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크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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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 400-600, Fr...
 
 
 
 
Franci/Francorum
Franken
Francs
Franchi
Franks
 
 
 
 

1. 개요2. 역사3. 이름4. 오해 및 역사분쟁5. 프랑크어군

 
 
 
 

1. 개요[편집]

 
 
 
 
서로마 제국을 공격하던 고대 말 게르마니아게르만계 부족집단들 중에서 라인강 유역에 살던 이들을 말한다.[1]

이들을 언어/역사/문화/유전적 구분에 따라 크게 두 집단으로 분류하는데, 라인강 유역의 리푸아리 프랑크(뜻:rivery; 민물 프랑크)와 라인강 하류 삼각지와 해안 주변 저지대 습지[2]에 살던 살리 프랑크(뜻:salty; 짠물 프랑크)가 그것이다. 기원전 강 주변 유역에 퍼져 살았으나 1세기 로마의 정복활동으로 라인강 동쪽으로 밀려난다. 초기에는 로마의 주적이었으나 후기에는 그만큼 가장 로마화되었던 집단이다.

문명화(로마화) 여부와 상관없이 라인강 동안의 게르만 부족들은 모두 프랑크족으로 불렸다. 고대 후기에 프랑크족을 대표하게 된 것은 그 중 서로마제국의 포에데라티(*변경백)를 담당하던 살리 부족으로, 서로마제국이 약해지자 갈리아 북부로 이주하여 현대 서유럽의 근간이 되는 프랑크 왕국을 세우고 살리카법을 만들었다. 이 프랑크 왕국이라는 정치체가 분열하여 그 식민지들이 훗날 프랑스, 독일, 북이탈리아가 되었으니 프랑크인은 색슨과 더불어 현대의 유럽, 그리고 서양의 중세 이후 역사적 지형과 큰 틀을 만든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3]

이 중 개척성향의 살리 프랑크는 프랑크족의 군사력과 확장성을, 정주성향의 리푸아리 프랑크는 프랑크족의 농업/상업/경제와 안정성을 담당했다. 프랑크 왕국의 정복전쟁을 이끈 것은 살리였지만 이후의 행정/문화 중심은 리푸아리 지역(*현재의 라인란트 지역)이 된다. 서양사에 미친 엄청난 영향과 달리 현재 이들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등의 소국과 프랑스의 로렌지역, 독일의 라인란트지역으로 갈기갈기 찢어진 민족이 되어 버렸다.[4]

하지는 살리 프랑크는 근대에 대항해시대 세계를 주름잡은 네덜란드의 주역이며, 리푸아리 프랑크서독의 경제와 라인강의 기적의 주인공으로써 독일을 부흥시킨 주축이기도 하다.[5] 루터와 종교개혁과 개신교의 국가인 독일에서도 가톨릭을 고수하는 민족이며, 쾰른, 마인츠등 중세 독일의 가장 유명한 주교구와 성당들도 리푸아리 프랑크 지역에 위치해 있다.

현대에 '프랑크인'의 이미지는 유쾌하고, 솔직하고, 개방적이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느낌을 가지고 있다. 영어에서 '프랑크식으로 말해서(frankly speaking)'는 솔직하게 터놓고 말한다는 뜻이며,[6] 독일에서 '프랑크스러운(frankish)'것은 외향적이고 축제를 즐기는, 검소한 개신교와 달리 다소 흥청망청한 가톨릭 전통[7]을 가진 라인강 사람이라는 뉘앙스를 갖는다.[8]
 
 
 
 

2. 역사[편집]

 
 
 
 
1704px-Carte des...
3세기 라인 강 부근
초록 글씨
프랑크 부족
검은 글씨
다른 게르만족 
노랑 바탕

프랑크인은 초기 라인 강 부근에 사는 게르만족의 연합체였다. 프랑크인에 대한 기록은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Historia Augusta)에 최초로 나오고, 여러 문헌에도 언급되지만 세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로마 제국은 라인 강 인근에서 프랑크인의 침략에 고역을 치르는 한편 로마군프랑크인을 등용하는 등 우호적인 면도 보였다. 288년 막시미아누스는 프랑크인을 비롯한 여러 게르만 부족을 물리치고 이들을 로마 제국의 국경 부근은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속주에 정착시켜서 인력을 보충하였다.
Frankish Foedera...
358년 라인 강 부근
보라색
살리 프랑크인 
노란색
붉은색

프랑크인들 중 살리(Salii)[9]부족은 358년 율리아누스의 허락으로 로마 제국의 국경 내 저지대 속주에 정착하게 되었다. 살리 부족은 로마군 부대에 등용되어 라인 강 너머 다른 프랑크 부족들의 침략을 방어했다(포에데라티). 로마 제국에 의무적으로 군사 지원을 해야 했지만, 그 대가로 정착지에서 고도의 자치권을 누렸다. 율리아누스는 프랑크족을 라인강 게르만족 중 가장 가공한 적이라고 저술했다.

이후 여러 프랑크 부족들이 로마 제국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라인 강 동쪽, 쾰른 부근에 정착한 프랑크인이 있었는데, 역사학자들은 이들을 리푸아리(Ripuarii)로 이름 붙였다. 이후 서로마 제국이 붕괴되자 살리 부족의 군주인 클로비스 1세는 프랑크 부족들을 통합하고, 481년 프랑크 왕국을 세웠다. 486년에 클로비스 1세는 갈리아 최후의 로마인 세력 시아그리우스를 물리치고 서로마 제국의 잔존 세력인 수아송 왕국을 정복하여 갈리아 북부를 차지했다.(수아송 전투(486년)) 이를 시작으로 프랑크 왕국은 갈리아를 넘어 서유럽 전체로 영토를 넓혀나갔다.

europeat500
 
 
 
 

3. 이름[편집]

 
 
 
 
프랑크라는 이름의 어원은 불분명하나, 가장 정설로 취급되는 것으로 게르만 조어 'frankon'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단어는 프랑크족의 던지는 도끼 'francisca'를 뜻하며 일반적으로 투창이나 창으로 번역된다. 이 설에 따르면 프랑크족은 '투창하는 사람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다른 이론으로는 게르만 조어 'frankaz'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는 영어의 fierce와 같은 어원으로, '사나운 사람들'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이 부족명을 프랑크족이 받아들이게 되면서 프랑크어로 'franc'라는 단어에 새로운 뜻이 생겼는데, 바로 자유민이라는 뜻으로, 현대 독일어 frei, 현대 영어의 free, 현대 네덜란드어 vrij 등이 동족어로서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고대 영어의 Franca,[10] 고대 노르드어의 frakka 등 게르만계 언어의 어원을 따지면 '자유'라는 단어는 비슷한 유래를 두고 있어서 어휘 자체도 비슷하다. 중세에도 자유민이 소유한 자산을 'franc-fief'라고 부르고, 자유도시를 'ville de franchise'[11]라고 부르는 등 frank 혹은 franc를 '자유롭다'라는 뜻으로 사용한 흔적이 있다. 말하자면 슬라브계통의 카자흐코사크와 같은 것이다.

이 '자유민'이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 상황을 암시한다. 이민족이 로마에 편입될 때 지도층을 제외한 구성원의 대다수는 처음에 노예 계층으로 편입되기 때문이다. 자유를 가진 사람과 안 가진 사람으로 나눌 수 있었으므로 자유민이라는 표현이 구별적 명칭의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혹은, 제도권 안의 사람과 제도권 밖의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파생 의미를 갖는데, 원래 수렵과 전투를 주업으로 하는 자유민 전사들이며, 강력한 무력을 보유하여 다른 대부족들의 구속을 받지 않는 동시에 정복자로서는 지배층인 전사 계급임을 나타낸다.

프랑크라는 이름은 중세 전기까지 서유럽 세계관 전체를 뜻하는 이름이었다. 독일 왕국은 후대에 붙인 이름일 뿐, 당대 신성로마제국의 게르만인들은 자신들을 프랑크 혹은 동프랑크인이라고 말했으며, 이 이름은 유럽을 벗어난 다른 지역에서도 서유럽권을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특히 십자군 전쟁을 겪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주 흔한 단어였는데, 그들이 상대한 십자군 전사들의 대다수가 가톨릭을 믿는 서유럽인들이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프랑크인'이라고 불렀다.[12]

페르시아에서 프랑크를 부르던 파랑기(فرنگی / farangī)가 이슬람권 전체에서 프랑크인을 가리키는 '파란지(al-Faranj)'가 되고, 이 단어가 동남아시아에까지 들어가서 태국에서는 '파랑(ฝรั่ง)'이 유럽에서 온 외국인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에서도 'Pirang'이란 단어는 서양인, 그중에서도 금발이거나 적발인 사람을 뜻하는 단어로 쓰였다고 한다. '유럽인'으로서의 '프랑크'라는 단어는 멀리 대륙 반대편 동아시아에까지 전해져 유럽인을 '불랑기(佛郎機)'로 부르게 되었다. 불랑기포, 프랑스의 음차 불란서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시.

프랑켄, 프랑크푸르트, 프랑스 등의 지명도 이 프랑크인에서 따온 것이다. 프랑스의 공식국호인 프랑스 공화국은 프랑스어 표기로 쓰면 레퓌블리크 프랑세즈(République française)로, 여전히 궁극적으로는 프랑크인의 공화국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파생된 뜻으로는 자유민의 공화국이라는 뜻도 가지게 된다. 프랑크푸르트는 '프랑크인의 여울목'이란 뜻으로 전통적 프랑크인 지역(라인란트)와 남독일(라인란트), 북독일(색슨)을 연결하는 거점에 위치한 도시이며, 프랑켄은 동프랑크 왕조가 남독일에 내려가 터를 잡은 독일 중간산지의 개척지로, 이쪽의 경우 이름은 프랑켄이지만 실 거주민은 대개 바이에른계로 이루어져 있어서 현대의 프랑스와 비슷한 개념이다.
 
 
 
 

4. 오해 및 역사분쟁[편집]

 
 
 
 
프랑크 왕국이 서유럽의 근간이라고 해서, 마치 현대 서유럽 사람이 다 프랑크족인 것처럼 오해할 수 있다. 하지만 옛날의 유목민족들처럼 프랑크인은 정복을 잘했지 숫자가 아주 많아서 현지인을 흡수하거나 대체했던 건 아니라 프랑크 왕국에서도 주류 민족이 아닌 지배층만을 이루었으며, 프랑크인 다수는 당대에도 라인강 일대를 벗어나지 않고 현지 원주민들에게 동화되었다.

비슷한 이유로 현대 프랑스인을 프랑크인의 직계라 싸잡기도 어렵다. 프랑크 왕국 때도 갈리아 지역은 여전히 현지의 갈로-로망스 문화가 주류이자 인구에서도 현지인들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이는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는데, 프랑스라틴족 + 골족 문화에 기반을 두고 프랑크족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래서 현대 프랑스인은 스스로를 라틴의 후예, 골족의 후예, 프랑크인의 후예라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13]

프랑스어의 경우도 현대까지 켈트어 - 게르만어가 혼합된 로망스어이다. 그래서 프랑크인의 정체성 문제를 두고 가끔 /int/ 등지에서 프랑스인과 독일인·네덜란드인·벨기에인 사이에 정통성 논란과 역사적 분쟁이 벌어지곤 한다. 프랑크족이 끼친 영향이 강하다보니 게르만족 지역으로 간주되는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외에도 라틴계열이 다수인 프랑스 북부와 중부, 이탈리아에도 영향력이 있다.[14]

애초에 프랑크'족' 자체가 자유 게르만 부족들을 지칭하는 말이지 특정민족집단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에 독일의 '프랑켄'[15]인과 벨기에인[16]/남부 네덜란드인[17], '프랑스인' 사이에는 프랑크라는 네임벨류를 제외하면 연관성 따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정치체의 연속성에서 독일, 네덜란드 등 서유럽 여러 나라의 기원 그리고 프랑스가 분명히 프랑크 왕국과 연속된 것은 맞다. 특히 프랑스 왕국존엄왕 필리프 2세까지만 하더라도 프랑크 제국의 정통 후계자임을 차처하며 국명까지 같은 프랑크 왕국으로써, 프랑크 국명이 변화된 '프랑스'를 사용했었고 프랑스 대혁명 이전의 프랑스 왕국은 단지 편의상으로만 서프랑크와 구분할 뿐, 실제론 동일한 정치체이다.[18]
 
 
 
 

5. 프랑크어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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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
저지 프랑크어군
분홍색
중부(모젤-라인) 프랑크어군[19]
노란색
고지 프랑크어군[20]

프랑크인의 언어에서 갈라진 언어 혹은 방언들이다.
  • 저지 프랑크어군 - 네덜란드 서부와 벨기에플란데런 지방에서 쓰이는 방언들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가 네덜란드어로 알고 있는 언어는 정확히 말하면 홀란트 방언이다. 더 자세한 건 네덜란드어 문서의 방언 문단을 참고할 것. 다른 어군들은 독자적인 어군이 아닌 고지 독일어의 한 갈래로 취급된다.
  • 중부 프랑크어군 - 중부 독일어.
  • 라인 프랑크어군 - 중부 독일어. 카롤루스 대제가 모어로 사용한 언어로 추측된다. 독일의 팔츠, 자를란트, 헤센 방언과 프랑스의 로렌 방언도 이 어군에 속한다. 그래서 로렌어는 상부 독일어에 속하는 알자스어와 매우 다르다.

또한, 프랑스어에도 영향을 끼쳤다.
 
 
 
 
[1] 프랑크'족'이라는 어미는 한국이나 일본에서나 붙이는 것으로, 세계적으로는 프랑크인이니 프랑크족이니 하지 않고 그냥 '프랑크'라고 한다. 정확히 사람을 꼭 구분해 지칭해야할때는 'frankish people'등의 단어를 쓰지만, 일반적으로 franks라고 한다.[2] 현재의 네덜란드와 벨기에 북부. 네덜란드(뜻:lowland; 저지대)가 원래 벨기에 지역까지 포함하는 지명이다.[3] 말하자면 서프랑크(프랑스)는 프랑크의 갈로-로만 식민지였고, 동프랑크(독일)는 프랑크의 게르만 식민지였다. 당대에 직할지를 뺀 나머지를 방계 가문에 나눠줘 독립시킨 것에 가깝다. 어퍼라인 밸리-스위스알레만니 게르만이나, 북이탈리아도 마찬가지로 식민지였으나, 로마와의 연결을 위해 독립시키지 않고 직할령으로 든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로렌지방의 개척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하여 프랑크족 자체가 공중분해되었다.[4] 과연 게르만 부족들 중 가장 성공한 사례라고 할 수 있을까? 중프랑크 왕국의 북부가 사실 당시 프랑크인이 생각한 자기들의 영혼이자 핵심인 지역인데, 지금은 이렇게 공중분해되었다. 로타링기아 참조[5] 참고로 근대에 독일을 통일시키고 현대 독일어를 정한 프로이센은 서독의 프랑크인 지역이 아니라 동독의 색슨족 개척 식민지 지역의 후손들이다. 이때 독일어는 오히려 색슨어도 프랑크어도 아니고 가장 약소한 동쪽 변방산자락의 튀링겐어가 기반이 되었다.[6] 프랑크족의 이름이 훗날 'free', 즉 자유민(freeman)과 연결되기도 한다. 애초에 1세기의 프랑크는 슬라브로치면 코사크카자흐같은 것이기도 했다. 반면 슬라브쪽 자유민은 풍족한 자유민이라기보다는 혹독하고 험난한 자유민 이미지를 가지지만..[7] 독일 기준으로는 다소 프랑스스러운(!)[8] 반대로 색슨은 무뚝뚝하거나 냉소적인 이미지, 북해의 바닷사람이나 북부평원의 기사단, 개척자, 이런 느낌이다. 많은 대중매체의 '북부 대공'이나 '변방백'이미지는 살리 프랑크보다는 색슨족의 작센 공국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9] 살리카법의 어원이 되었다.[10] 현대 영어에서 frank라는 단어로 계승되나 솔직하다는 뜻만 남고 자유라는 뜻은 사장되었다.[11] 직역하면 '프랑크'한 도시. 이 단어가 영어로 흡수되어 현재의 프랜차이즈가 되었다.[12] 반면 정교회를 믿는 동유럽인들에 대해서는 정교회의 종주국격인 동로마에서 따와 '로마인'(al-Rum)이라고 불렀다.[13] 물론 프랑크족을 이루는 여러 게르만 부족들 중 다수가 갈리아어 계통의 부족명을 지녔고 갈리아인, 프랑크족 둘 다 유전적으로 France IA(철기시대 프랑스)에 해당되는 유전적 집단에 속하기 때문에 프랑크족은 유전적으로 따지면 사실상 대다수가 게르만화한 켈트족이었다. 즉, 현대 프랑스인의 유전자에서 라틴족 + 골족 + 프랑크족을 유전적으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애초에 라틴족(북부 이탈리아인, 중부 및 남부 프랑스인), 골족(북부 프랑스인, 벨기에 왈롱인, 프랑스계 스위스인), 프랑크족(남서부 독일인, 오스트리아인, 독일계 스위스인)은 전부 부계 유전자 R1B-U152를 공유하는 흡사한 집단이다.[14] 네덜란드어는 프랑크인의 중심이 되었던 살리-프랑크인의 언어인 살리 프랑크어(Salian Frankish)의 직계 자손뻘 언어로 여겨지고 있다.[15] 이쪽은 무늬만 프랑크일 뿐이고 실제론 투링기족, 알레만니족이 프랑크족에게 복속당하면서 프랑켄이라는 이름을 물려받았을 뿐이다. 작센이 이름 빼곤 실제 색슨족이랑 혈통적, 언어적으로 아무런 관련도 없는 것과 동일한 경우라고 보면 된다[16] 정확히는 플란데런[17] 현대 네덜란드에서 프랑크족이랑 관련있는 곳은 끽해봐야 브라반트림뷔르흐 정도고, 네덜란드인 대부분은 프랑크화한 프리시족의 후손이다. 게다가 정체성도 프랑크 왕국이 아닌 네덜란드 독립전쟁에서 찾는다.[18] 동로마 제국의 민족 구성이 라틴족이 아닌 그리스인이든 간에 동로마가 로마 제국과 동일한 정치체인 것과 같다.[19] 엘베 게르만어군에 속하기는 하지만 순수 엘베 게르만어는 아니고, 서부 독일에서 사용되던 프랑크어가 고지 독일어 자음 변동의 영향을 받아 원래의 프랑크어(베저-라인 게르만어)와 달라지게 되면서 생겨난 언어이다.[20] 이 언어군은 프랑크어(Frankish)가 아닌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북부(및 바이에른 북서부 끝자락)의 알레만니족, 바이에른 북부의 투링기족이 사용하던 엘베 게르만어에서 유래한다. 그래서 모젤-라인 프랑크어와 다르게 프랑크어의 영향이라고는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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