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류
스미스소니언 선정 미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인물들 | ||||||||||||||||||||||||
[ 펼치기 · 접기 ]
| ||||||||||||||||||||||||
빌리 더 키드 Billy The Kid | |
![]() | |
본명 | |
이명 | 윌리엄 H. 보니 주니어[A] William H. Bonney Jr. |
출생 | |
사망 | |
뉴멕시코 준주 포트섬너 | |
직업 | 소도둑, 말도둑, 노름꾼, 무법자, 카우보이 |
신체 | |
서부개척시대였던 1859년에 아일랜드계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드린 후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15세가 되던 해에 처음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탈옥에 성공했고 이후 경찰과 보안관들이 체포하려고 많은 애를 썼으나 사망할 때까지 잡히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877년 뉴멕시코주 링컨 카운티의 존 턴스톨이라는 인물의 밑에 들어가 존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는데 바로 경쟁자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존 턴스톨의 상점은 승승장구하였으나 존의 사업을 방해하는 두 사람, 즉 10년 전부터 링컨 카운티의 상권을 주름잡던 로런스 머피, 제임스 돌런이 바로 눈엣가시였다. 물론 그 두 사람도 존 턴스톨을 탐탁지 않아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1878년 2월 18일에 마을 보안관 윌리엄 브레이디에게 뇌물을 줘서 상거래 문란 혐의로 존 턴스톨을 체포하여 제거하고자 했는데 이때 존 턴스톨이 체포 과정에서 보안관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자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그리고 여기서 빌리 더 키드가 역사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곧바로 존 턴스톨이 고용한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그의 복수를 결심해 보안관은 물론 로런스 머피, 제임스 돌런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행동을 시작했는데 특히 보안관 윌리엄 브레이디와의 혈투는 역사 속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브레이디와 머피, 돌런을 모두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때문에 정부 당국에서 체포에 나서자 동료들과 함께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이때 내걸린 현상금은 1천 달러였다. 현상금을 쟁취하기 위해 보안관 두 명이 달려들었으나 맨몸으로 이 둘을 제압하고 탈출하였고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그의 명성은 올라갔고 그 누구도 그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총 21명을 죽였다. 참고로 멕시코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외한 숫자로 그들을 넣으면 배로 올라간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살인과 강도짓, 경호원 일을 하면서 삶을 연명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9]이라는 바텐더와 친해졌지만 얼마 안 가 팻 개릿이 보안관으로 뽑히자 개릿에게 쫓기다가 1880년 12월 붙잡혔다.
개릿에게 붙잡힌 지 4개월 후인 1881년 4월 18일 탈옥에 성공하고 이것이 뉴욕 타임스에 실려 유명해졌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14일 결국 그를 체포했던 팻 개릿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 또한 의견이 분분한데 실은 탈옥에 성공해 숨어지냈다는 설이 있다.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877년 뉴멕시코주 링컨 카운티의 존 턴스톨이라는 인물의 밑에 들어가 존의 사업을 도와주는 일을 하였는데 바로 경쟁자들을 처단하는 것이었다. 존 턴스톨의 상점은 승승장구하였으나 존의 사업을 방해하는 두 사람, 즉 10년 전부터 링컨 카운티의 상권을 주름잡던 로런스 머피, 제임스 돌런이 바로 눈엣가시였다. 물론 그 두 사람도 존 턴스톨을 탐탁지 않아했다. 실제로 두 사람은 1878년 2월 18일에 마을 보안관 윌리엄 브레이디에게 뇌물을 줘서 상거래 문란 혐의로 존 턴스톨을 체포하여 제거하고자 했는데 이때 존 턴스톨이 체포 과정에서 보안관이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두자 분위기가 묘하게 흘렀다. 그리고 여기서 빌리 더 키드가 역사에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곧바로 존 턴스톨이 고용한 다른 총잡이들과 함께 그의 복수를 결심해 보안관은 물론 로런스 머피, 제임스 돌런을 제거하기로 마음 먹고 행동을 시작했는데 특히 보안관 윌리엄 브레이디와의 혈투는 역사 속에 남을 정도로 치열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국 브레이디와 머피, 돌런을 모두 사살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이 때문에 정부 당국에서 체포에 나서자 동료들과 함께 또다시 떠돌이 생활을 했는데 이때 내걸린 현상금은 1천 달러였다. 현상금을 쟁취하기 위해 보안관 두 명이 달려들었으나 맨몸으로 이 둘을 제압하고 탈출하였고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지자 그의 명성은 올라갔고 그 누구도 그를 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사망할 때까지 총 21명을 죽였다. 참고로 멕시코인, 아메리카 원주민을 제외한 숫자로 그들을 넣으면 배로 올라간다는 후문이 돌기도 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떠돌면서 살인과 강도짓, 경호원 일을 하면서 삶을 연명했는데 그러던 와중에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9]이라는 바텐더와 친해졌지만 얼마 안 가 팻 개릿이 보안관으로 뽑히자 개릿에게 쫓기다가 1880년 12월 붙잡혔다.
개릿에게 붙잡힌 지 4개월 후인 1881년 4월 18일 탈옥에 성공하고 이것이 뉴욕 타임스에 실려 유명해졌지만 그로부터 3개월 후인 7월 14일 결국 그를 체포했던 팻 개릿의 총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 또한 의견이 분분한데 실은 탈옥에 성공해 숨어지냈다는 설이 있다.
Truth and History.
진실과 경력.
21 Men.
21명(을 죽인)
The Boy Bandit King
소년 악당왕.
He Died As He Lived
그따구로 살더니 그따구로 죽은
William H. Bonney "Billy the Kid"
윌리엄 H. 보니 "빌리 더 키드"
위 내용과 같은 묘비가 세워졌다고 잘못 알려졌다.
우선 빌리 더 키드, 아니 윌리엄 매카티의 이야기는 살이 굉장히 많이 붙은 이야기다.
- 윌리엄이 처음 범죄를 일으킨 것은 15세였던 1875년 9월에 세탁소에서 옷과 총을 훔치다가 보안관들에게 체포된 것이다. 이 건으로 감옥에 들어갔으나 탈옥에 성공했다.
- 얼마 지나지 않아 뉴멕시코 주지사로 부임한 루 윌리스가 링컨 카운티에서 벌어진 사건의 주모자들을 모두 사면해준다는 발표를 했다. 이때 윌리엄 매카티는 윌리스에게 자수의 편지를 보냈고 윌리스도 그를 사면해 주려고 했으나 지방검사가 주지사에게는 그럴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그에게 사형을 구형했으며 판사도 이를 받아들이면서 사형이 선고되었다.
![]() |
팻 개릿(Patrick Floyd Jarvis Garrett) |
- 그가 총 21명을 죽였다고 하지만 이와 반대로 실제 살해한 수는 그 절반에 못 미친다. 혼자 살해한 것이 4명, 도움을 받아 살해한 것이 5명이다. 물론 9명을 살해한 것만 해도 죄질이 매우 나쁜 흉악범이다. 이렇게 된 건 그의 악명이 널리 퍼지면서 살인을 다 그에게 뒤집어 씌운 것이란 주장이 있다.
- 민간설화에는 나긋나긋한 성격의 의적으로 표현되지만 근거는 없으며 오히려 비정한 미치광이였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는 영화 '영건'에서 잘 묘사되는데 자신과 뜻을 달리한 친구를 그 자리에서 쏴 죽였다.
- 실제 그의 묘비는 다음과 같다.

빌리 더 키드의 '실제' 인생을 다룬 다큐멘터리, Forgotten History 제작.
![]() |
- 현존하는 그의 사진은 세 장 뿐이다. 위 독사진은 빌리 더 키드가 1879년 ~ 1880년에 뉴멕시코주 포트 섬너(Fort Sumner)의 사진관에서 25센트를 주고 찍은 사진인데 2011년 6월 25일 경매를 통해 230만 달러, 한화로 약 24억 원에 낙찰되었다. 이 사진이 남을 수 있었던 건 그가 친구 댄 데드릭(Dan Dedrick)에게 이 사진을 선물했고 이후 댄 데드릭의 후손인 업햄(Upham) 집안이 소유했기 때문이었다.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체형이 특이해서 어좁이에 엉덩이가 넓었는데 이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위의 사진은 한 골동품 가게에서 단돈 2달러에 팔리던 사진이었는데 2010년에 구매자가 감정을 의뢰해 본 결과 동료의 결혼식에 참석한 그의 사진으로 판정되었다. 이 사진은 5백만 달러에 달하는 가치가 매겨져 있다.
![]() |
위 사진은 2019년 발견된 새로운 사진으로 왼쪽에서 두번째 인물이 그다. 이 사진은 같은 갱단원이었던 빌리 윌슨의 부인이 지인에게 주었으며 100년 넘게 보관하다가 경매에 올랐다.
- 2010년 뉴멕시코주의 주지사 빌 리처드슨은 그의 죄를 사면해주고 그를 이용한 관광상품을 개발해 지역홍보에 활용하려고 했으나 피해자 후손들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 그의 가족으로 패트릭 매카티(아버지), 조지프 메카티(형제)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는 악명 높은 서부개척시대의 무법자였지만 전형적인 서부 총잡이의 이미지를 심어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지라 악역으로 등장할 때는 주인공이 쓰러뜨려야 하는 최종 보스 내지 라이벌로 묘사되고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는 안티히어로로 묘사된다.
- 1988년 영화 <영건>에서 주인공으로 나온다. 빌리 더 키드 역은 배우 에밀리오 에스테베즈가 맡았다. 하지만 줄거리는 엄청 각색되었으며 찰리 신, 루 다이아몬드 필립스, 키퍼 서덜랜드, 더멋 멀로니, 에밀리오 에스테베즈 같은 당시 청춘 스타들이 화려하게 나왔다. 배우들이 이렇다보니 실제인물과 달리 엄청 미화된 미남으로 나온다. 영화평은 별로였으나 흥행은 그럭저럭 성공하여 1990년에 2편도 나왔다. 1편에서는 톰 크루즈가, 2편에서는 존 본 조비가 총맞아 죽는 단역으로 나왔었다. #
- 고다르가 연출한 영화 국외자들에서도 잠깐 인용된다. 함께 돈뭉치를 훔치기로 모의하던 프란스가 이 일에 가담하기를 망설이자 아르튀르는 대뜸 빌리 더 키드가 팻 가렛에게 살해되었다는 말을 내뱉는다. 그러자 합이라도 맞춘 듯 프란스는 손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아르튀르를 쏘았고, 아르튀르는 총에 맞은 시늉을 하며 길바닥에 내뒹군다.
- 1993년 얼라이브 소프트웨어라는 곳에서 MS-DOS 게임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총 10개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져 있으며 게임의 시작은 감옥 탈출이고 마지막은 팻 개럿을 상대한다. 전반적으로 탑뷰 액션이지만 감방탈출이나 노인의 광산 같은 에피소드는 횡스크롤 액션으로 진행되기도 한다. 점프할때 내는 '핫!' '핫!'소리가 일품이었으며 일부 에피소드만 수록된 쉐어웨어버전이 돌기도 하였다.
- 레드 데드 리뎀션 2에 등장하는 전설의 총잡이 짐 '보이' 켈러웨이는 빌리 더 키드가 요절하지 않고 노년까지 살아 있었다는 것을 가정하고 만든 캐릭터이다. 실제 작중 캘러웨이는 명성만 부풀려진 겁쟁이였던 걸 생각하면 나름 고증에 맞다고 할 수 있다.
- 보드게임 중 하나인 와이어트 어프에도 등장한다.
- 콜 오브 후아레즈: 건슬링어에도 등장한다. 팻 개럿과 총격전 중인 것과 4개월 뒤 탈출하는 장면이 나온다.
- 빌리 와그너의 별명 중 하나다.
-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빌리 조엘은 빌리 더 키드에 대한 음악 "The Ballad Of Billy The Kid"를 작곡하기도 했다.
- 샘 페킨파 감독의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릿(1973)이 있는데 한국 비디오 제목은 관계의 종말이란 해괴한 제목으로 나왔다. 여담으로 이 영화의 OST가 바로 그 유명한 Knockin' on Heaven's Door이다.
- 키아누 리브스가 무명 시절에 출연한 코믹 영화 엑설런트 어드벤쳐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 여러 나라를 내왕하면서 인물들을 현대 미합중국으로 데려온 주인공 둘 덕분에 현대 미합중국으로 오게 된다. 여기에서는 백화점에서 총기 코너를 보고 좋아라 총을 골라 천장에 쏘다가 경비원들에게 잡혀 끌려나간다.
- 영웅전희에도 미국 영웅 중 한 사람으로 나온다.
- 무한 중독성으로 유명한 독일의 팝 그룹 징기스칸(그룹)도 그에 대한 노래를 불렀다.
- 뉴타입에도 연재된 바 있는 시키 사토시의 만화 'RIOT' 에서 동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서부극 요소를 가미한 퓨전 판타지 만화이며 내용은 주인공이 훔친 마도서를 둘러싼 추격극 & 모험담이었으며 빌리 더 키드 외에도 실존 인물에서 차용한 이름의 캐릭터들이 여럿 나온다.
- Fate/Grand Order에서는 아처 클래스로 등장한다. 빌리 더 키드(Fate 시리즈) 문서 참조.
- 매직 더 개더링의 "오멘패스" 스토리 아크의 마지막 파트는 서부극 컨셉의 확장판인 천둥 교차로의 무법자들인데, 해당 아크의 주인공인 켈란이 이 확장판에서 빌리 더 키드 포지션인 "켈란 더 키드"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위에서 언급된 대로 스토리의 주인공인 만큼 강도단에 참여하긴 해도 그 중에서는 가장 양심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 미스터 피바디와 셔먼쇼에서는 악당으로 나왔다. 심의 문제인지 진짜 총이 아닌 물총을 쓰며 여자로 변장하여 강도짓도 했다.
- 나 혼자 소드 마스터에서는 소드마스터로 등장한다. 빌리 더 키드(나 혼자 소드 마스터) 문서 참조.
- '올드 헨리(Old Henry)' 라는 2021년도에 만들어진 영화의 주인공으로 나온다. 이 영화의 내용은 빌리 더 키드가 과거의 총 싸움 도중 총에 맞지만 살아남아 자신의 과거를 청산한다. 이후 아내와 결혼하였지만 아내가 일찍 세상을 뜨게 되어 아들과 함께 평화로운 생활을 하던 중 은행 강도들의 돈싸움에 휘말려 그의 과거가 밝혀지는 사건을 다룬다.
- 2022년 EPIX에서 '빌리 더 키드'라는 전대기를 다루는 드라마가 방영되었고 2023년 10월 시즌 2가 방영되었다.
- 블랙스타 -Theater Starless- 라는 음악 장르 게임에서 Kiss or Bullet의 원작이 되었다. 다만 뮤지컬과 거의 유사한 공연을 한다는 설정이기에 줄거리가 실제와는 달리 다소 각색 되어 있다. 로링이 번안해 만든 발레 공연 스토리에 조금 더 유사한 편이다.
- War Robots- 워 로봇에 등장하는 기체의 이름의 모티브로 언급된다. 자세한 건 War Robots/기체/DSC 문서 참조.
[A] 1.1 1.2 "Billy the Kid: American outlaw", 브리태니커 대백과사전[2] Frederick Nolan, "The West of Billy the Kid" (1999), #[B] 4.1 4.2 Robert M. Utley, "Billy the Kid: A Short and Violent Life" (1991), 15쪽, #[C] 5.1 5.2 17세 기준.[8] 현재 남아 있는 사진이 권총 홀스터를 왼쪽에 찬 것으로 나와 있어서 한때 왼손잡이로 여겨지기도 했으나 사진이 좌우가 뒤집어져서 인화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게 밝혀진 게 의외로 얼마 안 되어서 영화에서도 왼손잡이로 연출된 적이 많다.[9] 1850~1908. 전직 들소 사냥꾼. 팻 개릿도 땅 문제를 두고 지인과 논쟁하다가 제시 브레이젤(1876~1913)이라는 사람이 쏜 총에 맞아 죽었다. 현재 개릿이 살해된 장소에 표식이 남아 있으며 개릿을 살해한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들은 앨버트 폴의 변호로 무죄를 선고받았다.[10] 인근에 사는 대장장이였다.[11] 교도관들이 수갑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수갑이 느슨했는데 그 틈에 수갑을 풀고 벨에게 달려들어서 벨의 총으로 벨과 올린저를 죽였다. 이후 교도관들의 총과 말을 훔쳐서 달아났다.[12] 2023년 원화 가치로 약 2,000만 원 가량 된다. 이는 당시 서민층 기준으로는 상당한 금액이었다. 서부개척시대 일반적인 서민 노동자들의 약 17개월치 급료에 해당했다.[13] 이때 조명이 어두워서 개릿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14] 제시 제임스 형제와 선댄스 키드, 그리고 빌헬름 2세였으며 부치 캐시디는 안 친해서 뺐다고 한다.[15] 다른 인물들은 케이트 블란쳇, 크리스찬 베일, 히스 레저, 벤 위쇼 등의 어마어마한 배우가 출연하여 각기 시대별로 그를 상징하는 캐릭터를 연기했다.
![]()
이 저작물은 CC BY-NC-SA 2.0 KR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단, 라이선스가 명시된 일부 문서 및 삽화 제외)
기여하신 문서의 저작권은 각 기여자에게 있으며, 각 기여자는 기여하신 부분의 저작권을 갖습니다.
나무위키는 백과사전이 아니며 검증되지 않았거나, 편향적이거나, 잘못된 서술이 있을 수 있습니다.
나무위키는 위키위키입니다. 여러분이 직접 문서를 고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의 의견을 원할 경우 직접 토론을 발제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