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폴드 3세

최근 수정 시각:
벨기에 제4대 국왕
레오폴드 3세
Léopold III
Léopold-III
출생
사망
1983년 9월 25일 (향년 81세)
벨기에 브뤼셀 월뤼웨생랑베르
재위기간
서명
레오폴드 3세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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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
이름
네덜란드어: 레오폴트 필립스 카럴 알버르트 메인라트 휘베르튀스 마리아 미헬
(Leopold Filips Karel Albert Meinrad Hubertus Maria Miguel)
프랑스어: 레오폴드 필리프 샤를 알베르 맹라드 위베르 마리 미셸
(Léopold Philippe Charles Albert Meinrad Hubert Marie Michel)
독일어: 레오폴트 필리프 카를 알브레히트 마인라트 후베르트 마리아 미하엘
(Leopold Philipp Karl Albrecht Meinrad Hubert Maria Michael)
아버지
어머니
형제자매
배우자
스웨덴의 아스트리드 공주 (1926년 결혼 / 1935년 사망)
메리 릴리앙 바엘[2] (1941년 결혼)
자녀
조제핀샤를로트, 보두앵, 알베르 2세, 알렉상드르, 마리크리스틴, 마리에스메랄다
종교
 
 
 
 
 
 
 
 
 
 
 
 
 
 
 
 
 
 
 
 
 
 
 
 
 

1. 개요2. 생애3. 가족 관계
3.1. 조상3.2. 자녀
4. 매체에서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벨기에의 국왕.

현재 벨기에의 국왕 필리프룩셈부르크의 대공 앙리의 할아버지이다.
 
 
 
 
 
 
 
 
 
 
 
 
 
 
 
 
 
 
 
 
 
 
 
 
 
 
 
 
 
 
 
 
 
 
 
 
 
 
 
 

2. 생애[편집]

 
 
 
 
 
 
 
 
 
 
 
 
 
 
 
 
 
 
 
 
 
 
 
 
 
 
 
 
 
 
 
 
 
 
 
 
 
 
 
 
알베르 1세 국왕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알베르 1세는 레오폴드의 큰아버지 레오폴드 2세가 아들이 없어서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3]

레오폴 3세
즉위 후 집무실에서.

알베르 1세가 1934년 2월 17일에 서거한 후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935년 8월 29일 아스트리드 왕비[4]와 단둘이 루체른 호 근처의 좁은 길을 운전하다가 차가 전복되어 호수에 빠지는 사고가 발생하였고, 이 사고에서 레오폴드 3세는 살아남았지만 결국 아스트리드 왕비는 사망하였다. 1941년 9월 11일 15세 연하의 메리 릴리앙 바엘과 재혼하였다.[5]

외모도 준수한 데다가[6] 2남 1녀의 자녀가 있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듯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큰 존경을 받는 했으나 즉위한 지 5년 만에 발생한 제2차 세계 대전이 그의 인생을 망가뜨려 놓고 말았다.

1940년 나치 독일벨기에를 침공, 점령하였다. 독일의 침공을 맞아 런던으로 망명한 내각과는 달리 레오폴드 3세는 연합국이 승리할 가망이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에 항복하는 것을 택했다. 당연히 내각은 분노하여 그를 적법한 벨기에의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7] 레오폴드 3세는 자신이 항복하면 독일도 벨기에를 덴마크 보호령이나 비시 프랑스 정도로 대할 것이라 여겼으나 실상은 아니어서 독일군은 그를 오스트마르크에 억류했다. 이후 1944년 남동생 플란데런 백작 샤를을 섭정으로 지명하고 1945년부터 스위스에 머물렀다. 그나마 적극적인 친나치 행보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1944년 그가 작성한 '정치적 유언'은 연합국을 비난하는 내용이라 내각의 경악과 분노를 샀다.

레오폴드 3세의 귀국은 전후 벨기에에서 큰 논란이 되어, 결국 벨기에 정부는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결정했다. 1950년 3월 12일 국민투표에서 58%의 벨기에 국민들이 왕의 귀국에는 찬성하여 7월에 귀국이 결정되었다.[8] 그러나 그의 복위 문제로 벨기에 각지에서 총파업이 일어나고 분리주의 운동이 준동하는 등, 전후 벨기에의 헌정위기로 이어졌다. 여기에 파업 과정에서 헌병대에 의해 노동자 4명이 사망하는 등, 언제 내전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논란이 계속되었고, 결국 1950년 8월 헌법상 권한을 장남 보두앵에게 넘기고 1951년 7월 26일 정식으로 양위했다. 이후 유유자적하게 살다가 1983년 9월 25일 브뤼셀에서 사망했다.

생전에는 나치에 부역한 것으로 몰려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물자가 바닥날 때까지 항전하다 항복한 것이 됭케르크 철수작전에 시간을 벌어준 것으로 재평가 받고있다.
 
 
 
 
 
 
 
 
 
 
 
 
 
 
 
 
 
 
 
 
 
 
 
 
 
 
 
 
 
 
 
 
 
 
 
 
 
 
 
 

3. 가족 관계[편집]

 
 
 
 
 
 
 
 
 
 
 
 
 
 
 
 
 
 
 
 
 
 
 
 
 
 
 
 
 
 
 
 
 
 
 
 
 
 
 
 
 
 
 
 
 
 
 
 
 
 
 
 
 
 
 
 
 
 
 
 
 
 
 
 
 
 
 
 
 
 
 
 
 
 
 
 
 
 
 
 
본인
부모
조부모
증조부모
레오폴드 3세
(Leopold III)
알베르 1세
(Albert I)
플란데런 백작 필리프
(Philippe, comte de Flanders)
루이즈 도를레앙[9]
(Louise d'Orléans)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의 마리 공녀
(Prinzessin Marie von Hohenzollern-Sigmaringen)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 카를 안톤
(Karl Anton, Fürst von Hohenzollern-Sigmaringen)
바덴의 요제피네 공녀
(Prinzessin Josephine von Baden)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Elisabeth in Bayern)
바이에른에서의 공작 카를 테오도어
(Karl Theodor, Herzog in Bayern)
바이에른에서의 공작 막시밀리안 요제프
(Maximilian Joseph, Herzog in Bayern)
바이에른의 루도비카 공주[10]
(Prinzessin Ludovika von Bayern)
포르투갈의 인판타 마리아 주제
(Infanta Maria José de Portugal)
미겔 1세
(Miguel I)
뢰벤슈타인베르트하임로젠베르크의 아델하이트 공녀
(Prinzessin Adelheid von Löwenstein-Wertheim-Rosenberg)
 
 
 
 
 
 
 
 
 
 
 
 
 
 
 
 
 
 
 
 
 
 
 
 
 
 
 
 
 
 
 
 
 
 
 
 
 
 
 
 
 
 
 
 
 
 
 
 
 
 
 
 
 
 
 
 
 
 
 
 
 
 
 
 
 
 
 
 
 
 
 
 
 
 
 
 
 
 
 
 
자녀
이름
출생
사망
배우자/자녀
1녀
룩셈부르크 대공비 조제핀샤를로트
(Joséphine-Charlotte, Grande duchesse de Luxembourg)
1남
보두앵
(Baudouin)
2남
알베르 2세
(Albert II)
메리 릴리앙 바엘 (Mary Lilian Baels)
3남
알렉상드르 왕자
(Alexandre de Belgique)
레아 월만
2녀
마리크리스티네 공주
(Marie-Christine de Belgique)
폴 드러커[14]
장폴 구라쥬
3녀
마리에스메랄다 공주
(Marie-Esméralda de Belgique)
살바도르 몬카다
슬하 1남 1녀
 
 
 
 
 
 
 
 
 
 
 
 
 
 
 
 
 
 
 
 
 
 
 
 
 
 
 
 
 
 
 
 
 
 
 
 
 
 
 
 

4. 매체에서[편집]

 
 
 
 
 
 
 
 
 
 
 
 
 
 
 
 
 
 
 
 
 
 
 
 
 
 
 
 
 
 
 
 
 
 
 
 
 
 
 
 
Hearts of Iron IV에서는 신들의 황혼 DLC 이후 벨기에에 고유 중점이 생기면서 추가되었다.

실제 역사대로 지멋대로 독일에 항복하는데 왕을 버리고 망명정부로서 항전을 이어갈지, 아니면 왕이 엉뚱한 생각으로 항복한 게 아님을 인정하고 저항의 상징으로 삼을지 선택할 수 있다. 망명정부 루트에서는 마지막에 왕을 내팽개칠지, 그래도 왕이니 복위시킬지, 플란데런 백작을 섭정으로 지명할지 고를 수 있으며 왕을 저항의 상징으로 삼으면 비동맹 루트를 탈 수 있게 된다.

정치적으로는 거국내각 루트를 탈 때 왕이 레옹 드그렐을 총리로 앉히면 위베르 피에를로가 이에 반대하며 내각을 무너뜨리고 집권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중점으로 왕을 퇴위시켜 버린다.
 
 
 
 
 
 
 
 
 
 
 
 
 
 
 
 
 
 
 
 
 
 
 
 
 
 
 
 
 
 
 
 
 
 
 
 
 
 
 
 

5. 둘러보기[편집]

 
 
 
 
 
 
 
 
 
 
 
 
 
 
 
 
 
 
 
 
 
 
 
 
 
 
 
 
 
 
 
 
 
 
 
 
 
 
 
 
[1] 이탈리아 왕국 마지막 국왕인 움베르토 2세의 부인[2] 1916~2002[3] 아들이 있긴 했으나 폐렴으로 요절했다.[4] 스웨덴 국왕 오스카르 2세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8세의 손녀이다.[5] 그러나 릴리앙은 왕의 부인이면서 왕비 칭호를 쓰지 않았다.[6] 고모할머니가 그 유명한 엘리자베트 폰 비텔스바흐다. [7] 1944년 1월경 위베르 피에를로 총리의 사위가 내각과 국왕의 화해를 주선하는 편지를 가지고 레오폴드 3세에게 가려 했으나 그가 도중에 독일군에 의해 사살되어 편지가 국왕에게 도착하지 못했다. 내막을 모르는 내각은 답신이 오지 않자 당연히 레오폴드 3세가 자신들과 화해할 생각이 없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8] 플란데런에서는 72%가 찬성했으며 특히 동부 림뷔르흐주에서는 압도적으로 찬성표를 몰아줬다. 반면 수도 브뤼셀에서는 52%가 반대하여 찬성률이 가장 낮았다.[9] 루이필리프 1세의 장녀.[10]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의 7녀.[11]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12] 필리프 국왕, 벨기에의 아스트리드 공주[13] 파올라 왕비 소생의 자식들 외에도, 내연녀 시빌 드 롱샴 남작부인 소생의 사생아 델핀 보엘이 있다.[14] 1985년 이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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