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희(독립운동가)

최근 수정 시각:
출생
한성부 동부 연동
(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
사망
서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5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김도희는 1867년 8월 23일 한성부 동부 연동(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지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09년 한성 신중학교(儆新中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청년학우회를 발기ㆍ조직하고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1910년경대한매일신보에 서간도 이주 관련 기사를 보고 서간도 망명을 결의했다. 이후 양기탁임치정 등이 추진하는 서간도 이주에 참여했다.

1910년 8월 경성에서 주진수 등과 함께 서간도에 토지를 매입하여 무관학교 등을 설립하고 이를 기반으로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해 국권을 회복할 것을 결의했다. 김도희는 1910년 9월과 10월 선천(宣川)에서 이승훈, 안악군(安岳郡) 안악읍 양산학교(楊山學校)에서 김구, 신천군(信川郡)ㆍ장연군(長淵郡)ㆍ송화군(松禾郡) 각 군에서 유문형(柳文馨)ㆍ고정화안윤재 등에게 서간도 이주자 모집을 요청하였다.

1910년 12월 20일경 서울 양기탁의 집에서 안태국ㆍ주진수 등과 함께 조선 13도에 각 1명씩 주임을 두어 이주자 모집을 담당하게 했다. 주진수는 강원도, 안태국은 평안남도, 양기탁ㆍ임치정은 경기도, 김구는 황해도 등 주임의 임무를 맡기로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1년 7월 22일 경성지방재판소에서 이른바 보안법(保安法) 위반으로 징역 2년을 받고 공소했지만#, 1911년 9월 4일 경성공소원에서 기각되어 경성감옥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경성에서 조용히 지내다 1924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도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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