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달수(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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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출생
경상도 동래도호부 좌이면 구포리
(현 부산광역시 북구 구포동)
사망
경상남도 동래군 구포면 구포리
묘소
부산광역시 강서구 봉림동 370
직업
독립운동가
가족
1남 2녀, 배우자 김연이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편집]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독립운동가이다.
 

2. 생애[편집]

 
1919년 구포에서 미곡상을 경영하고 있을 때 김옥겸, 양태근, 유기호 등과 함께 태극기 수백 장을 제작하여 1919년 3월 29일 1천2백여 군중을 모아 대한 독립 만세를 고창하였다. 곧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각종 고문을 받고 8월 26일 부산지법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이 언도되어 부산옥에서 고생하였다. 고문후유증과 체포 당시 입은 총상으로 고생하다 1924년 12월 36세로 순국하였다.[1]
 

3. 여담[편집]

 
장남인 김성술은 규슈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초대단장을 역임했다.
 
[1] 출처:항일투사 열전 2 추경화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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