호루스와 [세트]의 라이벌 관계는 나중에 [세트]가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적이자 라이벌로 신화에 등장하게 된 원인임에 틀림없다.(체르니 32) 경쟁 왕국에 대한 이러한 추측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자들에 의해 선호도가 떨어졌지만, 세트는 파라오들이 호루스와 함께, 또는 심지어 호루스보다 더 숭배하기로 선택한 유서 깊은 신이었다는 강력한 증거로 남아있다.
그러나 왕실 세레크에서 세트의 존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레프로혼은 전통적인 호루스 매가 상형문자 '금'과 함께 등장하며 '황금 매'라는 뜻의 '황금 호루스 이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레프로혼에 따르면 제3왕조의 카바 왕이 처음 사용한 황금 호루스 이름은 신에 대한 보다 미묘한 호칭이라고 한다. 세트가 '황금'으로 표현된 것은 황금의 도시인 누브트 컬트 중심지와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고려할 때, 왕의 초기 칭호에서 호루스의 존재는 황금 호루스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세트의 존재와 균형을 이루었을 수 있다."(15-6) 혼돈의 신으로서의 지위와 반란의 역사를 고려할 때 세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권에 대한 그의 힘과 존재감은 지속되었다.
세트에 대한 왕실의 숭배는 제2중간기에 다시 한번 나타난다. 아포피스와 세케넨레의 다툼이라는 파피루스 기록에 따르면 제15왕조의 아포피스 왕은 "스스로 세트를 군주로 삼았으며, 세트를 제외한 온 땅에 있는 어떤 신도 섬기지 않았다"(골드바서 129)고 기록되어 있다. 아포피스는 이집트를 통치한 최초의 非이집트인 왕가인 힉소스 왕조의 일원이었다. 외국인인 그가 외국인의 신을 숭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힉소스는 또한 세트가 폭풍과 침략의 신이었던 자신들의 신 바알과 비슷하다고 여겼다.(알른 20장) 결국 힉소스는 제17왕조의 테반에 의해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지만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영향, 즉 세트 숭배는 계속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트는 신왕국 제19왕조와 제20왕조의 람세스 왕들의 수호신으로 다시 등장한다.(윌킨슨 197) 일부 람세스 왕들은 문자 그대로 '세트의 사람'을 의미하는 세티 1세와 세티 2세, '승리는 세트'라는 뜻을 가진 제20왕조 최초의 파라오 세크나크테와 같이 그를 부르는 이름을 채택했다. 또한 람세스 3세는 호루스와 세트가 그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모습을 묘사한 화강암 조각상으로 영예를 얻었는데, 이는 세트의 정치적 중요성을 암시한다. 이 이름과 조각상은 왕들이 이 신을 경건하게 숭배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트 숭배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는 람세스 2세(제19왕조) 통치 기간에 있었던 400년 비석의 건립이다.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타니스 시의 신전 유적에서 처음 발견한 이 화강암 비석은 이집트에 힉소스가 도착한 것을 기념한 것으로, 세트가 이집트를 통치한 400년을 기념하는 것이다.(가드너 165) 이 비석에는 람세스 2세가 '누트의 아들'로 묘사된 세트에게 포도주 2병을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2세가 힉소스의 옛 정치 수도였던 아바리스에 이 비석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힉소스의 종교적 관습이 토착민 출신 왕들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윌리스 버지 160)
세트 숭배는 제20왕조 이후 사라졌는데, 세트를 기리기 위한 새로운 신전이 세워지지 않았고 세트를 부르는 새로운 왕실 이름도 없었다. 테 벨데는 제3중간기 이집트가 아시리아인과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침략과 갈등이 증가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추측한다. 그 과정에서 '신성한 외국인'의 명성은 훼손되었고, '악마화'("혼돈의 신 셋", 138-40) 과정에서 외국 압제자들과 점점 더 연관되었다. 이 시점까지 세트는 모호한 인물이었다. 제26왕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터너에 따르면 "이집트에 대한 앗수르의 침공은 특히 테베의 약탈로 인해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세트]는 이제 패배하고 쫓겨난 외국 통치자로 등장하지만 힉소스와의 관계와는 달리 이제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다."(120) 세트는 제거되고, 거세되고, 혐오스러운 상징이 되었다. 그 결과 그의 이미지와 조각상은 파괴되었고 때로는 크눔이나 아문과 같은 다른 신을 기리기 위해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는데, 이 과정은 쇼르시와 윕스키의 연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터너 123-5) 세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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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의 이미지는 1왕조 이전 이집트의 스콜피온 킹 메이스 헤드에 처음 등장한다. 이 유물은 이집트 남부 유적지 히에라콘폴리스의 주요 매장지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유적지는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하고 많은 양의 증거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이 특별한 의식용 무기는 최초의 나카다 시대(기원전 4000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가장 오래된 이집트 신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웨인라이트에 따르면 이 지역에 세트가 존재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나카다 2기 문화에 등장하는 인물의 형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웨인라이트는 전갈왕의 철퇴 머리에 새겨진 이미지가 실제로는 세트와 비슷하지만 세트와는 구별되는 남성 다산의 신 민의 이미지였다고 믿는다. 분명 세트의 이미지는 포착하기 쉽지 않은 이미지였을 것이다. 일부 이집트 학자들은 세트가 "나카다 1기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신"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나카다의 공동묘지는 고대 지역인 누브트(그리스어 : 옴보스)에 위치해 있었고, 나중에 세트를 숭배하는 컬트 중심지가 되었다. 이것이 그의 칭호 Nbwty 또는 '누브트의 하나'의 가능한 이유이다. 나카다는 상이집트의 5번째 노메에 위치했지만, 세트는 10번째, 11번째, 19번째 노메와 델타의 왕실 도시 피라메스에서도 숭배되었고, 이 신에 대한 숭배는 이집트 전역에서 그의 중요성을 입증한다. 상이집트의 수호신으로서 그는 와디 하마마트 입구에서 태어났고 하이집트의 호루스에 대응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세트는 원래 사막의 신, 즉 "붉은 땅"의 신이었고, 붉은 땅의 신으로서 범람원 또는 "검은 땅"의 문명화되고 정주하는 삶을 반대하고 위협하여 폭력, 혼돈, 혼란의 신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그러나 후기 이집트에서 그는 "범죄, 질병과 내란, 외세의 침략"의 형태로 표현되는 외세의 상징으로서 진화한다. 마아트(질서)의 보존이 왕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로 여겨지고 외국인이 이스페트(혼돈)의 육체적 발현이자 선구자로 여겨지는 세상에서 세트는 가장 두려움의 원천이자 불안정성의 힘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는 통합의 신이자 파라오의 전통적인 수호신인 호루스에 대항하는 존재였다. 그의 가문의 다른 신들, 즉 헬리오폴리스의 위대한 엔네아드도 그를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세트는 오시리스의 살인자이자 아펩의 정복자이자 태양신 라의 수호자이기도 했기 때문에 세트가 영원히 기만적인 강탈자로 낙인 찍힌 것은 아니다. 이집트인들은 태양이 태양의 배를 타고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라라고 믿었는데, 이 여행은 매우 위험하였고, 혼돈의 뱀 아펩은 바크를 통째로 삼키겠다고 위협하는 가장 강력한 적들 중 하나였다. 이에 맞서 세트는 라를 위험에게서 보호하기 위해 태양선 뱃머리에 서서 싸웠다. 리칼라는 그의 영역인 사막이 "라의 우주 질서의 경계를 지키는 첫 번째 또는 마지막 전초 기지"이기 때문에 "오직 세트만이 아펩을 쓰러뜨릴 수 있을 만큼 강력하다"고 설명한다. 또한 "세트와 아펩의 전투는 뇌우의 군주로서 세트의 역할을 드러내며" 사막과 폭풍의 신에서 뇌우의 신으로 그런 그의 역할을 더욱 확장한다. 혼돈의 신 세트는 신화 속 야수에 맞서서 질서의 파괴를 막는 일차적 방어자였고, 각 신화는 세트에 또 다른 층위의 성격을 부여하였다.
세트는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강력한 신 중 하나였다. 윌킨슨은 힘의 신이기도 한 세트가 무게가 4,500파운드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 홀을 휘둘렀다고 덧붙인다. 그리고 신왕국 이전의 관 텍스트에 이미 세트와 아펩의 전투가 묘사되어 있기 때문에(테 벨데, "혼돈의 신 세트" 99) 특히 라가 세트를 '선정'하는 것으로 끝나는 방식으로 끝나는 <경합>의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세트가 종종 '라의 선택된 자' 또는 '라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가진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리칼라 233) 세트는 한 신을 죽이는 자이자 다른 신을 보호하는 자, 혼돈의 선구자이자 질서의 수호자, 누트의 아들이자 라의 아들이라는 다면성을 가지고 있다. 신화는 캐릭터의 모호함과 그의 역할에 대한 모순되지 않는 단일 설명을 고수하지 않는 반복적인 실패를 반영한다.
신화 속 인물로서 세트의 모순과 마찬가지로 고대 이집트에서 세트에 대한 숭배도 여러 단계의 변화를 거쳤다. 먼저 <경합>이 쓰이기 1700년 전, 그리고 나카다 문화가 확산된 지 불과 몇 세기 후인 제2왕조가 그러했다. 후대의 파라오 중 1명인 세트-페립센은 이미 수세기에 걸쳐 이어져온 호루스식 이름 세레크를 채택하는 전통을 무시하고 세트식 이름 세레크를 선택하였다. 페립센이 사막의 신을 자신의 수호신으로 선택한 것은 어쩌면 혁명적인 조치였을지도 모른다. 초기 이집트 학자들은 그의 세레크가 왕조 이전 이집트에는 호루스가 통치하는 왕국과 세트를 통치하는 2개의 라이벌 왕국이 존재했음을 증명하며, 세트-페립세의 승천은 세트 왕국의 짧은 승리의 증거라고 추측하였다.(카스틸리오스 85) 던은 세트-페립센의 후계자 카세켐이 "반란을 진압하고 상왕국과 하왕국을 재통일"한 후 호루스 이름을 '두 명의 강력한 자가 나타났다'는 뜻의 카세켐위(Khasekhemwy)로 바꿨다고 자세히 설명하며 논쟁에 가세한다.
카세켐위의 세레크는 다시 1번 전통에서 벗어나 호루스와 세트의 도상을 모두 사용하여 새로운 조합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제3왕조의 첫 번째 왕인 조제르가 곧바로 전통적인 호루스라는 이름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수호신으로서 세트의 통치는 짧았고, 이 초기의 "호루스와 [세트]의 라이벌 관계는 나중에 [세트]가 오시리스와 호루스의 적이자 라이벌로 신화에 등장하게 된 원인임에 틀림없다.(체르니 32) 경쟁 왕국에 대한 이러한 추측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자들에 의해 선호도가 떨어졌지만, 세트는 파라오들이 호루스와 함께, 또는 심지어 호루스보다 더 숭배하기로 선택한 유서 깊은 신이었다는 강력한 증거로 남아있다.
그러나 왕실 세레크에서 세트의 존재가 완전히 제거된 것은 아니었다. 레프로혼은 전통적인 호루스 매가 상형문자 '금'과 함께 등장하며 '황금 매'라는 뜻의 '황금 호루스 이름'을 예로 들어 설명한다. 레프로혼에 따르면 제3왕조의 카바 왕이 처음 사용한 황금 호루스 이름은 신에 대한 보다 미묘한 호칭이라고 한다. 세트가 '황금'으로 표현된 것은 황금의 도시인 누브트 컬트 중심지와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을 고려할 때, 왕의 초기 칭호에서 호루스의 존재는 황금 호루스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세트의 존재와 균형을 이루었을 수 있다."(15-6) 혼돈의 신으로서의 지위와 반란의 역사를 고려할 때 세트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권에 대한 그의 힘과 존재감은 지속되었다.
세트에 대한 왕실의 숭배는 제2중간기에 다시 한번 나타난다. 아포피스와 세케넨레의 다툼이라는 파피루스 기록에 따르면 제15왕조의 아포피스 왕은 "스스로 세트를 군주로 삼았으며, 세트를 제외한 온 땅에 있는 어떤 신도 섬기지 않았다"(골드바서 129)고 기록되어 있다. 아포피스는 이집트를 통치한 최초의 非이집트인 왕가인 힉소스 왕조의 일원이었다. 외국인인 그가 외국인의 신을 숭배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힉소스는 또한 세트가 폭풍과 침략의 신이었던 자신들의 신 바알과 비슷하다고 여겼다.(알른 20장) 결국 힉소스는 제17왕조의 테반에 의해 이집트에서 추방되었지만 그들의 문화적, 종교적 영향, 즉 세트 숭배는 계속되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세트는 신왕국 제19왕조와 제20왕조의 람세스 왕들의 수호신으로 다시 등장한다.(윌킨슨 197) 일부 람세스 왕들은 문자 그대로 '세트의 사람'을 의미하는 세티 1세와 세티 2세, '승리는 세트'라는 뜻을 가진 제20왕조 최초의 파라오 세크나크테와 같이 그를 부르는 이름을 채택했다. 또한 람세스 3세는 호루스와 세트가 그를 왕으로 즉위시키는 모습을 묘사한 화강암 조각상으로 영예를 얻었는데, 이는 세트의 정치적 중요성을 암시한다. 이 이름과 조각상은 왕들이 이 신을 경건하게 숭배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세트 숭배의 가장 주목할 만한 시기는 람세스 2세(제19왕조) 통치 기간에 있었던 400년 비석의 건립이다. 오귀스트 마리에트가 타니스 시의 신전 유적에서 처음 발견한 이 화강암 비석은 이집트에 힉소스가 도착한 것을 기념한 것으로, 세트가 이집트를 통치한 400년을 기념하는 것이다.(가드너 165) 이 비석에는 람세스 2세가 '누트의 아들'로 묘사된 세트에게 포도주 2병을 바치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 람세스 2세가 힉소스의 옛 정치 수도였던 아바리스에 이 비석을 세우라는 명령을 내렸다는 사실은 힉소스의 종교적 관습이 토착민 출신 왕들에 의해 계승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윌리스 버지 160)
세트 숭배는 제20왕조 이후 사라졌는데, 세트를 기리기 위한 새로운 신전이 세워지지 않았고 세트를 부르는 새로운 왕실 이름도 없었다. 테 벨데는 제3중간기 이집트가 아시리아인과 페르시아인을 비롯한 아시아와의 침략과 갈등이 증가하면서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더욱 부정적으로 변했다고 추측한다. 그 과정에서 '신성한 외국인'의 명성은 훼손되었고, '악마화'("혼돈의 신 셋", 138-40) 과정에서 외국 압제자들과 점점 더 연관되었다. 이 시점까지 세트는 모호한 인물이었다. 제26왕조에 이르러서는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터너에 따르면 "이집트에 대한 앗수르의 침공은 특히 테베의 약탈로 인해 주민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다. ...그[세트]는 이제 패배하고 쫓겨난 외국 통치자로 등장하지만 힉소스와의 관계와는 달리 이제 화해를 시도하지 않는다."(120) 세트는 제거되고, 거세되고, 혐오스러운 상징이 되었다. 그 결과 그의 이미지와 조각상은 파괴되었고 때로는 크눔이나 아문과 같은 다른 신을 기리기 위해 용도가 변경되기도 했는데, 이 과정은 쇼르시와 윕스키의 연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터너 123-5) 세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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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이집트의 주신 중 하나였으나, 상이집트와 하이집트 간의 전쟁에서 세트를 믿는 쪽이 패함에 따라 악신 계열로 흡수되었다는 설이 존재한다. 이는 호루스 신화나 오시리스와 라 간의 관계에서도 볼 수 있다. 이집트 역사상 무역이 중흥할 때는 라가, 농업이 중흥할 때는 오시리스가 신들의 왕으로 통했다.
실제 초기 이집트 왕조에서 세트를 추종하는 왕조와 호루스를 추종하는 세력의 대결이 있었던 것 같다. 이들간의 갈등은 이집트 통일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트와 호루스는 둘 다 이집트 제1왕조의 전신이 되는 상이집트의 나카다 문화(Naqada Culture)에서 널리 숭배하던 신들이었고, 상이집트의 나카다 문화가 하이집트를 정복하고 제1왕조를 세울 때 두 세력이 주도권을 두고 다툰 끝에 호루스 세력이 세트 세력을 이긴 것으로 추정된다. 나카다 3기(기원전 3200~기원전 3150) 당시 상이집트의 통합 과정에서 티니스, 나카다, 네켄이 서로 경쟁했고, 나카다가 제일 먼저 탈락했으며, 최종적으로 티니스 출신의 나르메르가 상이집트를 통일하고 하이집트를 정복하면서 이집트 제1왕조가 들어선다. 세트가 大 호루스에게 패배했다는 이집트 초기 왕조의 설화는 이집트 선왕조 당시 호루스 신앙의 중심지였던 네켄이 세트 신앙의 중심지인 나카다를 이긴 것과 연관된 듯하다.
초창기의 파라오들은 자신의 이름을 궁정을 본뜬 도형(세레크) 안에 새겨 넣고 그 위에 호루스 신을 새겼는데, 제2왕조의 세케미브 왕은 자신의 이름을 세트 페리브센으로 바꾸고 호루스를 세트 신으로 대체했다. 이후 제2왕조의 마지막 왕 카세켐위는 세트와 호루스 모두를 새겨 넣었고,[10] 제3왕조 시대에 이르면 호루스가 파라오를 상징하는 주신이 되었다고 추정된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세트 신앙은 유지되었으며 중요한 신이었고 힉소스 시기에 크게 숭상되다가 제18왕조에 세트 신앙이 중흥기를 맞게 된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대로이다.
극초기에는 大 호루스와 세트가 싸워서 大 호루스가 이기는 것이었지만, 제6왕조 시대에 접어들어 세트가 오시리스를 죽이고 오시리스의 아들인 小 호루스에게 복수당하는 설화로 바뀌었다.[11] 그러나 당시 세트는 악행을 저지르기는 해도 트릭스터였지 악신은 아니었고, 중왕국 말기(제12왕조)~제2중간기 무렵부터는 단순히 복수당하는 것이 아니라 호루스가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세트와 경쟁하는 것이 강조된다. 이들간의 다툼은 고대 이집트에서 지속적으로 반복되었던 이집트의 분열과 통일 과정을 은유하는 설화로 내려온다.
아무튼 오시리스의 형제신으로, 형인 오시리스가 왕이 되자 형을 시기하여[12][13] 오시리스를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기로 마음먹었다. 오시리스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 방법이 희한한데, 멋진 관을 하나 짜서는 이 관의 크기와 똑같은 몸을 지닌 신에게 관을 선물하겠다고 신들에게 내기를 걸었다. 당연히 오시리스의 수치에 딱 맞게 만든 관.[14] 오시리스가 들어가자마자 관 뚜껑을 닫아 못을 박은 다음에 바다에 버렸다. 이시스가 수소문해서 관이 흘러간 외국을 찾아가 오시리스의 시신을 이집트에 가져왔는데 세트가 그걸 발견하곤 시신을 뺏어 13토막내 이집트 곳곳에 숨겨놨다. 이시스는 다시 네프티스의 도움을 받아 시체 조각을 모아 부활시켰고 오시리스는 죽은자들의 세계로 가 그 곳의 신이 되었다.[15] 다만 오시리스의 일부분[16]을 나일강의 물고기가 먹어버렸다고. 이후 이시스와 오시리스의 아들인 호루스가 장성하여 세트와 대립한다. 세트는 호루스를 경계하여 그가 어렸을 때에도 독사로 변해[17] 그를 물어 독에 중독되게 만들어 죽여버리려고 시도했지만 번번이 전갈 여신 세르케트의 동생(혹은 아들)들인 일곱 전갈들에게 저지당했다.
세트와 호루스의 왕위 다툼 사이에서 신들은 어느 쪽을 편들지 못하고 갈팡질팡했다. 오시리스와 이시스 부부의 비서이자 호루스의 후견인인 지식과 시간의 신 토트만이 일관되게 호루스를 지지하고, 아포피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는 세트를 아낀 태양신 라만이 일관되게 세트를 지지했다.[18] 이에 답답해진 신들이 서둘러 다른 신들에게 해결해 달라고 하자 멘데스 지방을 관리하는 소와 양의 수호자인 바 신의 추천을 받은 사이스 지방의 관리자인 수렵의 여신 네이트가 모두가 좋은 방법을 알려주나[19] 이시스와의 알력으로 인해 오시리스 일가와 사이가 좋지 않던 라가 크게 반대를 해 원점으로 돌아가고[20]... 결국 서로 서로 큰 실수[21]를 저지르며 80여 년을 싸웠다.
둘의 다툼 중엔 성적인 일화도 있다. 이집트 제12왕조 세누스레트 2세가 자신의 피라미드 사원의 사제들을 수용하기 위해 세운 엘-라훈 마을에서 나온 이집트 중왕국 파피리스에 따르면, 세트는 주도권을 자신이 잡기 위해 호루스를 유혹해서 성관계를 가졌고, 호루스는 세트의 힘의 일부를 대가로 스스로 받아들였다.[22] 세트가 자신의 몸에 사정할 때 호루스는 세트가 모르게 허벅지 사이에 손을 놓아 정액을 낚아채고 이시스에게 상담을 하자[23] 이시스는 세트를 엿먹이기 위해 나일강에 뿌려 물고기의 밥이 되게 하고 세트가 좋아하는 상추에 몰래 자신의 정액을 뿌리고 먹이는 데 성공.[24] 세트가 신들을 모아놓고 호루스를 웃음거리로 만들고 자신이 더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 자신의 정액이 호루스의 뱃속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정액을 소환해보니 나일강 속에 있었다. 호루스가 똑같이 자신의 정액을 부르자 세트의 뱃속에서 답한 건 당연한 결과. 이 정액이 세트의 머리 위에서 원반을 만들었고 이 원반은 토트가 가져다가 자기 머리에 장식했다고 한다.
80년 간이나 지속된 싸움에 신들도 지쳐버렸고 결국 마지막 경쟁을 하기로 했는데, 돌로 만든 배로 누가 먼저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지 경주한 것. 호루스는 나무로 만든 배에 회반죽을 발라 돌로 만든 것처럼 꾸며서 진짜 돌로 만든 배를 몬 세트를 가볍게 이겼는데, 이제야 세트가 호루스를 인정해서 호루스의 승리로 일단락되었다. 트릭스터의 상징이었던 세트가 호루스에게 속아 넘어갔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듯.
다만 이 곳에서 더 이어져 신들이 또 방해를 해 결국 제대로 분노한 호루스가 네이트 여신에게 호소를 하고 네이트 여신이 저승의 오시리스에게 편지를 써서 이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바로 오시리스 당신 뿐이라고 편지를 보내자 오시리스가 이 편지를 보고 아들 호루스를 해치려는 자들에게 분노해 마지막으로 최후 통첩을 날리는데, "만일 나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호루스를 해치려 하고 그 아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높은 직책의 신이라도 지하세계로 오게 하겠다!"[25]라 하자 라는 겁에 질려 서둘러 오시리스의 편지를 신들에게 발표한다.
이에 호루스는 제 5대 신황으로 등극하고 이집트의 모든 땅을 지배하게 되었고 세트는 라가 세트의 힘을 높이 사 거두어들여 하늘에 거주하면서 태양의 항해를 돕는 자로서 새 직업을 얻는다.[26] 혹은 호루스와 세트가 이집트를 반 세기씩 번갈아가며 지배하게 되었다고도 한다. 이집트 에드푸 지방에 있는 호루스 신전에서 나온 신화에는 세트는 호루스의 창에 맞아 머리가 잘리나 그 영혼은 죽지 않고 호루스를 해치기 위해 거대한 붉은 하마로 변신하는데 성공하지만 호루스의 마지막 일격에 결국 최후를 맞는다.
이집트의 이중신 시스템은 2명의 신이 하나로 융합된 신격을 말하는데, 호루스-세트는 호루스와 세트가 하나로 융합된 신격을 가리킨다.# 호루스-세트의 다른 이름은 Seth-Antewy 또는 Antewy이다. 호루스-세트의 모습은 샴쌍둥이처럼 몸은 하나이고 호루스의 머리와 세트의 머리가 달려있는 신격으로 이원성을 표현하고 심장 차크라를 가리키며, 고대 상하 이집트 왕조간의 화해 및 결합(통일)을 상징하기도 하고, 이중성의 힘을 통합하는 마법사의 원형이기도 하다.(이원성의 한 예로 남녀가 있기에 이집트 섹스 마법의 주요신으로 보기도 한다.) 호루스와 세트가 융합한 호루스-세트는 2배의 힘을 가진 자라고도 불린다.
호루스가 빛이면 세트는 어둠이고, 호루스가 낮이면 세트는 밤이고, 호루스가 물질이면 세트는 스피릿이고, 호루스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세트는 동전의 뒷면이고, 호루스가 오아시스라면 세트는 사막이고, 호루스의 길을 따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면 반대작용인 세트와도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 호루스-세트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세트를 믿는 상이집트와 호루스를 믿는 하이집트의 투쟁 종료와 통일을 표현하는 신격으로 보기도 한다.
책에서 호루스-세트가 등장하는 곳은 대표적으로 2군데가 있고, 호루스-세트의 모습은 왕가의 계곡에 있는 이집트 제20왕조 람세스 6세의 무덤 벽화에서도 등장한다.
1. 사자의 서 180장
나는 내 욕망에 힘을 쏟고, 내 영적인 형태의 숨겨진 자질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내 변신은 이중신 호루스-세트입니다. 나는 투아트의 신들의 음식의 장이며 쿠스의 무덤 제물을 바칩니다.
2. 영원횡단의 서(THE BOOK OF TRAVERSING ETERNLTY) - 저승횡단의 서
당신은 타투의 신들의 집의 신전으로 날아가고, 당신은 아비도스의 땅 위로 비행을 하고, 호루스-세트의 집으로 여행하고, 당신은 UNNULTLT의 집에서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십시오.
호루스가 빛이면 세트는 어둠이고, 호루스가 낮이면 세트는 밤이고, 호루스가 물질이면 세트는 스피릿이고, 호루스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세트는 동전의 뒷면이고, 호루스가 오아시스라면 세트는 사막이고, 호루스의 길을 따라 세계와 상호작용하면 반대작용인 세트와도 상호작용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 호루스-세트는 서로 다른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세트를 믿는 상이집트와 호루스를 믿는 하이집트의 투쟁 종료와 통일을 표현하는 신격으로 보기도 한다.
책에서 호루스-세트가 등장하는 곳은 대표적으로 2군데가 있고, 호루스-세트의 모습은 왕가의 계곡에 있는 이집트 제20왕조 람세스 6세의 무덤 벽화에서도 등장한다.
1. 사자의 서 180장
나는 내 욕망에 힘을 쏟고, 내 영적인 형태의 숨겨진 자질로 발걸음을 내디디며, 내 변신은 이중신 호루스-세트입니다. 나는 투아트의 신들의 음식의 장이며 쿠스의 무덤 제물을 바칩니다.
2. 영원횡단의 서(THE BOOK OF TRAVERSING ETERNLTY) - 저승횡단의 서
당신은 타투의 신들의 집의 신전으로 날아가고, 당신은 아비도스의 땅 위로 비행을 하고, 호루스-세트의 집으로 여행하고, 당신은 UNNULTLT의 집에서 당신의 적들을 물리치십시오.
보통 세트를 상징하는 짐승, 일명 '샤'에는 땅돼지, 자칼, 페넥여우, 가젤, 당나귀, 하이에나, 하마 등이 있다고 하는데, 세트를 묘사한 이집트 미술에서 보면 거의 항상 인간의 몸에 개과 동물로 추정되는 동물의 머리를 한 신이다. 세트의 모티브가 된 짐승은 긴 주둥이에 네모난 귀, 갈라진 꼬리를 지녔는데, 어떤 동물을 바탕으로 했는지가 이집트학의 난제였다. 앞에서 언급된 동물들의 특징들을 합친 동물이라는 설, 상상의 동물을 바탕으로 했다는 설과 지금은 멸종한 개과를 바탕으로 했다는 설이 있다.
연구에 따르면 근방의 사막 부족이 사냥용으로 기르는 개의 한 종류를 바탕으로 했다는 얘기가 있다.[27] 특히 상상의 동물이라는 설이 그간 받아들여졌지만, 현재 들어와서는 맨 마지막의 설 역시 호응을 받는다. 실제로 그 부족에선 세트가 묘사된 그림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히 자신들의 개를 연상한다고. 더욱이 그들 부족은 사냥할 때 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 두 동물들은 사냥에 있어서 경쟁상대이자 조력자라는 묘한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집트학자 켄 모스는 세트의 상징이 수메르 문명 때부터 중동에서 가축화된 견종인 살루키로 추정했다.링크. 벽화를 보면 발 모양이 개와 비슷하며, 구부러진 주둥이나 몸매가 후술하는 것처럼 세트의 완전한 동물 형태와 흡사하고 그레이하운드를 연상시키는데다가, 살루키가 달릴 때에는 귀하고 꼬리가 수직 내지 대각선으로 휘날리는 것처럼 보여서 세트 동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살루키의 귀 자체는 길고 늘어진 편이지만 당시 사냥개들은 귀를 잘라 뾰족하게 만들어 세트의 귀처럼 위로 솟은 형태였음을 생각하면 이것도 앞뒤가 맞는다. 그에 대한 켄 모스의 논문은 여기.
호루스와 세트라는 이집트 신화 체계와 관련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살루키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EBS 살루키의 유래와 역사 살루키가 대대로 왕족들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종이며, 사냥[28]은 물론 군사훈련과 전쟁에서까지 왕이 데리고 다녔다는 면에서 세트와 연관성이 있다. 살루키라는 종이 사막에 특화된 사냥개이고, 사막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는 점을 볼때 사막의 신으로서의 세트를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살루키는 주인들이 사후세계에서도 함께하기 위해 미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아누비스에 대한 숭배와도 연관이 있다. 신화상에서 아누비스가 세트의 아들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오카피[29]라는 설도 대두되었다.


완전한 동물의 형태로 세트 신을 묘사할 때는 마치 그레이하운드처럼 표현했다. 현대에서는 어떤 동물을 모티브로 삼았는지 모른다.
연구에 따르면 근방의 사막 부족이 사냥용으로 기르는 개의 한 종류를 바탕으로 했다는 얘기가 있다.[27] 특히 상상의 동물이라는 설이 그간 받아들여졌지만, 현재 들어와서는 맨 마지막의 설 역시 호응을 받는다. 실제로 그 부족에선 세트가 묘사된 그림을 보면 너무나도 당연히 자신들의 개를 연상한다고. 더욱이 그들 부족은 사냥할 때 매를 이용하기도 하는데, 그 두 동물들은 사냥에 있어서 경쟁상대이자 조력자라는 묘한 자리를 차지한다.
같은 맥락에서 이집트학자 켄 모스는 세트의 상징이 수메르 문명 때부터 중동에서 가축화된 견종인 살루키로 추정했다.링크. 벽화를 보면 발 모양이 개와 비슷하며, 구부러진 주둥이나 몸매가 후술하는 것처럼 세트의 완전한 동물 형태와 흡사하고 그레이하운드를 연상시키는데다가, 살루키가 달릴 때에는 귀하고 꼬리가 수직 내지 대각선으로 휘날리는 것처럼 보여서 세트 동물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살루키의 귀 자체는 길고 늘어진 편이지만 당시 사냥개들은 귀를 잘라 뾰족하게 만들어 세트의 귀처럼 위로 솟은 형태였음을 생각하면 이것도 앞뒤가 맞는다. 그에 대한 켄 모스의 논문은 여기.
호루스와 세트라는 이집트 신화 체계와 관련있을지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살루키와 관련된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 EBS 살루키의 유래와 역사 살루키가 대대로 왕족들에게 특별한 총애를 받은 종이며, 사냥[28]은 물론 군사훈련과 전쟁에서까지 왕이 데리고 다녔다는 면에서 세트와 연관성이 있다. 살루키라는 종이 사막에 특화된 사냥개이고, 사막의 길잡이 역할도 한다는 점을 볼때 사막의 신으로서의 세트를 떠올리게 한다. 심지어 살루키는 주인들이 사후세계에서도 함께하기 위해 미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는 아누비스에 대한 숭배와도 연관이 있다. 신화상에서 아누비스가 세트의 아들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오카피[29]라는 설도 대두되었다.

완전한 동물의 형태로 세트 신을 묘사할 때는 마치 그레이하운드처럼 표현했다. 현대에서는 어떤 동물을 모티브로 삼았는지 모른다.
- 미이라왕 투탕(Tutenstein) - 세트
주요 빌런으로 등장하며 투탕이 가진 지팡이의 힘을 탐내 항상 투탕을 노린다. 고대 이집트에서 세트가 파라오들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생각하면 명백한 고증오류지만, 세트는 기독교가 이집트에 전파되는 과정에 기독교의 성모 마리아와 비슷한 행보를 보인 이시스의 대적자라는 이유로 기독교에서 세트를 사탄이랑 동일시했고 이게 오늘날까지 지속된 것이다. 지금도 고대 이집트를 간접적으로 다룰 때면 세트를 악신이나 고대의 악마처럼 묘사하는 경우가 종종 나온다.
- 박물관이 살아있다: 돌아온 카문라 - 세트
빌런인 카문라와 협력하는 악역 포지션. 박물관의 전시물이 아니라 세트 신전에서 마법으로 소환된다. 그런데 여러 벽화나 그림에서 나온 날씬하고 날렵한 체형에 날카롭고 무섭게 생긴 생김세의 모습과 다른데 일단 얼굴은 웃기고 귀엽게(...) 생겼으며 짜리몽땅한 작은 키에[30] 통통한 체형이다. 그래도 일단은 신이라서 전투력은 최강이지만 심히 개그 캐릭터다.
- 삼성전자의 마스코트 - Setti
세트를 모티브로 한것으로 추정된다. 이름에서도 이집트의 파라오 Seti와 철자가 거의 흡사하고, 마스코트의 형상이 자물쇠를 목에 건 "개"라는 점에서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다.
-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 세트
이집트 진영 주신 중 한 명으로 등장. 땅돼지의 머리를 하고 있으며, 보병에 보너스를 준다. 초창기에는 로키와 더불어 사기로 악명높았다.
- 유희왕 - 카이바 세토
동생을 제외한 모든 인물에게 비정상적으로 냉혈한이고 이기기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는 면모를 보이며 강력한 힘으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전술을 즐겨 사용하는 등 세트신의 성격에서 많은 부분을 모티브로 한 모습이 보인다. 다만 작가가 캐릭터를 창조할때 그냥 세트신이 떠올라서 대충 지은 이름이라 의도가 아닌데 이런 캐릭터가 될줄 꿈에도 몰랐다고 할 정도로, 기묘한 운명을 타고난 캐릭터. 또한 카이바가 사용한 삼환신인 오벨리스크의 거신병은 다른 삼환신(오시리스/라)과 달리 뜬금없이 첨탑인 오벨리스크가 들어갔지만, 파괴신이라는 수식어, 오시리스(아템)의 대적자라는 점을 고려하면 세트 신을 상징하는 몬스터로 추정된다.
- 이집트에서 보물찾기 - 세트
이집트 편의 학습페이지에서 설명되는데, 여기서는 흰 피부에 붉은 머리카락을 갖고 있어 사악한 존재로 인식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 툼 레이더 구작 시리즈 4 - 세트
최종보스로 등장하여 직-간접적으로 라라를 방해한다.
[1] 아래 사진에선 어두운 피부색이지만, 종종 흰 피부와 붉은 머리칼로 표현되기도 한다.[2] '샤'라고도 부른다. 세트가 딱히 특정 동물의 모습이 아니라 여러 동물들의 모습이 짬뽕된 모습이기 때문에 세트 동물 역시 그냥 '세트 동물'이라는 다소 희한한 이름으로 부른다. 긴 주둥이에 네모난 귀, 갈라진 꼬리를 지녔다. 다만 살루키를 베이스로 했다는 주장 때문에 사냥개를 상징으로 쓰는 경우도 간간히 있다.[3] 참고로 이집트 신화에는 악신이 없다. 세트 또한 여러 악행들을 저질렀지만, 그렇다고 그를 악신이라 치부하지는 않는다.[4] 세베크와 세르케트는 아버지가 크눔이라고도 여겨졌다. 단 아버지가 어느 쪽이건 어머니는 공통적으로 네이트.[5] 세트가 호루스에 대항해 왕권을 주장했을 때, 자신은 라의 배에 타서 몽둥이를 휘두르며 아포피스를 무찔렀으니 나의 공훈을 봐서라도 내가 왕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6] 사물을 부수고 변화시킴을 나타냈다. 거대하고 소용돌이치는 토네이도 같은 폭풍을 "세트의 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7] 해당 역할은 아펩의 영역이었다. 세트가 이러한 혼돈과 동일시되기 시작한 것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세트를 튀폰과 동일시하면서부터였다.[8] 호루스와의 전투에서 패배한 후에는, 지하세계로 떨어져 죽음을 관장하게 되었다고 한다.[9] 고대 이집트인들은 세트가 붉은 땅(사막)을, 호루스가 검은 땅(비옥한 땅)을 다스린다고 생각했다.[10] 카세켐위는 분열되었던 이집트를 재통일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인물인데, 카세켐위는 호루스와 세트를 자신의 상징에 모두 넣는 등 두 세력간의 화해에 진력했던 것으로 보인다.[11] 오시리스 신화는 제5왕조 말기부터 대략 틀이 잡힌 것으로 추정된다.[12] 보통은 단순히 오시리스가 가진 왕권을 탐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오시리스에게 자신의 힘과 공로를 지속적으로 모욕과 무시당한 데에 분노해서라는 설, 이시스를 사랑했기 때문에 오시리스를 질투했다는 설이나 아내 네프티스가 오시리스와 불륜을 저지른 것을 알고 분노해서라는 설도 있다.[13] 왕권에 대한 욕심이 매우 강해 아직 자궁에 있을 때도 형보다 먼저 태어나려고 어머니 누트의 산도를 통하지 않고 자궁을 부수고 옆구리에서 태어나기까지 했으나 결국 오시리스보다 먼저 태어나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다.[14]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아무리 멋지게 생겼어도 관을 선물하겠다니 딱 봐도 수상하지만(...) 사후세계를 중요하게 여긴 고대 이집트 문화에서는 좋은 관을 갖는 것도 중요했다는 말이 있다. 여담으로 세트가 오시리스의 신체 치수를 잴 때 직접 잰 것이 아니라 그림자의 비율을 이용했다고도 한다. 고대 이집트는 당대에 손꼽히는 수학 강국이었던 만큼 그것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15] 부활했는데 왜 죽은자들의 세계를 갔는가 하냐면, 고대 이집트에서 말하는 죽은자들의 세계(서쪽 세계)는 내세와 다른 개념이다. 현세에서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죽은자들의 세계로 가 재판을 받고 내세로 들어가고, 재판의 결과에 따라 영혼이 이승을 영원히 떠돌던가 아니면 천국으로 들어가 다시 이승세계에서 부활할 수 있게 된다. 오시리스는 그 재판을 담당하는 신이 된다.[16] 성기, 혹은 턱.[17] 혹은 전갈로 변하거나 독사나 전갈을 보냈다고도 한다[18] 이 경쟁에서 세트도 바보 같은 짓을 했지만, 호루스는 패륜을 저질렀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트와 호루스가 오래 잠수하기 내기 중에 세트가 이시스의 작살에 맞았는데, 그가 이시스에게 형제간의 정을 호소하여 마음이 약해진 이시스가 작살을 뽑았다. 이것을 보고 호루스가 화가 나서 어머니의 머리를 잘랐다고. 나중에 자신이 되살리거나 다른 신의 도움으로 소의 머리를 가진 채 부활했다고 한다. 다만 맹성렬 저서 오시리스의 죽음과 부활에서는 어머니 이시스를 수급(首扱)했다거나 겁탈(劫奪)했다는 말은 고대 이집트의 정통문헌에서는 등장하지 않고, 그 당시나 현대 이집트학 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의견이라고. 위작의 가능성이 있다. 요즘에 나오는 신화 관련 책에선 이시스의 왕관을 처서 땅에 떨어트렸다는 표현으로 바뀌어서 나온다. 주류 학계의 의견도 그쪽으로 기울고 있고...... 왕관을 땅에 떨어트림은 하극상이란 의미가 크다.[19] 호루스는 전대 왕 오시리스의 아들이니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대신 세트는 여자와 재물을 좋아하니까 그에게 많은 재물과 미녀들인 라의 딸들을 선물로 주자고 의견을 낸다. 이에 모든 신들이 기뻐하며 찬성을 하지만...[20] 라는 세트가 패배한 후에 위로 차원에서 자신의 두 딸을 그와 결혼시켰다고 하지만 이 때에 네이트의 말을 따라 자기 딸들을 세트에게 보내는 것 자체는 허용했고 실제로 성사시켰다는 전승도 있다. 다만 호루스를 왕으로 인정하는 걸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21] 세트는 호루스의 두 눈을 멀게 만들고, 호루스는 세트의 고환을 손상시켰다... 서로의 알을 망가뜨렸다[22] 흔히 강간당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세트가 먼저 유혹한 건 맞지만 호루스도 나름의 꿍꿍이속을 가지고 합의해서 관계를 가진 것이 맞다. 그러나 호루스는 자신이 아래로 갔던 것이 불만이었는지 다 끝나고 나서 이시스에게 자신이 강간당한 듯한 뉘앙스로 말한 것. 고대 이집트는 고대 그리스처럼 연상이 관계의 주도권을 쥐는 게 원칙이었는데, 이는 상대에 대한 지배력을 뜻하기도 했기 때문이다.[23] 판본에 따라서는 몸속에 정액이 들어가서 괴로워했다고도 한다.[24] 고대 이집트에서 상추는 음경을 상징하기도 했다. 남성의 성과 정욕, 다산의 신 민의 상징으로, 상추의 줄기를 자르면 유액이 나오는데 이를 정액과 동일시했다.[25] 처음에는 호루스의 권위를 왜 인정하지 않느냐며 이승의 신에게 따지자 라가 여기에 오만하다고 답장을 보내자 오시리스가 다시 사과는 하겠는데 이걸로 끌면 더 빨리 저승에서 보게 만들겠다며 협박했다는 이야기도 있다.[26] 항해를 하는데는 항상 아포피스를 만나게 되는데 이 아포피스는 너무나 강해서 가끔 라도 먹혀버릴 정도로 강력했다고 한다.[27] 이집트 미술은 현실의 물상을 고도로 스타일화하여 묘사하는 것이 특징이라, 실물(원본)을 알고 보면 쉽게 이해가 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원형을 짐작하기가 어렵다. 비유하자면 1000년 뒤 사람이 미키 마우스의 얼굴을 보고 쥐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까?[28] 이 다큐멘터리에서, 사냥 시 살루키와 매를 대동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이 역시 세트와 호루스의 경쟁-협력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29] 생긴 게 가장 닮았다.[30] 심지어 세트 본인말로는 자칼 신들 중에서 자신이 제일 큰 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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